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채일의 캠핑카로 떠나는 유럽여행(20, 최종회)
“완벽해요! 흠집 하나 없네요!” 로마의 렌터카 회사 캠핑카 반납 현장이다.
한 달 전 차를 빌릴 때 수동 캠핑카 운전이 처음이라는 나를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담당 매니저가 이번에는 엄지를 척 올리며 말했다. “한국 손님은 두 번째네요. 한국 친구들에게 우리 회사를 많이 소개해 주세요.” 웃으며 부탁하는 그를 보자 피렌체에서 지불한 차 수리비가 떠올라 마음이 쓰렸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때마침 펼쳐지는 저녁노을은 우리의 여행을 더욱 멋지게 마무리해주었다.
젊은 시절, 출장길에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캠핑카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막연히 동경해왔던 캠핑카 여행. 환갑이 된 나이에 아내와 함께 그 꿈을 이뤘다.
우리 부부가 여행한 길은 로마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남부의 쏘렌토과 포지타노 → 이탈리아 동부의 산 조반니 로톤도과 앙코나 → 아드리아 해 → 크로아티아의 스프리트 →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와 메주고리예 →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치아와 가르다 호수 → 스위스 인터라켄과 루체른 → 산마리노 공화국 → 이탈리아 중부의 스펠로와 아시시, 피렌체를 거쳐 로마에서 끝났다.
최종회에서는 캠핑카 여행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캠핑카 여행의 장단점을 정리해 보았다.
1. 여행의 성격과 범위를 정하라
캠핑카 여행은 백지에 그리는 그림과 같아서 자칫하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여정이 되기 쉽다. 막연히 “난 한 달간 유럽 12개국을 돌아보겠어”라는 식의 일정보다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보고 즐길 것인지를 중심으로 계획을 짜는 게 좋다.
2. 캠핑카 여행비용은 쌀 수도 비쌀 수도
캠핑카 여행에는 캠핑카에 어울리는 여행방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둘러보기를 원한다면 캠핑카 여행은 비용이나 효율성 면에서 전혀 추천할 방식이 아니다. 교통이나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외지인의 입장에서 무리한 일정은 큰 부담이고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캠핑카는 편안한 휴식을 선호하는 여행객에게 어울리는 수단이다. 여행하다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면 얼마든지 일정을 바꾸어 며칠이고 머물다 갈 수 있는 여유와 느긋함이 필요하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저녁 시간에 함께 어울려 즐겁게 지낼 수 있겠지만 서로 간의 대화나 소통에 익숙지 않은 여행자가 함께하는 경우 자칫 단조롭거나 지루한 여행이 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의 캠핑족은 해가 지면 캠핑카 문을 닫고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처럼 낯모르는 이웃끼리 서로 어울려 술과 음식을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내 경험으로는 한 곳에서 2~3일 정도 머무르다 3~4시간 이내의 운전 거리를 이동하는 정도가 적절하다. 들은 바로는 무리한 운행으로 한 달간 유류비와 통행료로만 200만원 이상을 쓴 경우도 있다고 한다.
3. 캠핑카 여행은 성수기와 비수기 간 비용 차이가 크다
유럽의 경우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진 캠핑장이 웬만한 도시나 관광지에는 여럿 있다. 그런데 캠핑장 사용료가 만만치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캠핑카 렌트비, 운행비에다 캠핑장 사용료까지 생각하면 차라리 호텔을 이용하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캠핑장 밖에 차를 세우고 야영을 할 수도 없다. 전기 공급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나라에서 캠핑장 밖 야영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캠핑장 이용료를 절감하기 위해 ACSI(유럽캠핑시설 관리협회)에서 발행하는 할인카드를 이용했다. ACSI 카드는 비수기 때만 할인받을 수 있는데 비수기는 보통 여름휴가 시즌과 연말연시를 제외한 기간이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캠핑장마다 다르다. ACSI 카드를 살 경우 유럽 전역의 9000개 이상 회원사 캠핑장의 시설현황과 등급을 표시한 책자도 함께 받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캠핑장을 주로 이용했다.
4. 렌트비용 외에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다
캠핑카 렌트비에는 차량임대료와 책임 보험료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본인의 과실로 사고를 냈을 경우 일정 한도 내에서 운전자가 손해비용을 감수하는 ‘자차 자기 분담금’을 별도로 보장해야 한다. 유럽의 경우 보통 1200유로를 자차 자기 분담금으로 별도로 지급보증을 하고, 사고 시에 이 금액 내에서 우선 변제를 한다. 물론 사고가 없을 경우에는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참고로 렌트 후 차량 운행 중 고장이 생기거나 피해를 보았을 경우 사진을 찍거나 증상을 적고 이로 인한 피해를 정리해 렌터카 회사에 보내 미리 피해보상을 협의해야 한다.
한편, 추가 렌털 장비 중 나라마다 다른 LPG 충전용 어댑터 외 내비게이션은 국내에서 현지보다 저렴하게 빌릴 수 있다. 또 여행 중 필요한 정보를 수시로 검색하고 비상시 통화를 하기 위한 유심칩도 사는 게 좋다.
5. 고속도로 이용료와 주차료
유럽은 나라마다 고속도로 요금과 부과방식이 다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한국처럼 구간에 따라 이용료를 부과하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의 경우 연간 이용권을 사야 한다. 현지인과 달리 짧은 기간 동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여행객이 연간 이용권을 사야 하는 게 억울하긴 하지만 이용권을 부착하지 않고 운전하다 적발될 경우 벌금이 엄청나기 때문에 반드시 사서 앞 유리에 부착하고 다니는 게 좋다.
독일의 경우 대부분의 고속도로가 무료이다. 주차료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시간만큼만 주차료를 지불하고 주차권 판매기에서 주차권을 산다.
참고로 유럽은 고속도로 통행권 무인정산 시 티켓 정산기의 이용이 무척 어렵고 불편하다. 한국처럼 통행권이 차량의 크기나 높이에 맞게 발행되지 않을뿐더러 정산 시 통행료 투입구와 잔돈 배출구의 높이가 정말 불편한 곳에 있어 한 번쯤 이용을 해보면 한국의 통행권 시스템이 얼마나 편리한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유럽의 도시는 허가된 번호판을 보유한 차량 외에는 도심 진입을 막기 때문에 보통 캠핑카는 외곽에 위치한 캠핑장에 주차해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 관광을 하게 된다. 그러니 도심 가까이 위치한 캠핑장을 선택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다.
6. 식비 절감 방안을 세워라
유럽의 비싼 물가를 생각하면 매 끼니를 모두 사 먹을 수는 없다. 우리의 경우 외식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현지에서 값싸고 신선한 식재료를 사서 직접 조리해 먹었다. 햇반이나 라면, 캔 김치 등은 넉넉히 챙겨가는 게 좋다. 까르푸나 유럽 현지의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장채일 스토리텔링 블로거 blog.naver.com/jangchai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