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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의 심스틸러] 벗는다고 다 '어른 멜로'는 아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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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에서 어른 멜로를 선보이고 있는 김남주와 고준. 연인관계였던 그들이 재회한 모습. [사진 JTBC]

'미스티'에서 어른 멜로를 선보이고 있는 김남주와 고준. 연인관계였던 그들이 재회한 모습. [사진 JTBC]

‘어른 멜로’. 최근 미니시리즈에 떠오르고 있는 화두다. 아침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불륜을 비롯, 성인들의 남녀상열지사가 버젓이 평일 및 주말 저녁을 장식한다. 빵빵한 캐스팅으로 화력도 만만치 않다. 김남주와 지진희가 부부로 호흡을 맞추는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는 방송 6회 만에 7.1%를 찍었다. 김선아와 감우성이 돌싱남녀로 등장하는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방송 첫날 두 자릿수 시청률 10.5%를 기록한 기대주다.

고준, '미스티' 골프선수 케빈리 역으로 호평 #섹시함으로 김남주ㆍ전혜진ㆍ진기주 사로잡아 #섬뜩한 악역 전문서 로맨틱 남주로 성공적 안착 #액션, 사투리 빈 자리 채우는 감정 연기는 숙제

두 드라마의 장점은 명확하다. 이들은 상대방을 재보거나 따져보기는커녕 질척대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좇을 뿐이다. 하여 20대의 풋풋함과 30대의 치열함은 없을지언정 담백하고 농밀하다. ‘미스티’의 경우 의문의 교통사고를 중심으로 범인 찾기라는 장르물적 속성과 그에 걸맞은 빠른 속도감까지 더했다. 어른들 구미에만 맞춘 것도 아니요, 젊은 층 취향까지 제대로 저격한 셈이다.

'미스티'에서 고준은 세 여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프로골퍼 이재영(케빈 리) 역할을 맡았다. 극 초반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살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범인을 역추적하는 플래시백 형태로 진행된다.

'미스티'에서 고준은 세 여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프로골퍼 이재영(케빈 리) 역할을 맡았다. 극 초반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살인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범인을 역추적하는 플래시백 형태로 진행된다.

그중에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케빈 리 역을 맡은 배우 고준(40)이다. 케빈 리는미국에서 각종 대회를 섭렵하고 금의환향한 프로골퍼다. 아내 서은주(전혜진 분)의 극진한 내조를 받으면서, 옛사랑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앵커가 된 고혜란(김남주 분)과 재회해 마음을 흔든다. 거기에 고혜란의 앙숙인 후배 기자 한지원(진기주 분)까지 만나는 등 세 여자를 오가느라 가장 바쁜 인물이다. 덕분에 극 중 이미 죽은 설정이지만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플래시백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자연히 배우 고준은 화면에 나올 때마다 매력을 발산할 기회를 얻는다. 그게 푸르른 골프장에서 시원하게 샷을 날리는 장면이든, 김남주와 거칠게 입을 맞추거나 진기주와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장면이든 간에 다부진 근육이 도드라지는 덕이다. “아무리 봐도 잘생긴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은 역인데 영농 후계자처럼 생겨서 고사하려 했다. 전형적인 미남보다는 미국계 아시안 같은 느낌이 필요하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는 겸손함으로 포장하기엔 섹시함이 차고 넘쳤다.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로 데뷔한 고준은 2014년 '타짜: 신의 손'에서 유령 역할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로 데뷔한 고준은 2014년 '타짜: 신의 손'에서 유령 역할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새롭게 섹시남의 계보를 잇고 있는 그는 사실 악역 전문이었다. 무에타이ㆍ유도ㆍ복싱ㆍ레슬링 등 각종 격투기를 다져온 덕에 액션 연기에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타짜: 신의 손’(2014) 유령 역으로 섬뜩한 눈빛을 선보인 이후 줄곧 눈에 잔뜩 힘을 줘야 했다. ‘밀정’(2016)에서는 동료 단원을 구하기 위해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 의열단원이었지만, 대개는 악역이었다. ‘굿와이프’(2016)의 조폭 출신 건설회사 사장이나 ‘청년경찰’(2017)의 조선족 난자매매단 두목처럼 악행의 수위도 나날이 높아져 갔다.

그 때문일까. '미스티'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가 밀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섹시함으로 초반 관심 몰이에 성공했다면 이후 다른 매력을 선보여야 캐릭터에 더 빠져들 수 있을 텐데 그 '한 발짝'을 아직 떼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20대의 고혜란을 바라보는 순박한 이재영과 40대가 되어 고혜란을 대하는 야심찬 케빈 리의 눈빛은 확연히 다르지만, 아내와 불륜녀 등 세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큰 차이가 없다. 대하는 상대마다 전혀 다른 아우라를 뿜어내는 김남주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청년경찰'에서 조선족 두목 역할을 맡은 고준이 액션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청년경찰'에서 조선족 두목 역할을 맡은 고준이 액션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는 비단 고준만의 숙제가 아니다. 화려한 액션과 각종 억양으로 무장한 조폭 세계에서 활약하던 배우가 실생활로 뛰어들면 다소 밋밋한 연기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갖추지 못한다면 다시 어두운 세계 전문 배우로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다행히 배우 고준, 본명에 따르면 인간 김준호는 여태껏 보여준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지녔다. 악역 연기만 봤다면 현실의 그가 첫사랑을 7년간 했다는 순애보 같은 면모나 장래희망이 신부님이었다는 것을 누가 상상하겠는가. 심지어 그는 “상대방 배우를 때릴 때마다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미안하다”는 고운 심성의 소유자이자 사투리 미션이 주어질 때마다 해당 지방에 가서 살다 오는 강한 책임감의 소유자다. 그렇다면 그 도화지를 채우는 건 시간 문제 아닐까. 이제 주먹과 눈이 아닌 다른 곳에 힘을 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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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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