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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금융 변동의 파도 앞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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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올해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정하다. 1월에 가파르게 동반 상승하던 전 세계 주가가 2월 들어 순식간에 추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할 것이라는 예상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글로벌 유동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신흥국 금융시장 채권 금리가 상승하고 주가와 통화가치가 하락했다.

금리 인상과 유동성 축소로 #글로벌 금융 변동성이 높다 #고위험 자산 투자는 줄이고 #부채와 취약 요인 개선해서 #위험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공포 심리에 과도하게 빠져들 필요는 없다. 세계 경제는 계속 호황이고 기업 실적도 좋다. 지금의 현상은 과열된 금융시장의 자연스러운 조정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올 한 해 금리 인상과 유동성 축소가 본격화되면 국제 금융시장은 불안정하고 가격 변동은 지난해보다 훨씬 심할 것이다. 정보가 불확실해 심리적 요인이 크게 지배하는 금융시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 큰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투자자들은 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고위험 자산에 대한 과도한 투자를 줄이고 금리 인상에 대비해 부채도 줄여야 한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세계 금융시장의 변화에 따라 통화·금융·외환 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하고 우리 경제의 취약 요인을 개선해 글로벌 금융 충격의 국내 파급 효과를 줄여야 한다. 가계부채 관리와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힘쓰고 부동산시장 과열을 막고 금융시장 안정과 건전성 감독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벌거벗고 수영을 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밀물이 들어온 넓은 바다에서는 벌거벗고 수영을 해도 실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썰물이 빠지면 하나둘 난처한 모습이 드러난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유동성이 빠질 때 손해를 크게 보지 않으려면 미리 수영복을 챙겨 입어야 한다.

이종화칼럼

이종화칼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계속된 초저금리 시대가 이제 막을 내리고 통화정책의 ‘정상화’ 과정이 시작됐다. 미국 경제의 성장세와 물가 상승 기대를 감안하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해 0.25%포인트씩 총 4번에 걸쳐 인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정부의 대규모 감세 조치와 재정지출 확대로 경기 과열과 자산가격 거품(버블)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실러 교수는 지금 미국 주식이 1929년 대공황과 2000년 닷컴 버블 때만큼 고평가됐다고 경고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가 높다. 영국중앙은행,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도 점차 이자율을 올리고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것이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돈줄을 다시 조이기 시작하면 전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진다. 중앙은행들이 대량으로 구매했던 채권을 점차 매각해 보유 자산을 축소하면 채권 금리는 상승한다. 이러한 선진국의 유동성 회수는 신흥국 금융시장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불러온다. 돈은 개방된 금융시장을 통해 국경을 넘어 밀물처럼 밀려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과거 자료를 보면 신흥국가들로 들어온 자금은 미국 시장 금리가 오를 때 빠르게 빠져나갔다. 외채가 많고 재정과 무역수지가 적자이며 금융 부문이 취약한 국가들은 위험을 겪을 수 있다.

20년 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외환위기를 겪었다. 금융기관과 기업의 단기 외화 차입이 많았고 외환보유액이 부족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제 한국이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단기 외채 비중이 작고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며 주요국들과의 통화 스와프로 만약을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 무역, 투자 관계가 밀접한 신흥국들이 금융위기를 겪으면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파급 효과가 밀려올 것이다.

멕시코는 우리보다 인구와 면적이 모두 두 배가 넘는 큰 국가다. 80년대 중반까지 멕시코는 한국보다 잘사는 국가였고 경제 규모도 월등히 컸다. 그러나 현재 멕시코의 1인당 소득은 9200달러로 한국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멕시코 경제는 82년과 94년에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성장률이 급락했고 아직도 중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시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위기를 겪었다. 세계 경제 변화에 대한 대응이 신흥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종종 좌우했다.

한국은 20년 전 외환위기에 잘 대응해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10년 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잘 넘겼지만 아직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닥쳐올 세계 금융시장의 파도에 잘 대비해 위기를 예방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