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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 선정 '한국 5대 부자' 후배 창업가 육성에 매진하다

중앙일보

입력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그룹 의장이 항상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있다. 바로 후배 창업가 육성과 지원을 위해 설립한 오렌지팜이다. 분기마다 열리는 리뷰 데이, 후배 창업가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그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창업가로서 겪은 생생한 이야기와 조언을 해준다. 후배 창업가들이 입주하고 싶은 육성센터로 오렌지팜을 꼽는 이유다.

2014년 4월 오렌지팜 설립 이후 분기마다 진행되고 있는 ‘리뷰 데이’ 모습. 오렌지팜 입주사들의 현재와 미래를 발표하는 자리다.

2014년 4월 오렌지팜 설립 이후 분기마다 진행되고 있는 ‘리뷰 데이’ 모습. 오렌지팜 입주사들의 현재와 미래를 발표하는 자리다.

# 2017년 12월 21일 오전부터 서울 서초구 방배3동에 있는 한 건물 지하 1층 강당에 스타트업 창업가와 투자자 등 업계 사람들이 모였다. 2014년부터 시작된 오렌지팜 ‘리뷰 데이(Review Day)’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흔히 ‘데모 데이’로 불리는 스타트업 창업가가 사업 현황과 자신의 비전을 발표하는 행사다. 이날 두브레인, 비케이브, 짐싸, 모닛, 메디블록 같은 스타트업 11곳의 창업가 혹은 임원이 참석해 발표했다. 이날 팀당 15분이 주어졌다. 각 팀의 과거·현재·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순서가 있다. 스타트업 관계자의 발표가 끝나면 바로 이어지는 Q&A 시간이다. 말 그대로 발표자가 궁금한 것을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신규 개발자를 채용 중인데, 적절한 연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중국 (게임) 퍼블리셔와 업무를 하는 데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비즈니스 매너를 알고 싶다” “조직 운영에 대해 고민이 많다” “파트너십을 만들어 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해달라” 등 하소연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이날 이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준 이들은 스마일게이트 홀딩스 양동기 대표,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한용운 상무, 스마일게이트 홀딩스 여승환 이사,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 구영권 부사장 등이었다. 멘토링을 담당했던 인사들을 보면 이 행사가 어디에서 주최했는지 눈치 챘을 것이다. 바로 글로벌 게임 개발사 스마일게이트다. 오렌지팜은 스마일게이트가 2014년 마련한 스타트업 육성 지원 센터 이름이다. 이날 리뷰 데이에 참석한 창업가들은 현장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즉석에서 얻어 갔다.

스타트업에 빠진 CEO(2)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그룹 의장

지역과 해외에 스타트업 육성 센터 마련해 눈길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입주하고 싶은 육성 센터로 꼽히는 오렌지팜은 권혁빈 의장의 직접 제안으로 설립될 수 있었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입주하고 싶은 육성 센터로 꼽히는 오렌지팜은 권혁빈 의장의 직접 제안으로 설립될 수 있었다.

오렌지팜은 요즘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가장 입주하고 싶은 스타트업 육성 센터로 꼽힌다. 오렌지팜은 서초센터를 시작으로 신촌센터(2015년 4월 오픈), 부산센터(2015년 9월 오픈), 중국 베이징센터(2016년 8월 오픈)까지 총 4곳이 운영되고 있다. 2017년 12월까지 총 116개 스타트업이 이곳에 입주했다. 게임 분야 스타트업이 이 중 55%(64곳)를 차지해 가장 많고, 앱·서비스 스타트업이 27%(31곳), 소프트웨어 개발사(15%) 등이 입주했다.

오렌지팜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오렌지 트랙(Orange Track)’이라는 시스템 덕분이다.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를 지원한 후 투자까지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단순 공간 지원에서 벗어나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게 우리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 있는 3곳의 오렌지팜이 최대 수용할 수 있는 스타트업 수는 50여 곳 정도. 스타트업을 위한 독립공간과 예비창업가를 위한 오픈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부산센터의 경우 독립공간이 22개로 가장 많다. 서초센터는 15~17개의 독립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신촌센터에는 11~12개의 독립공간이 있다. 공간 사용료는 무료다.

예비창업가의 경우 6개월 동안 이용할 수 있고, 스타트업의 경우 최대 2년 동안 오렌지팜을 사용할 수 있다. 입주사는 법무·인사·회계·홍보 등 스타트업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멘토링을 받게 된다. 스마일게이트의 임직원과 외부 전문가들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 스마일게이트 인베스트먼트나 외부 기관의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오렌지팜이 투자 지원도 하고 있다. 2017년 12월까지 44곳의 입주 스타트업이 489억원의 투자를 받는 성과를 올렸다.

이런 체계적인 지원 덕분인지 입주사의 만족감이 높다. 독립 게임 스타트업 러플스튜디오 배국재 대표는“오렌지팜 이전에 경기도 판교의 한 육성 센터에 입주했는데 그곳은 게임 관련 멘토링이 너무 부족했다”면서 “스마일게이트가 게임 기업이라서 그런지 오렌지팜의 멘토링은 게임 개발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렌지팜이 창업가들에게 주목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창업가들의 ‘롤 모델’로 꼽히는 권혁빈(44) 스마일게이트 그룹 이사회 의장 때문이다. 그는 ‘은둔의 경영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언론에 나오지 않는다. 조용히 사업에 매진하던 권 의장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것은 미국 포브스지 때문이다. 2015년 4월 포브스가 발표한 ‘한국의 50대 부자’ 리스트에 처음으로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그의 재산가치는 3조8900억원에 이르렀다. 2017년 4월 미국 포브스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의 재산가치는 61억 달러(약 6조5300억 원)다. 한국의 50대 부자 순위에서 4위를 차지했다.

