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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내가 특사"···김일성 부자도 안 쓴 '혈육 특사' 카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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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호 04면

[남북 정상회담 제안] 170분 만남서 무슨 일이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북한 대표단을 만난 뒤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회동은 오전 11시부터 2시간50분간 이뤄졌다. 왼쪽부 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문 대통령,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특사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북한 대표단을 만난 뒤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회동은 오전 11시부터 2시간50분간 이뤄졌다. 왼쪽부 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문 대통령,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특사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내가 특사다.”

친서 전달하며 정상회담 의지 강조 #남쪽에도 특사 파견 요청 메시지 #DJ 아들이나 문 대통령 복심 후보군 #오빠 김정은과 베른서 함께 유학 #돈독한 남매지간으로 2011년 등장 #작년 정치국 후보위원 올라 넘버2로

김정은(34)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29)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을 소개한 말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의 북한 대표단 일원으로만 알려졌던 그의 신분이 김정은 특사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구두 메시지 등을 전달한 후에는 “이게 김정은 위원장의 뜻”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9일 방남 이후 공식 석상에서 말을 아끼던 김여정은 문 대통령과 만나서는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평양에서 (문 대통령을) 뵈었으면 좋겠다. 대통령께서 김정은 위원장님을 만나 많은 문제에 대해 의사를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남북) 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거나 “북남 수뇌부의 의지가 있다면 분단 세월이 아쉽고 아깝지만 빨리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여정이 이처럼 거침없는 태도를 보인 건 오빠 김정은이란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 고용희(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 사이에 태어난 2남1녀 중 막내다. 어릴 적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오빠 김정철·정은과 유학하며 함께 지냈다. 당시 여권 정보를 토대로 한·미 정보 당국은 여정이 1989년 9월 출생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장성한 김여정의 모습이 처음 포착된 건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식에서다. 당시 그녀는 검은색 상복 차림에 슬픔에 젖은 모습이었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7월에는 공식 행사장에서 노동당과 군부 고위 간부들이 도열하고 김정은이 꽃다발을 받는 순간에 뒤편에서 뛰어다니며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관영 TV에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북한이 공개한 김정은 일가의 영상에 고모 김경희 등과 함께 백마를 타고 나타남으로써 북한이 ‘백두혈통’이라 주장하는 혈족의 주축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후 김여정은 김정은의 공식 행사장에서 최측근으로 업무를 챙기는 모습을 보였고, 지난해 10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오빠의 든든한 후광을 업고 최고 실세로 자리한 김여정은 평창올림픽 개회식 참가와 대남 특사 파견으로 국제무대에 처음 데뷔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김여정을 특사로 택했을까. 무엇보다 정상회담 메시지에 힘을 실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일성·김정일도 혈육을 특사로 보내지 않았는데 김정은 위원장은 이 카드를 써먹은 것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은 “김정은 자신이 남북 관계 개선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특사’라는 형식을 통해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공을 넘겼다는 의미도 있다. 앞서 7일 청와대 관계자가 “김여정 제1부부장이 김정은의 친서를 갖고 올 경우 그 내용에 따라선 우리가 특사를 보내 친서에 대한 입장을 알릴 수도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대북 특사 파견 시점으로는 이르면 2월 말~3월 초가 거론된다. 평창올림픽이 이달 25일 폐막하고, 북한도 2월 중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16일) 등으로 분주하기 때문이다. 대북 특사로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대북 회담 전문가 등이 거론된다. 김여정 카드에 걸맞은 인물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도 가능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김정은이 김여정을 보낸 상황에서 문 대통령도 자신의 복심을 대표하는 인물 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혈육을 보내 형식을 통일하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 청와대사진기자단

1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 청와대사진기자단

금박 로고 새겨진 파란색 파일=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는 접견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김여정은 청와대 접견장에 등장하면서 이 파일을 손에 직접 들고 왔고, 자리에 앉을 때는 테이블 위에 반듯하게 놓아 뒀다. 이 파일 한쪽 면 표지는 금박으로 장식된 로고와 글자 등이 새겨져 궁금증을 자아냈다.

사진을 확대 분석한 결과 이 로고는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國章)’이라 부르는 국가 상징 엠블럼으로 파악됐다. 이는 북한 정권 수립 때인 1948년 만들어졌고 공산당을 상징하는 붉은 별과 함께 백두산·수풍댐 등이 그려져 있다. 벼 이삭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그 아래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음각으로 표기돼 있었다. 김정은이 주로 써 온 노동당 위원장이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자격으로 대남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향후 정상회담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으로 격을 형성하려는 뜻이다.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국방위원장’ 직함을 썼다.

전수진·강태화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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