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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퍼스펙티브

‘에너지 신제국주의’에 답이 있다, 해외로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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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태양광은 한국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2월 초의 대구는 쌀쌀했다. 김범헌 한라이엔씨 대표는 KTX 동대구역 승강장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는 한국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2008년 250여개였던 태양광발전사업자는 지난해 8000개로 늘었고 올들어 1만곳을 넘어섰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세 가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①태양광으로 원자력 발전을 대체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②태양광을 핑계로 나라가 투전판이 되는 건 아닌가. ③태양광이 에너지 백년대계가 될 수 있나.

한국은 땅 좁고 일조량 적어 #태양광 발전 확대에 한계 #돈 쏟아붓는다고 해결 안 돼 #되레 규제와 민원은 더 커지고 #브로커 극성, 전국이 투전판 #원전과 투트랙으로 가되 #몽골·베트남 등 해외 진출 통해 #에너지 백년대계 다시 그려야

몇 차례 김 사장과 통화했지만, 부족했다. 뭔가 잡힐 듯했지만 여전히 뜬구름 속이었다. 김 사장은 “현장에 답이 있을 듯하다”고 했다. 그는 대구 지역 최대 태양광발전 사업자다. 2002년부터 학교, 정수장, 마트, 야산, 공장의 지붕에 태양광을 깔아왔다. 요즘 그의 관심은 저수지다. 만나자마자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진 내게 그는 “일단 둘러보고 얘기하자”고 했다.

강행군이 시작됐다. 경북 군위군부터 찾았다. 10년 전인 2008년 9월 상업발전을 시작한 솔라테크. 2987㎾짜리 대규모 설비다. 야산을 깎아 태양광 패널을 빼곡히 채웠다. 흔히 태양광을 떠올리면 나옴 직한 풍경이다. 다음은 대구시 달성. 지붕 없는 농협 하나로마트 옥상 주차장을 태양광 지붕으로 덮은 달성 솔라는 윈윈의 대표적 사례다. 하나로마트는 태양광 지붕 덕분에 눈·비가 와도 고객이 줄지 않게 됐다. 1440㎾짜리 설비에서 나오는 태양광 발전 수익은 덤이다. 대구 달서구의 MJ테크노파크의 공장 지붕에만 979㎾의 설비가 깔렸다. 죽곡정수장엔 1341㎾의 태양광 패널들이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마지막 찾은 곳은 대구 수성구의 하빈저수지. 3년 전부터 수상 발전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대로 아직 진척이 없다. 집값이 떨어지고 철새 도래지가 파괴되며 주변 상인과 지역 생계를 위협한다는 게 이유다. 김 사장은 “태양광을 할만한 곳은 다 했다. 남은 곳은 전국의 저수지와 4대강 주변인데 규제와 민원이 까다로워 사업이 쉽지 않다”고 했다. 비로소 그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에둘러 한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지금의 7%에서 20%로 확대한다고 했다. 불가능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우선 규제부터 걸림돌이다. 지자체들은 민원과 환경 파괴 우려로 규제를 되레 강화하는 추세다. 대구나 구미, 특히 야당 강세 지역은 더 힘들다. 울진군은 지난해 9월 태양광 발전시설이 ‘주요 도로에서 1000m 안에 입지하지 아니할 것’이란 조항을 추가했다. 성주군도 비슷한 조례를 만들었다. 그뿐인가. 4대강엔 ‘큰 나무 심기’ 규제란 게 있다. 수변 지역 태양광 설비는 기둥 사이를 가로 25m, 세로 50m 이상으로 하라는 규제다. 홍수가 나서 큰 나무가 떠내려올 때 걸리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규모라면 대형 빌딩을 지어야 한다. 태양광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런 규제를 푼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전국의 저수지와 4대강 수변 지역을 태양광으로 덮어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10%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태양광이 정권별 부침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면이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하고 노무현 정부도 장려해 ‘좌파 비즈니스’로 불리지만 태양광이 본격 활기를 띤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MB는 녹색 성장을 내세워 대형 발전사가 총 발전량의 4%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게 했다. 하지만 2011년 블랙 아웃 이후 원자력과 대형 발전소 위주로 갔다. 아쉬운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MB 정책을 거의 이어받았다. 역설적이지만 태양광이 가장 활성화한 시기도 지난 정부 때다.”
지난 정부 때 제일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로 들린다.
“2014~15년이 정점이었다. 연 매출이 300억~4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엔 절반으로 줄었다. 올해도 쉽지 않다.”
대안은 뭔가.
“두 가지 길이 있다. 폐기물 처리 사업이다. 태양광 설비의 수명은 20년이다. 무안에서 전국 최초 1㎿ 솔라테마파크를 시작한 게 2004년이다. 곧 태양광 폐기물 처리가 돈이 될 것이다. 두 번째 길은 해외다. 한국은 좁고 햇볕도 안 좋다. 동남아시아에만 가도 무한한 땅과 햇볕이 있다. 그걸 활용해야 한다.”
김상협 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左), 김범헌 한라이엔씨 대표(右)

김상협 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左), 김범헌 한라이엔씨 대표(右)

김 사장의 한라이엔씨는 지난해 해외사업 전담 부서를 꾸렸다. 첫 사업인 베트남 붕따우(Vung Tau) 발전이 결실을 앞두고 있다. 총 8200만 달러를 투자해 약 18만평의 산업단지 내에 70㎿의 태양광 설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들은 듯했다.

