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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업비트 충전해드립니다’ 등장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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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고란 경제부 기자

고란 경제부 기자

‘업비트 충전해드립니다(기업계좌 없으신 분 or 신규)’.

지난 13일 한 암호화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지난달 30일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가 실시됐다. 그렇다고 투자가 자유로워진 건 아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권한이 없는 정부가 은행 목줄을 쥐고 나섰다.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해 조금이라도 불미스런 일이 발견되면 은행에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놨다. 행여나 문제가 될까 은행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기업은행이 납작 엎드렸다. 국책은행인 데다 금융당국의 경고를 받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기업은행에 문제 소지가 있는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해 경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과 연계된 거래소가 업비트다. 국내 1위다. 그런데 기업은행이 실명 확인 계좌 발급에 주저하면서 업비트는 (현금 입금이 가능한) 신규 회원을 못 받고 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는 셈이다. 업비트를 통해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암호화폐 ‘구매 대행’이 등장했다. 이런 구매 대행은 돈만 받고 ‘먹튀 ’해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거래 실명제라는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몸을 사리는 은행들 탓에 블록체인협회 자율규약을 통한 거래소 규제도 유명무실해 지고 있다. 은행들은 4대 거래소를 제외한 중소 거래소에는 실명 계좌 발급을 안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사고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회원 수가 모두 합쳐 100만 명에 이르는 중소 거래소들은 이에 반발, 협회 이탈 움직임을 보인다.

건전한 시장 발전을 위해 당분간 신규 암호화폐, 소위 ‘잡(雜)코인’ 상장을 유보하자는 협회 규약은 물 건너갔다. 중소 거래소에선 잡코인 상장이 줄을 잇는다. 잡코인은 시가총액과 거래 규모가 작아 시세 조정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문제가 터지면 이를 덮기 위해 임시방편 대책을 내놓다 보니 벌써 부작용이 속출한다. 일본이 거래소 등록제 등을 도입한 건 지난해다. 2014년 세계 최대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 파산 이후 3년 만이다. 미국은 “규제를 도입하기 전 암호화폐의 득과 실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백악관 사이버 담당 롭 조이스)며 신중한 입장이다. 한국 정부에 미래를 대비하는 암호화폐 대책(혹은 규제책)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바람일까.

고란 경제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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