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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분장 中 여배우 “중국 사랑해요”…인종 비하 논란

중앙일보

입력

중국 설 특집 버라이어티쇼 춘완의 단막극 ‘동희동락(同喜同樂)’ 한 장면. 중국의 중견 여배우 러우나이밍(婁乃鳴·사진 왼쪽)이 서양에서 금기시되는 흑인 분장으로 출연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CC-TV 캡처]

중국 설 특집 버라이어티쇼 춘완의 단막극 ‘동희동락(同喜同樂)’ 한 장면. 중국의 중견 여배우 러우나이밍(婁乃鳴·사진 왼쪽)이 서양에서 금기시되는 흑인 분장으로 출연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CC-TV 캡처]

중국중앙방송(CC-TV)이 지난 15일 방영한 설 특집 버라이어티쇼 춘완(春晩, 春節聯歡晩會·춘절연환만회의 준말)이 흑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중국 설 특집 버라이어티쇼 춘완의 단막극 ‘동희동락(同喜同樂)’ 한 장면. 중국의 중견 여배우 러우나이밍(婁乃鳴)이 서양에서 금기시되는 흑인 분장으로 출연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CC-TV 캡처]

중국 설 특집 버라이어티쇼 춘완의 단막극 ‘동희동락(同喜同樂)’ 한 장면. 중국의 중견 여배우 러우나이밍(婁乃鳴)이 서양에서 금기시되는 흑인 분장으로 출연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CC-TV 캡처]

논쟁의 발단은 올 춘완의 단막극 ‘동희동락(同喜同樂)’에 중국의 중견 여배우 러우나이밍(婁乃鳴)이 얼굴과 몸에 검은 칠을 하고 가슴과 엉덩이에 보정물을 넣고 중국인과 결혼하려는 아프리카 철도 여승무원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면서다. ‘동희동락’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신실크로드) 정책에 아프리카 주민들이 감사하고 있다고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10억 명 시청 올해 춘완서 ‘일대일로’ 선전 단막극 논란 #아프리카 유학생 “모멸감 느껴”, 중국 시청자 “문제 없다” #“‘백인 구세주’ 신화 대체하겠다는 관념 벗어야” 비판도

중국 설 특집 버라이어티쇼 춘완의 단막극 ‘동희동락(同喜同樂)’ 한 장면. 중국의 중견 여배우 러우나이밍(婁乃鳴)이 서양에서 금기시되는 흑인 분장으로 출연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CC-TV 캡처]

중국 설 특집 버라이어티쇼 춘완의 단막극 ‘동희동락(同喜同樂)’ 한 장면. 중국의 중견 여배우 러우나이밍(婁乃鳴)이 서양에서 금기시되는 흑인 분장으로 출연해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CC-TV 캡처]

단막극은 지난해 개통한 아프리카 동부 나이로비-뭄바사 철로에 근무하는 여승무원들이 등장해 유창한 중국어를 자랑하고, 배우 러우나이밍이 흑인이 분장한 원숭이와 함께 나와 “중국 의술 덕에 목숨을 건졌다”며 “중국과 중국인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됐다.

아프리카 현지인 수십 명이 원시 복장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과장된 민속춤을 추는 장면도 포함됐다. 서구 언론은 이 단막극이 아프리카를 낙후하고 우매하며 중국의 원조를 기다리는 곳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했다. 우간다에서 유학 온 베이징대 의대 유학생 미카카부고(23)는 “검은 얼굴 분장과 원숭이를 보는 순간 모든 아프리카인이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아프리카인들이 일본의 중국 침략 역사를 비웃지 않듯 서로의 민감한 역사는 존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 여론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베이징 주민 쉐리샤는 AP통신 인터뷰에서 “만일 인종차별 의도가 있었다면 당국이 방영을 허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방송을 옹호했다. 또 다른 주민 저우헝산은 “중국 배우가 연극이나 드라마에서 외국인 분장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특정 민족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 역시 해명에 나섰다. 친신민(秦新民) 올해 춘완 단막극 감독은 19일 법제만보 인터뷰에서 “애초 지난해 흥행 영화 ‘전랑(戰狼)2’에 출연했던 아프리카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중국어 수준이 낮아 극 출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러우나이밍 선생은 원래 이 작품의 감독이었으나 제작진의 권유에 못이겨 출연해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고 해명했다.

지난 2016년 중국에서 방영되면서 흑인 비하 논란을 일으킨 한 세탁 세제 광고. [인터넷캡처]

지난 2016년 중국에서 방영되면서 흑인 비하 논란을 일으킨 한 세탁 세제 광고. [인터넷캡처]

하지만 올해 춘완의 흑인 차별 논란은 과거 사례까지 보태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2016년 5월 방영된 중국의 한 세제 광고는 중국인 여성이 흑인 남성 입에 세제를 넣고 세탁기에 밀어 넣자 하얀 셔츠를 입은 중국 남성으로 변한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해외 언론이 이번 논란에 주목하는 이유는 춘완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중국에서 춘완은 올림픽 개막식과 버금가는 국가급 프로젝트로 해가 갈수록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무대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춘완 단골 출연자인 청룽(成龍)은 중국판 람보로 불린 국수주의 영화 ‘전랑2’의 감독 겸 배우 우징(吳京)과 함께 가곡 ‘중국’을 불렀다. 인기 아이돌 그룹 ‘티에프보이스(TF BOYS)’는 시진핑 주석이 지난 19차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 시한으로 지정한 2035년을 묘사한 ‘나는 2035년과 약속이 있어요’라는 노래를 부르는 등 대부분의 내용이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춘완은 최근 해마다 시청률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약 10억 명이 시청해 1억여 명 수준인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을 크게 누르고 기네스북이 인정한 ‘지구상 최고 시청률 프로그램’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중국어판의 류추디(劉裘蔕) 칼럼니스트는 19일 인종 비하 논란을 소개하며 “‘중국 구세주’가 역사적으로 잘못된 ‘백인 구세주’ 신화를 대신할 것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해 춘완 말미에 나온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 지도자의 새해 인사’에는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출연했다. 한국 문재인 대통령 촬영분은 춘완 대신 전날 오전 뉴스 프로그램 ‘조문천하(朝聞天下)’에서 방영되는 데 그쳤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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