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의성군은 인구 5만3474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이다. 한국여자컬링대표팀 김초희(22)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의성이 얼마나 작은지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저 빼고 팀원 언니 네 명 모두 의성 출신인데요. 언니들하고 같이 다니면 다 아는사람, 아는사람의 아는사람이에요. 길을 걸어가면서 ‘안녕하세요. 팀 막내입니다’란 인사를 쉬지않고 해야해요.”
그러자 김영미(27)는 경상도 사투리로 “진짜로 시장에 가면 누구 딸인지 다 아세요.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니 철파리 살제?’라면서 알아서 동네에 내려주세요”라며 꺄르르 웃었다.
의성은 특산물이 마늘이라는 정도만 알려져있다. 그런데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이 마늘보다 유명해질 기세다.
의성 출신으로 구성된 한국여자컬링대표팀(세계 8위)은 17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예선 4차전에서 컬링종주국이자 세계 4위 영국을 꺾었다. 앞서 한국은 세계 1위 캐나다, 세계 2위 스위스도 쓸어버렸다.
‘강팀 킬러’ 한국은 예선에서 3승1패로 10팀 중 3위다. 여자부는 10팀이 예선에서 한 번씩 맞붙는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4강 진출팀을 가리는데, 4강진출 전망이 밝다.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났다.
실제로 의성에 가보면 놀거리가 마땅치 않다. 젊은 친구들은 신나게 놀고 싶으면 인근 안동으로 향한다.
의성여중·고 출신으로 구성된 한국여자컬링대표팀 선수들도 처음엔 놀게 없어서 컬링을 시작했다. 김경두(62) 전 대한컬링연맹 부회장이 2006년 경상북도와 경북체육회 도움을 받아 국내 최초의 컬링경기장을 지은게 계기가 됐다.
김영미는 “의성여고 1학년이던 2007년, 친구 (김)은정이와 방과 후 특기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어요. 6개월 뒤에 친동생 (김)경애(24)가 물건을 가져다주러 컬링장에 왔다가 얼떨결에 따라하게 됐죠. 의성여중 2학년이던 경애가 학교 칠판에 ‘컬링할 사람’이라고 적었는데, 영미 친구 (김)선영(25)이가 자원한거죠”라고 말했다.
한국은 스킵 김은정·리드 김영미·세컨드 김선영·서드 김경애·후보 김초희로 구성됐다. 경북체육회 소속인 이들은 10년 넘게 같은 아파트에서 이층침대를 나눠쓰며 동고동락하고 있다. 드라마를 함께보고 서로 연애사까지 속속들이 안다.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하는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을 외신도 주목했다.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17일 “한국여자컬링 선수들 모두 성이 김(金)씨로 똑같다”고 보도했다. 한국선수들 유니폼 뒤에 E.KIM, Y.KIM, S.KIM, K.KIM, C.KIM이라고 새겨진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실제로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은 국제대회에 나갈 때 마다 “한국은 김(金)씨 가문의 아버지와 딸 6명으로 이뤄진 팀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선수 5명의 성(姓)이 모두 김씨인데다 김민정(37) 감독과 단장격인 김경두 전 컬링연맹 부회장까지도 모두 김씨이기 때문이다.
컬링은 보통 스킵의 성을 따서 팀명을 붙인다. 그래서 한국팀의 이름은 ‘팀 킴(Team Kim)’이다. 모두 한 가족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지만, 김영미와 김경애 두 사람만 친자매다.
김경애는 “팀원 전원이 김씨라고 하면 외국인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거든요. 그래서 2013년 아침식사를 하다가 각자 음식이름을 따 즉석에서 애칭을 만들었어요”고 말했다. 김경애의 애칭은 ‘스테이크’, 김영미는 ‘팬케이크’, 김선영은 계란요리 서니 사이드 업에서 따온 ‘써니’다. 또 김은정은 요거트 이름에서 따온 ‘애니’, 막내 김초희는 과자이름인 ‘쵸쵸’다.
취미로 컬링을 시작한 ‘의성 시골소녀’들이 세계 컬링계를 휩쓸자 팬들의 반응이 뜨겁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내 고향 의성의 자랑스런 딸들’, ‘의성마늘처럼 매운맛을 보여주세요’, ‘의성 갈릭 걸스 화이팅’ 등 응원댓글이 달리고 있다.
마늘을 콘셉트 레스토랑 ‘매드 포 갈릭(Garlic)’에 빗댄 ‘매드 포 컬링’,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 별명인 갈락티코(galactico·은하수)에 빗댄 ‘갈릭티코’란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한국여자컬링대표팀은 현재 자신들이 어느정도 관심을 받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평창올림픽 기간 선수촌에서 휴대폰 없이 생활하기 때문이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종목인데다 행여 악플을 보고 상처받을까봐 코치진에 휴대폰을 자진반납했다.
평창올림픽에서 컬링여자대표팀 선수들은 믹스트존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답변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2015년부터 5차례 정도 인터뷰를 했던 이 선수들은 평소엔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왁자지껄하다. 김영미가 “빙판을 닦는 우리가 만약 메달을 딴다면 청소기 광고를 찍을 수 있을까?”라고 말하면, 김은정이 “요즘엔 로봇청소기 나와서 틀렸어”라고 농담하는 식이다.
대회 전 ‘의성에서 특산물 마늘만큼 유명 인사 아니냐’고 물었다. 김은정은 “이젠 마늘과 싸워야하나요? 저희가 평창에서 마늘보다 유명해줄 수 있을까요”라며 웃었다.
물론 ‘팀 킴’과 의성 마늘이 경쟁자는 아니다. 메달을 딴다면 ‘팀 킴’은 작지만 맵고 단단한 의성 마늘처럼 다부진 팀으로 세계에 알려질 것이다. 의성 군민들은 간절히 ‘팀 킴’의 활약을 기원하고 있다.
'의성 마늘 소녀들'은 18일 오후 2시 5분 세계랭킹 10위 중국과 경기를 치른다.
강릉=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