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채일의 캠핑카로 떠나는 유럽여행(19)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아왔다. 아쉬운 마음에 카시네 공원에서 매주 화요일 아침에 열리는 벼룩시장을 다녀온 다음 피렌체의 역사문화지구를 한 바퀴 더 둘러보는 것으로 피렌체 관광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내일은 로마로 이동해 렌터카 회사에 차를 반납하고, 로마 국제공항에서 귀국길에 오른다.
서울 집을 떠나 아내와 유럽여행을 한 지 어느덧 한 달. 지난 시간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정말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삶에 대한 위로와 보상이었을까, 아니면 앞으로 펼쳐질 인생 2막에 대한 격려였을까? 아마도 후자인 듯하다. 캠핑카 여행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당당하게 마주하도록 나 자신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토록 고대하던 여행이었지만 막상 캠핑카를 몰고 길을 나서보니 생각과 다른 점도 많았다. 베테랑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걱정 없이 차창 밖의 풍경만 즐기던 때와는 모든 게 180° 달랐다.
무엇보다 커다란 몸집의 수동차량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말피라는 천길 벼랑길을 가슴 졸이며 다녀온 후유증이 컸다. 한 번 놀란 가슴은 그 후로도 경사가 가파르거나 좁은 길만 만나면 울렁거리곤 했다. 옛날 도로가 많은 유럽에서의 운전은 사실 여행 내내 늘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기치 않게 시동을 꺼뜨렸을 때 짜증 내지 않고 조용하게 기다려주던 유럽인의 이해심이 참 고마웠다. 고속도로에서 앞선 차를 추월한 후에는 1차로를 비워두고 곧바로 주행차선으로 옮겨 타 모든 운전자가 원활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 역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자세였다.
실제 캠핑카 여행을 해보니 유럽은 어디를 가도 깨끗하고 저렴한 캠핑장이 많았다. 밤늦도록 일행과 어울려 음식과 술을 즐기는 대신 해만 지면 각자의 자리로 들어가 조용하다 못해 오히려 썰렁한 유럽 캠핑장의 모습은 처음에는 재미없고 낯설었다. 하지만 가족끼리 조용하게 저녁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결국 부러움의 시선을 던지게 된다.
돌이켜보니 한 달간 자유롭게 방랑했던 유목민의 생활이 진정 행복했다. 사실 모든 여행이 새로운 만남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낯선 도시에서 직접 차를 몰고 여행 동선을 짜며 만나는 도시는 풍성한 색채로, 그 어느 여행에서보다 살아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들도 그랬다. 캠핑이라는 공통의 취미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캠핑장에 둥지를 틀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느껴지는 묘한 동질감이 있다.
캠핑 여행의 진정한 맛을 알만하니 여행이 마무리되어간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흐른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아야 또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 않겠는가.
장채일 스토리텔링 블로거 blog.naver.com/jangchai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