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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페어에 묻혀도…한국 피겨 페어는 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리스케이팅 진출만 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14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페어 쇼트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감강찬과 조를 이룬 김규은이 점수를 확인한 뒤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페어 쇼트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감강찬과 조를 이룬 김규은이 점수를 확인한 뒤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피겨스케이팅 페어 국가대표 김규은(19)은 지난 1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 9일 팀 이벤트 페어 쇼트프로그램 경기에서 실수없는 경기를 펼치면서 김규은의 꿈은 더욱 부풀었다. 피겨 페어 개인전에서는 더욱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김규은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규은은 14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감강찬(23)과 조를 이뤄 나간 피겨 페어 쇼트프로그램 경기에서 42.93점을 어어 최하위로 밀려 컷 탈락했다. 단체전 쇼트프로그램(52.10점) 점수보다 9.17점이나 낮았다. 김규은-감강찬 조가 세웠던 최고점(55.02점)에서 12.09점이나 못 미쳤다.

[포토]김규은-감강찬,아쉬운 엉덩방아

[포토]김규은-감강찬,아쉬운 엉덩방아

김규은은 링크를 나오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키스앤크라이존(점수를 확인하는 곳)에서도 믹스트존(취재공동구역)에서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김규은은 스로 트리플 살코(기본점 4.5점) 착지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턱이 빙판에 닿으며 큰 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 연기가 불안했다. 결국 22개팀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 상위 16개조에 주어지는 프리스케이팅 출전에 살패했다.

믹스트존에서 감강찬이 "아쉽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후회없다. 좋은 경험이었다"며 웃었지만, 곁에 선 김규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참지 못해 뒤를 돌아 한참 눈물을 닦았다. 올림픽 무대에 오르기까지 했던 수많은 마음고생이 떠올라 더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14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페어 쇼트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감강찬이 연기를 마친 뒤 아쉬워하는 김규은을 위로하며 링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페어 쇼트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의 감강찬이 연기를 마친 뒤 아쉬워하는 김규은을 위로하며 링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12월 김규은과 감강찬은 페어 팀을 결성하고, ‘피겨 강국’ 캐나다로 건너가 꼬박 2년간 매일 6시간씩 스케이트를 탔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체력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훈련비·주거비·식비 등을 합쳐 1인당 매달 400여만원을 썼다. 대부분 자비로 충당했다. 그렇게 지난 2년간 2억원을 넘게 썼다.

부상도 많이 당했다. 김규은은 지난 여름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아픔을 참고 훈련하다가 후방십자인대까지 끊어졌다. 하지만 주사를 맞고 시합에 나갔다. '평창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팀을 결성한지 약 2년. 아직 호흡이 척척 맞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신체적인 한계도 있었다. 감강찬 키가 1m72㎝, 김규은이 1m61㎝로, 둘의 키 차이는 11㎝다. 페어 조 치고는 차이가 너무 작다. 남자가 여자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리프트 기술을 위해선 둘의 차이가 20㎝는 돼야 한다. 그래서 감강찬이 올림픽을 앞두고 리프트 동작을 할 때 오른쪽 어깨를 다쳐 고생했다.

피겨 페어 감강찬(오른쪽), 김규은 선수가 9일 태릉 빙상장에서 중알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감강찬, 김규은 선수는 북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출전을 못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피겨 페어 감강찬(오른쪽), 김규은 선수가 9일 태릉 빙상장에서 중알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감강찬, 김규은 선수는 북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로 출전을 못 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결국 둘은 자력으로는 올림픽 페어 출전권을 따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개최국 쿼터를 받은 덕분에 평창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됐다. 비록 다른 출전 선수에 비해 실력은 떨어지지만,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했다.

하지만 마음고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 1월 초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남북한 피겨 단일팀을 제안하면서 올림픽에 설 수 없다는 불안에 걱정이 컸다.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함께 훈련했던 북한 피겨 페어 염대옥-김주식 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김규은-감강찬 조는 소외감도 느꼈다.

남북한 피겨 페어 조들. 한국 감강찬, 북한 김주식과 염대옥, 한국 김규은. [사진 감강찬]

남북한 피겨 페어 조들. 한국 감강찬, 북한 김주식과 염대옥, 한국 김규은. [사진 감강찬]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규은은 강릉에 입성하면서 "(염)대옥이 생일선물을 준비했다"며 활짝 웃었다. 14일 쇼트 경기 실수로 속상한 상황에서도, 외신 기자들이 믹스트존에서 묻는 북한 이야기에 성실히 답변해줬다. 감강찬은 "주식 형과 올림픽 무대에서 만나서 기쁘다. 정말 잘하는 팀"이라고 했다. 염대옥-김주식 조는 쇼트 11위로 프리스케이팅에 진출했다.

14일 강릉아이스아레나 믹스트존에서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있는 피겨 페어 김규은-감강찬 조.

14일 강릉아이스아레나 믹스트존에서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있는 피겨 페어 김규은-감강찬 조.

김규은-감강찬의 첫 올림픽 여정은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피겨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도 피겨 페어 선수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더욱 열심히 하겠다"던 둘의 각오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강릉=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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