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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동차 수출쿼터 요구 규범에 어긋나, 단호히 거부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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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호 18면

김철수 전 WTO 사무차장

김철수

김철수

김철수 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차장(77)은 한국 통상 인맥의 ‘1세대’로 꼽힌다. 1980년대 수퍼 301조를 앞세운 미국과의 통상 마찰 현장에서 협상 전략을 지휘하고, 농산물 시장 개방의 문을 열게 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정부 수석대표로 활약했다. 1994년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구 요직에 도전해 WTO 내 2인자인 사무차장(1995~99)을 지냈다. 그의 행보는 이후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으로 이어지는 한국인 국제기구 수장 탄생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뒤 2005년부터 민간기구인 무역투자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경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그를 만났다.

한·미FTA 감정적 대응하지 말고 #반덤핑 조치 개선 등 실익 우선 #중국과는 서비스분야 개방에 주력 #한국인 투자자 보호장치 확보해야 #주요 교역국 보호무역 확산에 대비 #시장 따라 뒤바뀌는 정책은 문제

보호무역주의의 광풍이 거세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3년간 세계 경제가 불황을 겪으면서 이미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통상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흐름이 지속·강화된다면 다른 나라들도 할 수 없이 그 정책을 따라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1980년대 미국의 통상 압력이 기승을 부리자 몇 년 후 유럽연합(EU)이 똑같은 정책으로 맞선 적이 있다. 주요 교역 국가 간에 이러한 ‘전이효과(spill-over effect)’가 예상되는 만큼 작금의 세계 경제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프의 통상정책이 결국 통한다는 이야기인가.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는 경제의 경쟁력을 따지기보다는 WTO나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로 인해 미국이 무역수지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9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는 발표는 앞으로 미국의 공세가 거세질 것임을 예고한다.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그동안 내세웠던 정책의 효과를 거두려고 더욱 거칠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트럼프가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을 강한 톤으로 비난한 데 비해 실질적인 무역규제조치로 이어진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올해 중국에 대한 공세가 어떻게 이어지느냐에 따라 한국이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진행 중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내가 미국과 협상할 때만 해도 한·미 동맹의 가치가 중시됐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공화당 정부와는 달리 ‘안보는 안보, 통상은 통상’이라며 각각 다른 이슈로 접근하고 있다. 국내 여론에 좌우되는 포퓰리즘에 기대어 정책을 판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공세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경쟁국에 대해 미국 시장 선점 효과가 있는 FTA가 한국에 유리한 협정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역적자를 해결하라는 주장에 대해 무역수지의 균형 달성을 위한 방법론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불만을 제기하는 현행 환경·안전 규제 등이 국제 기준보다 과도하다면 과감하게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한국의 자동차 수출이 너무 많다며 자율쿼터까지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수출 자율 쿼터 카드를 꺼내들면 ‘관리무역을 하자는 이야기냐’며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WTO 규범에 어긋나는 주장인 데다 반도체·농산물 등 다른 분야까지 요구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로 끝내 FTA가 파기될 경우 미국이 받을 국제적인 비난은 상당할 것이다.”
우리가 꼭 얻어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반덤핑·상계관세 등의 무역구제 조치를 개선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현행 FTA 조항에는 ‘(이런 문제를 다룰) 무역구제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위원회 활동이 유명무실했던 만큼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각종 무역 규제 조치에 대해 양국 정부에 해결 방안을 권고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해야한다.”
WTO 재임 시절 중국의 WTO 가입 협상 실무를 총괄한 바 있다. 당시 중국을 접해본 입장에서 한·중 FTA 서비스·투자 분야 추가 협상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면.
“내 경험에 비춰보면 중국 협상가들은 상당히 터프하다. 중국의 시장 파워가 상당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투자가에 대한 보호조치는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서비스 개방분야도 문화 교류·관광·법률 서비스와 같이 인력 이동을 전제로 한 분야부터 먼저 확보해야 한다.”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나라가 많아지면서 국제 통상 규범을 만들기 위해 다자간 협상을 주도해온 WTO 체제의 빛이 바래지고 있다.
“만장일치제와 일괄타결제를 채택한 현행 의사결정 구조가 문제다. 한 나라만 반대해도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다. 유엔처럼 다수결 합의제를 도입하고, 의제도 여러 개의 분야로 쪼개서 진전된 부분부터 먼저 타결해나가는 방식으로 내부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세계 경제의 대립 체제가 더욱 깊어지고 있어 곧 WTO를 지속가능한 국제기구로 복원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 WTO의 무역분쟁 해결 절차야말로 미국의 부당한 무역 규제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장치 아닌가.”
경제 원로로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떻게 보나. 정책 입안자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새 정부 들어 특정 경제 정책을 발표한 뒤 시장 반응이 나쁘면 이를 번복하거나 철회하는 경우가 잦아진 게 문제다. 경제정책이란 미리 시장 반응까지 충분히 예상하면서 추진하되 한번 시작하면 일관성 있게 집행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철수
· 미 매사추세츠주립대 석·박사
· 상공부 통상진흥국장·차관보
· 상공자원부 장관(1993~94)
· WTO사무차장(1995~99)
· 세종대 총장(2001~05)
· 중앙대 이사장(2015~16) 역임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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