다시 두 번째 질문으로 돌아갔다. 태양광으로 전국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 평당 몇 천 원 하던 게 몇 만 원, 전남의 목 좋은 곳은 평당 5만원 짜리가 두 달 새 2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실투자금 8800만원, 월 200만원 수입 가능’ 이런 홍보물도 넘쳐난다.

강남에서도 태양광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아직 태양광 투자를 안 했다면 신 팔불출이란 얘기도 있다. 특히 노후용 투자에 좋다고 한다.
“제대로만 하면 연 10%의 수익률을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우선 땅이 없다. 지금 태양광사업자 중엔 사실상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많다. 못 쓰는 땅을 헐값에 사서 10만원 이상에 쪼개 판다. 땅값이 10만원 이상이면 연 8% 수익이 나기 어렵다. 태양광용으로 쪼개진 땅은 훗날 다른 용도로 팔기도 어렵다. 또 민원이 심해 개발허가가 안 나올 수 있고 한국전력의 전기사업허가를 못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걸 꼼꼼히 따질 수 없다면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김 사장의 16년 현장을 큰 그림과 연결하고 싶었다. 김상협 전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을 찾았다. 그가 무보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우리들의 미래’ 연구소는 현충원 가는 길에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을 설계했다. ‘동그란 네모’ ‘먹으면서 살 빼기’ 같은 형용 모순이란 소릴 듣기도 했지만, 녹색 성장이야말로 역대 정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조어(造語)라고 나는 생각한다. ‘녹색 수석’답게 머리도 초록색으로 염색한 김상협은 태양광에 긍정적이었다. 신재생에너지에 2030년까지 70조원을 쏟아붓겠다는 이 정부의 폭과 속도에도 만족해했다. 하지만 그는 탈원전엔 반대다. 대신 탈화석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태양광의 성공을 위해 세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청와대에 녹색 수석을 두라는 것이다. 추진 기구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국가 산업의 뼈대를 통째로 바꾸는 일이다. 구경제에서 신경제로의 전환이다. 산업에 종속돼 온 에너지를 혼자 날게 풀어주는 일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니다. 경제 부처는 물론 환경·사회 부처와 때론 맞서야 하며 규제에 완강한 지자체를 설득해야 한다. 풀뿌리 민심까지 움직여야 한다. 그야말로 재조산하(再造山河)다.

둘째, 태양광이 나라를 투전판으로 만들면 안 된다. 정부가 가격 보장 정책을 쓰면 태양광은 땅장사로 흐르게 된다. 이명박 정부 때도 경제수석실이 “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땅값이 들썩거릴수록 브로커가 몰리고 주민 반발도 커진다. 이권이 커지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선 벌써 “바람도 제주 것이다. 쓰려면 돈을 내라”고 한단다. 태양광은 폐기물도 많다. ‘폐기물 논밭’ ‘패널 저수지’ 같은 프레임에 갇히면 끝장이다. ‘녹조 라테’ 한 방에 무너진 4대강처럼 ‘온 국토를 파헤친 환경주범’으로 몰릴 수 있다. 가뜩이나 태양광은 ‘좌파 비즈니스’로 불린다. 70조원의 돈이 골고루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셋째, 탈원전 대신 탈화석이어야 한다. 원전을 줄이는 건 정답이 아니다. 원전 없이는 태양광도 없다. 태양광에 쏟아부을 수십조원의 재원은 발전단가가 싼 원전이 뒷받침돼야 조달 가능하다. 한전은 지난해 4분기 약 1300억원의 적자를 냈다. 18개월 만의 적자다. 석 달 전 2조7000억 흑자에서 곤두박질했다. 원전 10기를 세워 둔 탓에 비싼 가스발전 전기를 사와야 해서다. 원전 가동률을 낮출수록 요금 인상 압박은 더 커진다. ‘이 정부 내에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던 대통령의 공언도 공언(空言)이 될 수 있다. 당분간은 원전과 같이 가야 태양광도 산다.

김상협은 “2030년까지 신재생 20%는 불가능하다”며 “두 자릿수로만 가도 성공”이라고 봤다. 좁은 국토와 낮은 일조량, 환경 파괴 논란이 가진 한계다. 그가 찾은 대안은 ‘에너지 제국주의’다. 그는 이를 신제국주의라 부른다.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그는 ‘천하 에너지 재편’으로 해석했다. 시진핑이 신제국주의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에너지를 잡는 자가 모든 것을 잡는다. 중국은 우리가 할 걸 먼저 했다. 전기차·태양광, 모두 앞서간다. 남은 게 해외다. 재생에너지 생산기지를 해외에 두자. 당장 몽골이 최적지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진작 여기에 주목했다. 몽골 태양광으로만 한·중·일 세 나라가 쓰는 전력의 두 배 넘게 생산할 수 있다. 러시아를 연결할 수도 있다. 에너지는 경제·산업·환경이자 정치·외교·안보요 지정학이다. 5년짜리 호흡으론 안 된다. 10년, 백년대계를 그려야 한다.”

나는 세 가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관·재계, 학계의 여러 전문가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세 가지 질문을 하나로 묶으면 "대한민국은 과연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다. 많은 얘기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오늘은 풀뿌리 태양광 사업자와 청와대 녹색 수석, 두 사람만의 얘기로 맺는다. 태양광 사업자가 손발이라면 녹색 수석은 머리였다. 살아온 과정과 역할은 많이 달랐지만 둘의 눈은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한국의 에너지 문제, 해외에 답이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