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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끝났나 싶었는데"…11일 새벽 포항서 규모 4.6 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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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5시3분 경북 포항시 북구 북서쪽 5㎞(흥해읍 학천리)에서 규모 4.6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 강진의 여진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5.4 본진 이후 가장 강력한 여진 #포항시민들 자다가 놀라 바깥으로 대피

이번 지진은 지난해 11월 5.4 본진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집밖 생활을 석 달 가까이 하고 있는 이재민들도 과거 악몽을 다시 떠올렸다.

이재민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진모(60·여)씨는 "지난해 12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마련해 준 임대 주택으로 이주했지만 새벽에 강한 진동을 느끼고 곧장 흥해실내체육관으로 대피했다. 이사를 한 건물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서다"고 말했다.

규모 4.6 지진이 발생한 1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이재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규모 4.6 지진이 발생한 1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이재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옆에 있던 박모(65·여)씨는 "지진이 일어난 지 석 달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큰 소리만 나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지러움을 자주 느껴 병원에서 약을 지어 먹고 있다"며 "지진이 언제 또 날 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잠을 자다 진동을 느끼고 다섯 가족과 함께 바깥으로 대피했다는 서모(46·여)씨는 "이번 여진의 진앙 깊이가 14㎞라고 하는데 이것보다 얕았다면 지난해 5.4 지진 때만큼 피해가 컸을 것"이라며 "포항시가 10일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 운영을 중단하려고 했다가 취소했는데 이번 지진만 봐도 대피소 운영 종료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앞서 10일 포항시는 이재민 대피소 운영 중단 문제를 이재민들과 논의하다 결국 연장하기로 했다. 건물 피해 정도가 크지 않아 이주 대상으로 선정되지 못한 주민들이 따로 전문업체에 용역을 맡겨 안전진단을 거쳐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면서다. 11일 오전 현재 유일하게 운영 중인 이재민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는 149세대 312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다.

11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4.6 지진이 나자 진앙과 가까운 흥해실내체육관에 있던 이재민들이 공포에 휩싸여 술렁이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4.6 지진이 나자 진앙과 가까운 흥해실내체육관에 있던 이재민들이 공포에 휩싸여 술렁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5일(규모 3.5) 이후 규모 3.0 이상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 더 이상 강한 지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포항시민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조준길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 이장은 "새벽 5시에 큰 진동을 느끼고 황급히 건물 밖으로 나갔는데 주민들이 모두 바깥으로 대피해 있었다"며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들이 모두 불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사는 조수련(28·여)씨는 "깊이 잠들어 웬만하면 잘 깨지 않는 편인데 집이 심하게 흔들려 새벽에 깼다. 지진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큰 진동이 오니 두렵다"고 말했다.

북구 양덕동에 살고 있는 김영봉(54)씨는 "지진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원인을 하루 빨리 밝혀야 불안감을 씻을 수 있다. 흥해읍에 건설 중인 지열발전소가 지진 발생에 미친 영향이나 지진에 따른 액상화·공동화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등을 주민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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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나 부산 등 인근 지역에서도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김재성(33·대구 동구 봉무동)씨는 "잠을 자다가 굉음과 함께 진동이 느껴져 가족들과 피신할 채비를 하던 중 진동이 멈췄다"고 전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30분 현재 1462건의 관련 신고가 접수됐다. 경북에서 176건, 부산 321건, 대구 352건, 울산 134건 등이다.

포항시는 이번 지진으로 22명이 다치거나 놀라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5시13분께 포항시 남구 포스텍 학생식당에서 이모(21)씨가 지진에 대피하던 중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 현관문이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는 등 18건의 사유시설 피해도 났다. 북구 죽도동 한 가정집에서 담이 무너져 세워놓은 차가 부서졌다는 신고도 접수됐다.

규모 4.6 지진이 발생한 11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전경. 포항=김정석기자

규모 4.6 지진이 발생한 11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전경. 포항=김정석기자

규모 4.6 지진이 발생한 11일 오전 경북 포항시청에서 이강덕 포항시장 주재로 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포항시]

규모 4.6 지진이 발생한 11일 오전 경북 포항시청에서 이강덕 포항시장 주재로 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포항시]

포항시는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지난해 11월 본진에서 안전등급 C~D등급을 받은 건축물을 긴급 점검하고 현재 운영 중인 흥해실내체육관 외에 추가 대피소 운영 필요성을 논의할 방침이다.

원자력발전소나 댐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전국의 가동 원전은 지진으로 인한 영향없이 모두 정상 가동 중"이라고 했다. K-water는 "관리 중인 댐‧보, 정수장 등 총 66개 시설물에 대한 긴급 안전점검 결과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편 지진이 발생하고 7분 뒤에서야 긴급재난문자가 발생해 늑장 대처 지적이 제기됐다. 행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긴급재난문자는 시스템의 일부 오류로 인해 발생 7분 만인 오전 5시10분에 발송됐으며 자세한 원인은 기상청과 행안부가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긴급재난문자 발송 체계는 기상청이 행안부에 지진 사실을 알리고 이를 행안부 발송시스템으로 국민들에게 통보하는 방식이다. 기상청이 직접 전국에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해 발송 시점을 앞당기는 시스템이 도입될 예정이지만 상반기부터 운영돼 이번 지진의 긴급재난문자 발송엔 적용되지 않았다.

기상청은 지진 관측 약 55초 만인 오전 5시4분 자동 추정 결과를 통해 규모 4.7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유관기관에 속보를 전송했다. 이후 수동 분석을 통해 규모를 4.6으로 하향 조정해 오전 5시8분 다시 속보를 보냈다. 하지만 긴급재난문자는 지진 관측 이후 6분30여 초 뒤인 오전 5시10분에야 발송됐다. 지난해 11월 15일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을 때 관측 23초 만에 전국에 긴급재난 문자가 발송된 것과 대조적이다.

결론적으로 기상청이 행안부에 전달한 지진 속보가 행안부 긴급재난문자 발송시스템의 오류로 뒤늦게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행안부는 이날 오후 3시 현재까지도 긴급재난문자 지연 발송에 대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오전부터 계속해서 원인 분석을 하고 있지만 아직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말했다.

포항=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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