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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왜 김영철을 보냈나?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대남 담당) 겸 통일전선부장을 보냈을까.
 인터넷으로 한국 동향을 파악하는 김정은은 김영철을 단장으로 보냈을 경우 한국 보수층의 반발을 예상했을 것이고, 그가 겪게 될 수모도 짐작했을 수 있다. 북한은 현재 대북 제재로 사면초가에 놓인 상태다. 미국은 해상봉쇄를 강화하고, 중국은 과거와 달리 단계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이른바 ‘코피 전략’으로 알려진 군사 압박은 코앞에 와 있다. 김정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 특사를 보냈고, 폐막식에는 김영철을 보냈다.
 김영철은 지난 12일 귀환한 김여정 특사 등 고위급 대표단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고하는 자리에 배석했다.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금후 북남관계 개선 발전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해당 부문에서 이를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해당 부문’은 대남·대미 부서가 될 가능성이 높았고, ‘실무적 대책’은 남북 정상회담·북미 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해당 부문은 당 통일전선부·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내각 외무성이 될 것으로 점쳐졌다.
 이번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면면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전책략실장, 이현 통일전선부 참사 등 통일전선부가 주축을 이루고 외무성에서는 최강일 북아메리카국 부국장만 포함했다. 구성 비율을 보면 대표단의 1차 목표는 대남 관계며, 2차 목표가 대미 관계인 것을 알 수 있다. 북·미 관계에 무게를 실었다면 외무성 부상이나 최선희 북아메리카국장이 내려왔을 것이다. 김정은은 남북관계 개선을 지렛대로 삼아 북·미 관계 개선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에 이수용 당 국제부장 등 외교 채널이 오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의전용일 뿐 남북관계를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김영철을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철은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평창에서 만나 “북·미 간 대화할 충분한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예상된 질문에 준비한 대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전선부장은 이처럼 남북대화의 현안을 다루는 것뿐 아니라 포괄적인 논의가 가능한 자리다.
 김영철은 1989년 남북 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북측 대표로 남북회담에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북 고위급회담 군사분과위 북측위원장을 맡는 등 남북회담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서 김영철의 첫인상에 대해 “군복 차림의 젊은 김영철 인민군 소장은 날카로운 눈매에 찬바람이 감도는 쌀쌀한 태도로 아무 말 없이 손만 내밀었다”고 적었다. 김영철은 2009년 인민군 정찰총국장을 거쳐 2013년 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김양건 전 통일전선부장이 2015년 12월 사망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통일전선부장은 과거 외무성이나 노동당 국제부 출신이 옮겨왔는데, 김정은은 이례적으로 육군 대장 출신을 그 자리에 앉혔다. 당시 통일전선부 내부 사람들도 예상 밖 인사였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오랜 남북회담 경험과 당시 험악했던 남북관계를 고려해 그를 앉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영철은 대남비서를 맡으면서부터 난수방송(숫자나 문자 등으로 만든 암호를 전달하는 방송)을 재개하는 등 냉전 시대에나 통했던 방법을 다시 사용해 통일전선부장으로서 대화 분위기에 적임자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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