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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7조 빚더미에도 명절 공짜통행료···세금으로 충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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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조 빚 도공, 설·추석 통행료 공짜로 매년 1000억 손해

명절 통행료 면제 현 정부 대선공약 #지난 추석 때 535억원 손실, 지원 '0' #올 설 연휴에도 500억원 손실 예상 #통행료 면제 법제화로 매년 되풀이 #도공 27조 빚, 이자만 한해 1조 부담 #"빚 갚을 돈으로 통행료 공짜는 문제"

지난 추석 연휴에 이어 올해 설 연휴에도 전국의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 [중앙포토]

지난 추석 연휴에 이어 올해 설 연휴에도 전국의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 [중앙포토]

 정부의 설·추석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정책 탓에 한국도로공사(도공)가 입는 손실이 한해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공의 빚이 27조원이 넘고 연간 이자 부담만 1조원이나 되는데도 정부가 '선심성 정책'에 따른 부담을 도공에 고스란히 떠안기기 때문이다.

 13일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사흘(10월 3~5일)간 실시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로 입은 손실은 535억원이었으나 한 푼도 지원받지 못했다. 당시 민자고속도로 구간도 통행료 면제를 시행했지만 손실금 142억원을 정부로부터 전액 돌려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공은 오는 15일부터 3일간 실시되는 설 연휴 통행료 면제 손실액도 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연휴가 비교적 짧아 차량이 통행료를 받지않는  사흘 동안에 상당 부분 집중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추석과 이번 설을 합해 1000억원 넘는 손해를 보는 셈이다. 앞서 하루씩 시범 운영됐던 2015년 8월 14일과 2016년 5월 6일의 통행료 면제액 290억원도 도공이 그대로 떠안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게다가 이 같은 상황은 매년 반복될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유료도로법을 고쳐 설과 추석에는 각각 3일씩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주도록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명절 통행료 면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다.

 앞서 지난해 국정기획위에서 추석과 설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결정을 발표하면서 "(빚이 많은 도공에 대해서는)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론 아무런 조치도 나오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의 이용욱 도로정책과장은 "명절 통행료 면제는 서민 부담 경감과 관광 및 내수 활성화 등을 위한 것"이라며 "현재 도공의 자금흐름이 괜찮기 때문에 통행료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공의 채무가 27조원에 달하지만, 부채비율은 85%로 양호하다는 것이다.

김천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도로공사는 27조원의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중앙포토]

김천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도로공사는 27조원의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도공 내부의 목소리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간부는 "매년 원금은 갚지도 못하고 이자로 지급하는 돈만 1조원에 달한다"며 "자금 흐름이 좋을 때 빚을 갚아야 하는데 정부가 자꾸 '공짜·할인 정책'을 요구하고 있어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일부에서는 공기업 빚은 어차피 정부가 갚아줄 것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게 결국 국민 부담 아니냐"고 덧붙였다.

 도공의 빚 27조원은 국내 비금융권 공기업 가운데 LH, 한전, 가스공사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다.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사업비의 50~60%를 자체 조달해왔기 때문이다. 나머지만 정부가 지원한다.

 현재 도공이 경차 할인 등 각종 할인·감면 정책으로 보는 손실은 한해 3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명절 통행료 무료까지 더해지면 손실분은 4000억원으로 늘어난다. 도공의 한해 통행료 수입(약 4조원)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또 다른 도공 간부는 "신규 고속도로 건설이 거의 끝난데다 기존 고속도로에 대한 통행료 폐지나 감면 요구가 나오고 있어 통행료 수입이 늘기는커녕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며 "당초 국토부에서도 통행료 면제를 반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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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도 문제점을 지적한다. 강승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막대한 부채를 진 도공에 그 부담을 다 지우는 건 부적절하다"며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애초 열차, 버스 등 대중교통 승객은 제외하고 자가용 이용객에게만 혜택이 가기 때문에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유정복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도 "한 두 번 더 시행해보고 그 득실을 따져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해봐야 할 것"이라며 "공기업 빚도 장기적으로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돈이니만큼 도공에 주어지는 부담도 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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