후배 창업가에게 형처럼 대하는 권혁빈 의장

1999년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그는 직장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이 시기는 흔히 말하는 ‘취직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던’ 외환 위기 사태가 터졌던 때다. 취업을 약속 받은 삼성전자 대신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포씨소프트 창업을 선택했다. 게임 개발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권 의장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5년 후에 후회하지 않을지를 고민했다”고 창업 이유를 밝힌 바 있다.

2002년 포씨소프트를 동업자들에게 물려주고 나온 후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했다. 본격적인 성공스토리는 2006년 출시한 ‘크로스파이어’ 덕분이다. 2008년 중국 텐센트와 손잡고 중국에 서비스하면서 흔히 말하는 ‘대박’이 났다. 현재 크로스파이어의 전 세계 동시 접속자 수는 800만 명에 이른다. 중국과 베트남, 북남미와 유럽 등 80개 국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권 의장은 2011년 지주회사 스마일게이트 홀딩스를 설립했다. 그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 그룹은 지주사 스마일게이트 홀딩스를 포함해 문화콘텐트 개발사인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인 스마일게이트 월드와이드 등 8곳의 계열사와 2곳의 관계사를 가지고 있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2008년 49억원의 매출을 올렸던 조그마한 게임 개발사였지만, 2016년에는 6618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게임사로 성장했다. 스타트업 창업가의 롤모델로 꼽히는 이유다.

오렌지팜은 권 의장이 직접 제안해 만들어졌다.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가가 후배 창업가를 위한 육성 센터를 마련한 것이다. 후배들에 대한 애정도 무척 깊다. 오렌지팜에서 분기마다 열리는 리뷰 데이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창업가가 발표를 마친 후에는 권 의장이 직접 자신의 경험담이나 노하우 등을 이야기한다.

후배 창업가들도 권 의장의 탈권위적인 모습에 놀란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몬스터스튜디오 정지환 대표는 “권 의장이 리뷰 데이에 참석해주는 자체만으로도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팀202 이주영 대표도 “권 의장은 우리에게 친한 형같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돈을 많이 번 사람 특유의 모습도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박스기사] 서상봉 오렌지팜 센터장 - “권혁빈 의장 리뷰 데이 때마다 참석할 정도로 애정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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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가 문을 연 지 4년이 지났다.

남들과 다른 스마일게이트만의 특성이 있는 창업 육성 센터를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4년 정도 지나니까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은 것 같다. 창업가 발굴부터 지원 그리고 투자와 글로벌 지원까지 이어지는 오렌지 트랙이 잘 구현됐다.

오렌지팜 입주 경쟁이 치열하다던데

부쩍 이곳에 오겠다는 이들이 많아졌다. 우리들이 내부적으로 마련한 기준을 가지고 입주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 기준에 맞지 않는 창업가에게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마음을 상하지 않게 이야기해주는 게 무척 어렵다. 보통 ‘솔직히 내가 당신의 사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웃음)

서 센터장은 오래전부터 창업 관련 분야를 경험한 것으로 안다. 예전 창업가와 요즘 창업가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요즘 창업가들은 세련된 것 같다. 이에 반해 예전 창업가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야생에 가까웠던 것 같다.(웃음) 다만 요즘 창업가들에게 아쉬운 점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정보를 많이 얻어서 그런지 혼자 예상하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창업가가 발전하려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고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오렌지팜을 통해 성장했던 창업가 중에 기억에 남는 이가 있나.

너무 많다.(웃음) 그중에 레이니스트 김태훈 대표가 기억에 남는다.(김태훈 대표는 포브스코리아가 올해 선정한 ‘2030 파워리더’ 중 한 명이다.) 내가 한 창업경진대회 심사를 하다가 김 대표를 만났고, 오렌지팜에 입주하라고 제안했다. 김 대표와 함께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었다. 권혁빈 의장도 개인적으로 여러 조언을 해줬다. 지금까지 50억원 정도 투자를 받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과 중국에 오렌지팜을 설립한 이유가 뭔가.

부산은 제2의 도시다. 지역에서 좋은 지원 프로그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2014년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해보고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창업 환경이 수도권에 비해 열악하지만, 지역의 창업가들도 열심히 노력하는 게 보인다. 특히 부산은 게임 관련 인프라가 많아서 게임 창업자를 집중 지원하고 있다. 창업가들이 중국 진출을 많이 노리는데, 솔직히 중국 비즈니스가 무척 어렵다. 스마일게이트에는 중국 전문 인력이 많다. 우리의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창업가와 공유하기 위해서 베이징에 센터를 설립했다. 동남아시아에도 오렌지팜을 설립할 계획이 있지만, 구체적인 시기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오렌지팜 설립을 권혁빈 의장이 제안했다고 들었다.

애정이 너무 크다.(웃음) 분기마다 ‘리뷰 데이’가 열리는데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권 의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함께한다. 입주사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부산에 행사가 있을 때면 부산 오렌지팜을 꼭 갈 정도다. 권 의장은 우리들에게 창업가들을 제대로 지원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항상 물어본다.

오렌지팜 센터장으로서 2018년 계획을 알고 싶다.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고도화하고,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 스타트업에 대한 권혁빈 의장의 말·말·말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회사와 나 개인에게 모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스마일게이트 같이 큰 회사가 못하는 혁신적인 일을 스타트업이 이뤄낸다면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는 우리도 결과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멘토링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힐링이 되고 경영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창업을 한 번도 권한 적이 없다. 가급적 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하겠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지원을 한다. 창업은 문화가 되어야지 이를 선동하면 안 된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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