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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압박과 김정은 미소, 청와대의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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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꺼낸 방북 정상회담 카드를 놓고 청와대가 숙제를 안게 됐다. 한ㆍ미동맹을 강고하게 유지하면서 남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이중의 과제다.

김정은 방북 제안에 한미동맹, 남북관계 갈림길

문 대통령은 10일 김 위원장이 특사 자격으로 보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일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방북 초청에 대해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답했다. 그러면서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ㆍ미 간에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등 역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은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2000년 10월엔 북한 군부의 핵심인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북ㆍ미 공동 코뮤니케’를 발표했다. 2007년엔 미국이 동결했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자금이 풀리고 북한이 영변 핵시설 동결을 발표하며 북ㆍ미 관계가 풀리던 때다. 반면 이번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대의 압박’으로 나서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 제안이라는 ‘최대의 미소’를 꺼내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정책을 놓고 ‘비핵화 없는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위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방한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에 가라고 한 이유는 한ㆍ미ㆍ일 동맹 강화, 북한이 핵무기 야욕을 포기할 때까지 계속적인 고립을 강조하기 위해서다”라고 단언한 게 그렇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비핵화 목표에선 미국과 같지만 방법론에선 보다 유연하다. 남북 관계의 개선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끌어내야 한다는 관여 정책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8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의 비핵화는 나란히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과제는 남북 간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어떻게 평창 올림픽 이후까지 이어가 북ㆍ미간 대화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있다”고 강조한 게 그렇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은 남북 관계 측면에선 양국 간 최상위 대화 채널을 구축하는 최고의 기회이지만 비핵화를 향한 단초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한ㆍ미간 대북 접근법의 숨은 차이를 노출하는 역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동안 한ㆍ미 간엔 이견이 있어도 적전 분열을 절대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지난 9일 이게 깨졌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이날 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주재한 리셉션 자리에 앉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0일“미국 측에서 펜스 부통령은 이날 미국 선수단과의 만찬 일정이 있다고 알려 왔고 최종적으로는 오후 5시(리셉션 시작 1시간 전)에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고 설명했다. 미측이 사전 예고도 없이 불참했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펜스 부통령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자리하는 리셉션에 공개 불참한 자체가 북한과 접촉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지난 8일 평양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지난 8일 평양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청와대의 고심은 여기에 있다. 비핵화 없는 북ㆍ미 대화는 없다는 미국과, 비핵화 약속은 없이 남북 대화를 열어 놓는 북한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여건’을 놓고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북ㆍ미 대화가 필요하며, 남북 관계로 문제가 다 풀리는 게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전체 환경과 분위기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북ㆍ미 대화는 최종적으로는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뜻한다. 결국 방북 정상회담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속에 성사되기 위해선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고 미국이 긍정적 판단을 내려주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면밀하게 따지고 있을 것”이라며 “남북 관계 개선이 비핵화의 반대 방향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해 돌아가는 길임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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