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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인한의 퍼스펙티브

극단적 선택으로 떠밀리는 사회 … 사회적 타살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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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살 만한 세상 

“참으로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경제 위기 이후 급등한 자살률 #15년째 세계 최고 수준 지속 #사회안전망 부재, 생명경시 문화 #정신의학에 대한 낮은 인식 속에 #연 1만3000명이 자살로 내몰려 #사회적 고통으로 인한 자살은 #시대를 반영하는 현실의 민낯 #사회적 타살 해결하기 위해선 #개인에 책임 돌리기 보다는 #사회적 이해와 접근 필요해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의 첫머리에서 부조리한 세상에 직면하는 인간의 고뇌를 이야기한다. 자살률은 우리 시대의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일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35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003년 이후 15년째 세계 최고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2016년 자살률(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25.6명은 OECD 평균(12.1명)의 2배가 넘는다. 삶의 가치에 대한 계속된 경고에도 우리 사회가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가. 연약한 개인의 정신적 문제라고 축소하며 원인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제대로 대응해 왔는가.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적 위기와 궤를 같이해 외환위기 사태가 일어난 직후인 1998년 급증하였다. 2003년과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30명 이상으로 증가해 2011년 31.7명까지 치솟았다(그림1). 이후 맹독성 농약 등 치명적 자살 수단의 차단, 노인 복지를 위한 기초연금 시행 후 2016년 25.6명으로 감소 추세에 있으나 여전히 심각하게 높은 상태이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 종교적 편견, 사고와 자살 경계의 모호성으로 인해 축소 보고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실제 자살률은 더 높을 것이라 추정된다.

노인 자살률, OECD의 3배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인 자살이다. 2014년 10월 60대 독거노인이 장례비와 밀린 공과금을 넣은 봉투에 “고맙습니다. 국밥 한 그릇 하시죠”라는 메시지를 남겨놓고 목숨을 끊었던 비극은 여전히 우리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청장년보다 노년 자살이 낮은 전 세계 경향과 반대로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53.3명으로 OECD 평균의 3배이다. 또 연령에 따라 급증해 70대 54.0명, 80대 78.1명의 극심한 수준이다(그림2).

노인 자살의 이 특별한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필자는 사회안전망의 부재에 따른 가족 기능의 붕괴로 파악한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전적인 투자를 하고 장성한 자녀가 경제 활동을 하며 부모를 부양하던 사이클, 즉 효(孝)라는 이데올로기의 사적(私的) 복지체계는 90년대 말 경제 위기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용 안정성이 위태로워지고 이를 뒷받침할 사회안전망이 부재하여 경제활동인구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들이 부양해야 할 부모 세대는 경제적 대책 없이 빈곤의 직격탄을 맞게 되며 가족관계가 붕괴했다.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살이 미치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엄청나다. 자살자의 미래 소득 감소분은 연간 6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자살 시도로 인한 후유증 치료 등에도 큰 사회적 손실이 따른다. 자살로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들의 고통은 극심하다. 이들은 높은 우울감과 자살 생각을 경험하게 한다. 한 사람의 자살자가 평균 40명가량의 가족·친척·친구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할 때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50만명 이상이 자살에 의한 충격에 노출된다(그림3).

또 연예인의 자살은 사회적으로 큰 파급력을 가진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영향받아 자살이 급증했던 것을 묘사하여 ‘베르테르 효과’라 부른다. 우리나라도 유명 연예인의 자살을 전후로 평상시의 2배가량 자살이 급증한다. 언론계가 자살에 대한 자극적 보도를 자제하는 자정 기능을 담은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이 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는 일부 언론으로 인해 증폭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잇따르는 숙명적 자살

자살은 다양한 사회문화와 연결돼 있다. 공동체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고려장(역사적 진위 논란이 있다)이나 에스키모 문화, 전쟁이나 자살로 죽은 자만이 천국 빌할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은 바이킹 문화, 무사의 규율을 지키려는 할복 문화, 자살이 예술적 행위로 여겨지던 전성기 낭만주의 문화 등이 존재했다.

