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마크]④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지난 9일 오전 6시20분 서울 청담동의 한 피트니스 센터에 정봉주 전 의원이 들어섰다. 그는 “아내와 밤 늦도록 술을 마셨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정계 복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집사람이 7~8년 전 정치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가볍게 몸을 푼 그는 50분 간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근력 운동을 했다. 경쾌한 전자 음악과 그의 거친 숨소리가 섞였다.
정 전 의원은 처음에 맨손 운동으로 몸 단련을 시작했다. 장소는 교도소였다. 그는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시절이던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BBK 주가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일로 ‘MB 저격수’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검찰로부터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1년 12월 26일 입감된 그는 1년 후 만기 출소하기 전까지 독방에서 홀로 운동을 했다. 그 결과물이 2013년에 펴낸 책 『골방이 너희를 몸짱되게 하리라』다.
기자가 정 전 의원을 만난 날은 마침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일이었다. 대화는 자연스레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이슈로 이어졌다.
-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두고 20·30세대의 반발이 거셌다.
- 20·30세대에겐 ‘금수저의 새치기’로 여겨질 수 있었다. (정부가) 진보 진영의 메시지 만큼이나 국민 여론도 중요하게 살폈어야 했다.
-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 밖이라는 이낙연 총리의 발언이 논란에 불을 지폈는데.
- 남북관계 개선 뿐 아니라 20·30세대의 개인주의를 살피는 미시적 시각도 필요하다. 정부가 못하면 여당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추미애 대표는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 옆에서 같이 공연을 볼 게 아니라 그 시간에 평창올림픽 이후 전략을 고심했어야 한다.
정 전 의원은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에 복당을 신청했다. 그러면서 “6·13 지방선거에 출마한다. 다만 서울시장과 국회의원 재·보선 중 어디에 나갈지는 당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원래 그의 피선거권은 출소 후 10년간 박탈됐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특별사면을 할 때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정 전 의원을 포함시켜 피선거권을 회복시켜줬다.
정 전 의원이 근처 미용실에서 머리카락 손질을 마친 시간은 오전 8시. 라디오 녹음 시간을 지키기 위해선 청담동에서 목동 SBS 사옥까지 30분 안에 주파해야 했다. 운전기사에게 “오늘은 조금 더 서둘러야겠다”고 한 후 그는 차창 밖 한강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치권에선 그가 국회의원 재·보선보다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 서울시장에 도전하나.
- 캠프는 차렸다. 멘토단과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시민후보로 선거에 나가려 한다. 아직 어디에 출마할 지 확답할 순 없지만, 복당 신청 이후에도 당 지도부에서 별다른 신호가 없는 걸 보면 개인의 판단으로 남겨두겠다는 것인지…
- 박원순 시장 7년에 눈에 띄는 게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 워낙 이명박·오세훈 두 전직 시장이 서울을 후벼놨기 때문에 정비할 필요가 있었고, 그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본다. 다만 너무 실핏줄 정책에만 몰두하다 보니 10~20년 뒤 서울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데는 소홀했다.
- 본인은 그런 비전이 있나.
- 있다. 서울의 비전은 화합력이다. 강남권은 이미 자기 체력이 갖춰진 곳이지만, 비강남권은 영양실조 상태다. 강남은 너무 자본주의화 돼 있고 세대가 단절돼 있지만, 비강남권은 재래시장과 같은 지역 공동체가 여전히 살아있다. 비강남권의 주민친화적 개발로 활력을 불어넣어야 10~20년 뒤에도 살고 싶은 지역이 될 거다.
- 화합보다는 강남·비강남을 구분 짓는 것 같다.
- 균형발전을 하자는 거다. 축구선수 11명 중 3명만 잘 뛰면 뭐하나. 8명이 영양실조인데. 무조건 집 많이 짓는 투기성 난개발은 지양하고 거주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개발의 정상화를 이루자는 뜻이다.
라디오 스튜디오에 온에어(On Air) 등이 켜지자 정 전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게스트와 대화하며 “을사사화? 술 사와, 밥 사와” 등의 ‘아재개그’를 날리는 정 전 의원의 모습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던 방송국의 한 PD는 “쉬운 언어로 소통할 줄 아는 게 봉도사(정봉주의 별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솔직히 정치하지 말고 방송에 남으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 PD들은 방송인으로 남길 바라던데.
- 다시 정치를 할지, 방송에 남을지 사면복권된 이후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과거의 물레방아는 과거의 물로 돌리는 거다. 가족들도 내가 정치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고 하더라.
- 너무 가벼워 보여서 지도자 감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 정치 얘기를 가볍게 끌어내는 건 강력한 힘이다.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 날 가볍다고 공격한다. 정치가 가벼워야 쉽게 감시·견제·검증을 받을 수 있다. 유머가 빠진 정치는 권위주의로 흐르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소신이다.
정 전 의원은 1980년대 학생운동과 도시 빈민운동에 투신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민주화운동 단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에서 활동하며 문익환 목사를 보좌하기도 했다. 그는 “말과 글을 문 목사에게서 배웠다. 늘 말과 글의 유연성과 편안함을 강조하셨다”며 “내가 방송에서 비어(卑語)까진 아니어도 속어(俗語)를 쓰고, 농담을 많이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 그런 비어와 속어 이미지가 실제 선거에서 표엔 도움이 안 되지 않나.
- 난 방송에서 실수 투성이다.(실제 그는 라디오 생방송 도중 졸았다.) 그럼 사람들이 댓글을 올리고, 즉각적인 소통이 이뤄진다. 이게 21세기 리더십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허접투성이 리더십이 바로 21세기 리더십이다. 자기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리더십이다. 그러한 쌍방향 스킨십이 시대정신이다.
- 2004년 총선 때 탄핵 역풍으로 비교적 손쉽게 당선된 것 외엔 경험이 부족한 거 아닌가.
- 쉽게 당선된 건 팩트다. 하지만 정치·행정 같은 틀 안의 경험은 단선적이다. 2007년에 다 도망갈 때 혼자 끝까지 MB랑 ‘맞짱’ 뜬 게 나다. 그게 가벼운 싸움이고 가벼운 경험이었나. 그런 다종다기한 경험이 있어야 정치적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오후에는 캠프 관계자들과의 회의가 이어졌다. 정 전 의원은 회의도 ‘밀착마크’하려는 기자에게 “아직 공식 출마선언을 한 게 아니라서 모두 공개하기는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다. 캠프 관계자 4명은 이날 정 전 의원의 향후 스케줄을 점검하고, 야권의 잠재 후보군을 예측했다. ‘가장 출마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정 전 의원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100%다. 봉도사를 믿어보라”고 답했다. ‘봉도사’는 정치 이슈의 예측력이 높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정봉주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의 입에서 “대권”이란 단어가 나왔다. 그는 “얼마 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만나 술을 먹을 때도 나에게 차기 대권 얘기를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대권에 뜻이 없는 사람은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그 목표가 있어야만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국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본인이 지도자 감이라고 생각하냐’고 묻자 “우리 집사람 이름이 영부인 감이긴 하다. 송지영 부인이다(송지 ‘영부인’)”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봉주다운 답변이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