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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운전대 잡은 문 대통령, 김정은·트럼프 함께 태우고 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평창 구상’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꿰뚫는 큰 줄기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염두에 둔 평창 구상의 골자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남북 대화와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선순환을 끌어내는 것이다.

북 비핵화 의제가 ‘평창 구상’ 관건 #청와대 “미 입장 우리와 가까워져” #문, 펜스에게 탐색적 대화 요청 #내달 예정 한·미 군사훈련이 변수 #미국, 북 연계 라트비아 은행 제재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의 방한으로 형성된 화해 분위기는 문 대통령의 평창 구상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는 첫 단계일 뿐이다. 평창 구상 완성을 위한 고난도 미션은 이제 시작이다.

관건은 문 대통령이 어렵게 운전대를 잡은 자동차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을 모두 태우는 것이다. 청와대는 “미국의 태도와 입장이 우리와 많이 가까워지고 있다”(13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고 했다. 실제 미국이 “북·미 대화 시기는 북한에 달려 있다”(12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는 입장을 보이고, 김정은이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는 등(12일 북한 대표단 방한 결과 보고 뒤)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만나 직접 북·미 간 탐색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비핵화를 위한 공식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기 전이라도 미국이 직접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접촉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귀국길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원하면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핵과 관련한 북·미 간 근본적 입장 차는 여전하다. 미국이 내건 조건은 ▶북한과 탐색적 대화를 할 수도 있지만 본협상을 시작하려면 비핵화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 ▶대화 자체에 대한 보상은 없다 ▶대화 가능성과 별개로 최고의 압박을 계속한다 등으로 요약된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14일 미 재무부가 북한의 불법 무기 프로그램과 연계된 혐의로 라트비아의 민간은행이 미국 금융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재했다고 보도했다. 북한과 관련 유럽 은행에 대한 미국의 첫 제재다.

반면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으로서 ▶핵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일은 없으며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 위치에서 군축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 상태로는 접점을 찾기 힘들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해빙 분위기가 ‘임시 평화’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를 돌아보면 남북 관계는 연속극이 아니라 단막극에 가깝다. ‘평창’편의 주연은 김여정과 현송월, 감독은 김정은이었지만 ‘평창 이후’편의 시나리오나 감독과 주연은 전혀 알 수 없다”고 비유했다.

당장 문 대통령이 운전하는 한반도 자동차가 전진할지 후진할지를 판가름할 큰 고비가 코앞이다. 3월 25일까지 연기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과 만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더 이상의 연기나 축소는 없다는 단호한 입장으로 4월 초로 날짜를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연합훈련을 올림픽 직후 곧바로 실시하는지를 북한의 진정성뿐 아니라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확인하는 리트머스처럼 인식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북한은 남북 접촉이 이뤄지는 중에도 “연합훈련 시 기존의 긴장 국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남북 관계와 연합훈련을 연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연합훈련 시점이 오기 전 발 빠르게 움직여 북·미 관계 변화를 위한 작은 단초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향후 한반도 정세는 연합훈련 재개 전 북·미 간 탐색적 대화라도 이뤄질지 여부에 달려 있다”며 “한·미 간에는 일단 탐색적 대화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북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감안하면 1, 2차 남북 정상회담 때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수 교수는 “평창 동력을 이어 가려면 현 상태에서 상상 가능한 방법으로는 안 된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북한의 선택에 향후 국면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한·미 등 국제공조 체제를 통한 비핵화 달성이라는 원칙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이를 망각하고 ‘북·미 대화만 시작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북한에 이용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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