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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눈앞으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와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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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여동생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해 와 남북 정상회담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빠른 시일 내에 평양에서 뵈었으면 좋겠다”는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제의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방북 요청을 사실상 수락한 것”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이나 문 대통령이 여러 번 회담 의지를 밝혀 온 만큼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게 분명해 보인다.

섣불리 제재와 압박 늦춰선 안 되며 #북한과 미국 반걸음씩 물러서게 해야

분단 73년간 남북한 최고지도자는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 정치 무대에서도 남북 정상회담이 갖는 무게와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지금은 북핵 대치로 한반도 위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전쟁의 벼랑 끝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가 마련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한반도 위기는 대화로 풀어야 하는 게 대원칙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군사적 옵션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갈 전면전으로 비화할 위험이 크다. 국제사회가 강력한 대북제재에 착수한 것도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는 게 목적이었다. 제재를 위한 제재가 아니라 대화를 위한 제재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문 대통령이 밝힌 대로 남북이 한반도 주변 환경을 바꾸어 나가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길 기대한다.

문제는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국제 봉쇄의 탈출구로 삼거나 핵무기 완성을 위한 시간벌기용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 당국이 각별히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문 대통령도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구체적 성과를 못 내면 남북 정상회담은 안 하느니만 못할 수 있다.

김정은과의 만남이 의미 있으려면 북한의 정상회담 제의 배경 등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선, 김정은이 지난 1월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신년사를 발표한 이래 평창올림픽을 전후로 집중적인 평화 공세를 펴는 것은 대북제재가 효과를 내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제한적 선제타격을 심각하게 고려 중인 미국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결국 정치·경제적 압박에 몰린 김정은 정권이 한국을 활용해 위기 국면을 헤쳐 나가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북한에 휘둘려선 안 된다. 남북 정상회담에 나가더라도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뒤 나가도 늦지 않다. 충분한 사전 협의를 통해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남북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받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남북대화의 입구인 ‘핵 동결’을 담보하려면 대북 특사를 파견해 북한으로부터 ‘추가 핵·미사일 실험 중단’ 수준의 약속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 특히 북핵 해결의 열쇠를 쥔 미국과의 물샐틈없는 공조 속에서 회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필수 조건이다. 이번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방한에서 보듯 미국은 대북 강경책을 늦출 뜻이 전혀 없어 보인다. 성급하게 남북 정상회담을 밀어붙이다 한·미 동맹에 틈이라도 생기면 이는 북한의 이간책에 넘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올 들어 북한이 대화 쪽으로 급변침한 건 결국 호된 압박이 먹히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만큼 정상회담에 나서더라도 대북제재의 스크럼을 섣불리 늦춰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은 이제부터 북한과 미국을 반걸음씩 물러서게 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자칫 잘못 판단했다간 한반도 상황을 주도할 운전석에 다시는 앉지 못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