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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갈등 심해질라, 고민 깊어진 문재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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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호 03면

[남북 정상회담 제안] 주사위는 던져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평창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여자 예선전 관람을 위해 강릉아이스아레나에 입장하면서 관중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옆에서 미소 짓는 이들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부인 캐런 펜스 여사.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0일 평창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여자 예선전 관람을 위해 강릉아이스아레나에 입장하면서 관중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옆에서 미소 짓는 이들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부인 캐런 펜스 여사. [연합뉴스]

문재인(얼굴) 대통령은 10일 북한 대표단과의 접견에서 웃음을 많이 보였다고 한다. 오찬 중에는 “금강산·개성만 가 보고 평양은 못 가 봤다.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때 어머니를 모시고 이모를 만나러 간 적이 있다”며 “오늘의 대화로 평양과 백두산(방문)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미국은 비핵화 없는 대화 무의미 #한국은 관계 개선 통해 비핵화 #북한은 비핵화 약속 없이 대화 주장 #모두 만족할 카드 찾기에 어려움

하지만 정작 김여정 특사를 통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청와대가 공개한 문 대통령의 대답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였다. 대신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의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쪽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역대 남북 정상회담은 청와대가 앞장서고 북한이 호응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3차 정상회담이 시동을 거는 모습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김 위원장이 “빠른 시일 안에”라고 제안하는데도 문 대통령은 “여건”이란 말로 틈을 뒀다.

김 위원장의 제안에 속시원하게 “합시다”고 말할 수 없는 게 문 대통령이 지금 안고 있는 고민이다. 고민의 정체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대표되는 위협, 그에 맞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 그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 대통령 스스로가 그어 놓은 선(線)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1월 10일)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북핵 문제 해결과 함께 가지 않을 수 없으며, 북핵 문제 해결에서 진도가 나가야 남북 관계도 진전될 수 있다”고 공개 선언했다. 지난 8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비핵화는 나란히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과제는 남북 간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어떻게 평창올림픽 이후까지 이어 가 북·미 간 대화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은 남북 관계만 놓고 볼 때는 최상위 대화 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지만 비핵화를 향한 단초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한·미 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한마디로 양날의 칼인 셈이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역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2000년 6·15 정상회담 후인 10월엔 북한 군부의 핵심인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2007년엔 미국이 동결했던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이 풀리고,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을 발표하며 북·미 관계가 풀리던 때다.

하지만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완강하다. 군사옵션까지 거론하며 ‘최대의 압박’으로 나서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대북정책을 놓고 ‘비핵화 없는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방한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에 가라고 한 이유는 한·미·일 동맹 강화, 북한이 핵무기 야욕을 포기할 때까지 계속적인 고립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단언한 게 그렇다. 펜스 부통령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자리하는 리셉션에 공개 불참한 것 자체가 북한과 접촉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 정부는 비핵화 목표에선 미국과 같지만 방법론에선 유연할 수밖에 없다.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끌어내야 한다는 관여정책이다.

문 대통령이 고심하는 건 ‘비핵화 없는 북·미 대화는 없다’는 미국과 ‘비핵화 약속은 없이 남북 대화부터 하자’는 북한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여건’에 대해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미 대화는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뜻한다.

결국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선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고 미국이 판단할 수 있는 카드를 문 대통령, 그리고 김 위원장이 만들어 내야 하는 셈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면밀하게 따지고 있을 것”이라며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의 반대 방향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해 돌아가는 길임을 설득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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