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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제임스 후퍼의 비정상의 눈

바람직한 출산장려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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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제임스 후퍼 영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제임스 후퍼 영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올해로 결혼한 지 4년 차가 되었다.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우리 부부는 우정을 다지고 서로를 지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쯤 되니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는 언제 가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거기에 ‘혼혈이니 예쁘게 생겼을 거예요’ ‘아내분은 몇 살인가요, 나이를 생각해야죠’ 등의 첨언도 따라붙는다. 하나같이 아이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부담감을 심어주려고 한다. 출산에 대한 압력은 특정 국가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 한국 모두에서 겪은 일이다.

한국 정부는 2006년부터 출산 장려책을 펼쳐왔다. 지난해에만 저출산 대책 예산이 20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예산의 상당 부분은 다둥이 자녀 가족에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이는 잘못된 접근법이다. 출산 결정의 주체가 되는 여성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아, 사회에서 여성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보조금을 받자고 경력 단절, 개인 자유, 심지어 인생 목표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비정상의 눈 2/15

비정상의 눈 2/15

여기에 사회적으로 내재한 성차별이 존재한다. 결혼을 하면 자녀를 갖는 것이 당연하고, 육아를 하며 자연스레 여성 쪽에서 일을 그만두는 것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통념으로 여성에게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여겨지게 된다. 임신 전후의 과정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희생에 대해서는 거의 인정받는 바가 없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면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녀를 갖거나 갖지 않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자녀를 낳을 것이냐 개인 꿈을 좇을 것이냐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사회적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성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만약 출산을 원한다면 지속적으로 직업을 유지해 나가도록 도울 방법을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비로소 바른 정책이 세워지고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임스 후퍼 영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