1879년 이탈리아의 정신의학자 모르셀리가 자살이 사회적 현상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1897년 자살이 사회현상임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사회학적 연구』이 나왔다. 이는 120년이 지난 지금도 자살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뒤르켐은 자살이 집합적인 사회의 힘으로 발생한다고 주창했다. 그가 설명한 세 가지 자살 유형은 지나친 사회 통합 때문에 개인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 자살, 사회 통합의 결여로 낮은 소속감을 가질 때 나타나는 이기적 자살, 사회 규제의 결여로 인해 사회적 무질서 속에 나타나는 아노미적 자살이다. 그런데 4번째 유형인 지나친 사회 규제와 억압으로 일어나는 숙명적 자살은 서구 사회에서 발생률이 낮다는 이유로 잘 다뤄지지 않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숙명적 자살이 우리 사회의 자살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억압 속에서 개인의 자유는 제한받고 있으며, 불평등한 경제 상황과 위태로운 직업 상태, 불안정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제도적 압박 때문에 자살로 떠밀리고 있다.

새 정부는 2017년 출범하며 국정운영 100대 과제 중 44번 과제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예방 중심 건강관리 지원’의 세부 내용에 자살 예방 및 생명 존중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획을 포함했다. 그리고 지난달 23일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통해 구체적 행동 계획으로서의 자살 예방 국가 계획을 발표했다.

행동 없이는 무의미한 자살예방정책

이전에도 국가 차원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자살 예방 국가 정책으로 2004년과 2009년 각각 제1차, 제2차 자살 예방 기본 계획이 수립됐다. 이어 2011년 ‘자살 예방 및 생명 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수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끝났다. 더구나 5년마다 국가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자살예방법에도 불구하고 2014년 발표됐어야 할 제3차 기본 계획은 2년간 발표되지 않는 공백 사태가 있었다.

이에 비해 이번 국정과제 안에 자살 예방이 포함된 것은 최초라는 의미가 있으며, 정부 중점사업으로 추진되는 것 역시 최초이다. 대체로 기존 정책과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구체적 행동 중심으로 재편되었다는 것이다. 즉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번 계획은 무의미하다.

일회적이고 가시적 자살 예방 정책 발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실현과 행동을 위한 정부의 책임성이 중요하다. 국립춘천병원 박종익 원장은 “자살은 마치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지는 상황”이라며 “배터리를 일부분만 충전해 주는 응급 처치는 미봉책에 불과하며 국가 자살 예방대책이 지속적인 전원을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살 예방 예산, 일본 3000억 vs 한국 157억

이 행동 계획을 실제로 수행할 인력과 예산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갖추는가가 문재인 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일본의 3000억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99억원이라는 2017년 예산에서 국회는 58억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그러나 자살 예방 계획 실현을 위한 조직과 인력·예산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신은정 부센터장은 “상담 인력, 게이트키퍼 양성 및 관리, 지역 협의체 구성 및 네트워크 관리를 위해 최소 3명의 전담인력이 기초지자체마다 필요하다. 이조차 갖춰지지 않으면 기존 계획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자체는 자살 예방 계획을 실행할 실제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므로 지자체 실무 인력을 증원하고 전문성을 강화해야 국가 행동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

자살 예방 행동 조직인 중앙자살예방센터가 1년 단위로 민간 위탁 운영되는 현 상황에서는 장기적 계획 수립이 불가능하다. 범부처 간 협업을 끌어내는 위상을 갖추지 못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자살 예방이 국가 차원의 공공영역에서 이뤄지도록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여야 한다.

자살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책임

개인의 정신 건강에 대한 미시적 접근과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는 복지 차원의 거시적 접근 두 가지가 동시에 추진돼야 함에도 현재까지 통합적 협력이 부족했다. 응급한 위기에 놓인 개인의 우울증 등 정신 병리적 문제에 개입하여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시급한 일이며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중요한 접근이다. 동시에 정신 치료로 해결될 수 없는 자살 원인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안정된 사회안전망을 보강하고 공동체를 회복하여 살 만한 사회로 만드는 거시적 접근이 궁극적으로 추구돼야 한다.

이러한 접근들을 효과적으로 조정하고 국가 전체의 자원과 노력을 조직하여 운용하는 것이 국가 정책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선 사회 전체의 힘이 모여야 한다. 그 시작은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문제 인식의 공유에 있다.

인간에게 분명한 한 가지는 삶과 죽음이 단 한번 주어진다는 점이다. 인간의 삶이 존엄한 만큼 죽음도 존엄해야 한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자살로 떠밀리는 사회라면, 그리고 사회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서조차 무책임한 사회라면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사회다. 사회적 타살을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에게 그 책임을 미뤄서는 안 된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