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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월악단 한때 현장 철수…'베이징회군' 재현될 뻔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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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단독] 남 “공연 노래에 문제” … 북 예술단 한때 만경봉호로 철수

 평창 겨울올림픽 축하 공연을 위해 방한했던 삼지연관현악단(단장 현송월)이 지난 7일 오후 리허설을 중단한 채 숙소인 만경봉호로 철수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정부 당국자가 12일 밝혔다. 익명을 원한 이 당국자는 “전날(6일) 도착한 예술단이 7일 오후 강릉아트센터에서 전체 리허설을 실시했다”며 “남측 정부가 공연 내용에 문제가 있으니 조정해 달라고 요구하자 북측 관계자들이 잠깐 회의를 한 뒤 단원들에게 ‘철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착한 날 연습을 못 했기 때문에 오후 8~9시까지 리허설이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예술단은 연습을 중단하고 오후 7시쯤 숙소로 사용하던 만경봉 92호로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뒷얘기 #7일 남측이 체제선전곡 조정 요구 #북측 리허설 중단, 다음날 돌아와 #‘태양 민족’ → ‘우리 민족’ 가사 바꿔 #“평양서 수용하란 지시 있은 듯”

 현송월은 자신이 단장으로 있는 모란봉 악단을 이끌고 2015년 12월 중국 공연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중국 측이 공연 배경화면(미사일 발사 장면)을 문제로 삼자 공연 3시간 전 철수한 전례가 있다. 그래서 당국은 현 단장이 베이징 회군을 재현하는 게 아니냐며 한 때 긴장했다고 한다. 다른 당국자는 “북한 노래에는 최고지도자나 체제를 선전하는 노래가 대부분”이라며 “남측 국민을 상대로 하는 공연인 만큼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북측에 공연 내용의 조정을 요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앞줄 가운데)이 11일 오후 평창 겨울올림픽 축하공연이 열린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 직접 올라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을 부르고 있다. [뉴시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앞줄 가운데)이 11일 오후 평창 겨울올림픽 축하공연이 열린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 직접 올라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을 부르고 있다. [뉴시스]

 예술단은 다음날 오전 다시 아트센터를 찾아 리허설을 이어갔고, 남측이 제기한 부분을 반영해 노랫말을 바꾸는 등 나름 성의를 보였다고 한다. 이 당국자는 “현장에서 자신들이 결정하기 어렵자 숙소(만경봉 92)로 돌아가 평양과 상의한 것 같다”며 “남측이 제기한 부분을 수용하고 공연을 잘 마무리하라는 지시가 있지 않았겠냐”고 전했다. 예술단은 본 공연에서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의 3절 가사에 나오는 “태양 민족”(북에서는 김일성 민족으로 해석)을 “우리 민족”으로 바꿔 불렀다. 또 “우리네 평양 좋을 시구, 사회주의 건설이 좋을 시구”의 가사가 있는 ‘모란봉’은 아예 공연에서 제외했다.

 다만, 현 단장은 전날 커피 이야기를 하며 다정다감했던 모습 대신 음량 조정 등 공연에 꼭 필요한 이야기만 남측 관계자에게 했을 뿐 냉정한 모습으로 일관했다는 게 그를 지켜본 인사들의 설명이다. 그가 첫 방한 공연을 앞두고 긴장한 것으로 이해했지만 실제로는 공연 조정을 요구한 남측에 대한 불만 표시로 보인다는 것이다.

삼지연관현악단은 12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돌아갔다. 사진은 북으로 돌아가는 관현악단을 태운 차량 행렬. [뉴스1]

삼지연관현악단은 12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돌아갔다. 사진은 북으로 돌아가는 관현악단을 태운 차량 행렬. [뉴스1]

 정부는 북측과 공연 직전까지 공연 내용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그러나 실제 공연에서 예술단은 김일성ㆍ김정일을 그리는 내용이 담긴 노래(새별)을 불렀고,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노래(빛나는 조국)가 경음악 형식으로 연주됐다.
영화 주제가인 “저 하늘에 별들이 많고 많아도~”로 시작하는 새별은 김일성을 그리는 노래다. 예술단은 그러나 2절 “새별처럼 청춘을 빛내이자고 굳은 맹세 다지며 그대 떠났다”라는 김일성을 직접 지칭하는 부분을 생략한 채 후렴을 불렀다.
 또 빛나는 조국은 지난 2016년 2월 북한이 장거리로켓(미사일) 발사 성공 음악회를 할 때 첫 곡으로 불렀을 정도로 체제 선전성이 강한 노래다. “수령의 혁명 정신 하늘땅에 넘친다”와 “조선아 조선아 영원무궁 만만세”라는 가사도 들어있다. 특히 빛나는 조국은 오페라의 유령 등 외국 명곡 메들리 21곡에 뒤이어 편성돼 있어 의도적으로 북측이 끼워넣은 걸 남측 정부가 몰랐거나, 그냥 넘어간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11일 공연을 관람한 경기 성남의 김 모씨는 “처음 듣는 음악이긴 했지만 명곡들과 함께 연주돼 ‘내가 모르는 명곡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 노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관한 11일 공연에서도 그대로 연주됐다.

 한편 서울 공연에 가수 서현씨의 출연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북측 공연 보컬이 모두 여성이었고 우리 남성가수를 출연시키기엔 편곡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인지도가 높은 가수 중에서 섭외했고, 짧은 기간 연습을 같이 할 가수 대상자 중 서현씨 측에서 흔쾌히 응해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단 137명은 12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귀환했다.

북 예술단이 가사 바꾸거나 뺀 노래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
‘태양 민족’을 ‘우리 민족’으로 바꿈

‘모란봉’은 공연에서 제외
‘우리네 평양 좋을시구, 사회주의 건설이 좋을시구’ 가사 지적 따라

‘새별’
김일성을 직접 지칭하는 ‘새별처럼 청춘을 빛내이자고 굳은 맹세 다지며 그대 떠났다’ 부분을 생략한 채 후렴 부름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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