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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오징어와 낙지의 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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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남북한 언어의 억양이나 말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데 ‘오징어’와 ‘낙지’는 남북한이 정반대더라.”(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그것부터 통일을 해야겠다.(웃음)”(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측 인사들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10일 청와대 오찬에서 나온 말인데 절반만 맞는 말이다. 북한 식당에서 ‘낙지볶음’을 시키면 한국의 오징어가 나온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낙지’를 10개의 다리가 있는 오징어 그림을 그려 놓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북한의 ‘오징어’가 곧 한국의 낙지는 아니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의 『조선말 대사전』에서 오징어를 찾으면 ‘몸통이 닭알 모양이고 좀 납작한 편… 뼈는 약재로 쓰인다’는 표현이 나온다. 오징어가 달걀 모양이라니 좀 헷갈린다. 다시 『조선대백과사전』을 찾았더니 그림만 봐도 단박에 알겠다. 영락없는 갑오징어다.

남북한 언어에서 오징어와 낙지가 달라진 건 역시 분단 탓이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는 “인류의 행복은 문화의 향상을 통하여 증진되고, 문화 향상은 언어의 합리적 정리와 통일로 촉진된다. 낙오된 조선 민족을 다시 살리려면 무엇보다도 언어를 정리하고 통일해야 한다”며 조선어사전 편찬에 나섰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지연되다가 해방 이후인 47년에야 조선어학회가 『조선말 큰사전』을 발간한다. 적어도 남북한이 갈리기 전 정리된 이 사전에 따르면 오징어와 낙지는 ‘다리 10개 오징어, 8개 낙지’라는 우리의 상식에 부합한다. 다만 낙지는 그저 낙지인데 오징어는 갑오징어에 가깝다.

북한에서 ‘낙지’가 오징어가 된 것은 표준말(서울말)에 대응해 평양을 중심으로 언어의 민족적 특성을 보존·발전시키겠다는 취지에서 66년 ‘문화어’를 지정한 이후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연원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남쪽에는 낙지가 아닌 오징어를 둘러싼 혼선이 있다는 점이다. 『현산어보를 찾아서』의 저자인 이태원 세화고 교사는 “과거엔 오징어라고 하면 북한에서처럼 주로 갑오징어를 가리켰다”며 “한국에서 지금 흔히 오징어라고 불리는 것은 예전엔 파둥어꼴뚜기(살오징어)라고 했다”고 말했다. 북에선 오징어가 ‘낙지’로, 남에선 ‘꼴뚜기’가 오징어로 변한 셈이다. 언어의 통일 역시 남북 대화 못지않게 우리 안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북한의 ‘낙지’만 신기한가. 심지어 오징어와 낙지의 작은 통일을 위해서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우리의 몫이 있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