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정상회담 카드 내민 까닭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카드는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10일 오전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평창 겨울올림픽 북측 고위급 대표단은 남북정상회담을 하자는 김정은의 뜻을 전했다. 고위급 대표단의 일정을 올림픽 개막일(9일)부터 2박 3일로 하고, 출발 이틀전(7일) 김정은의 복심(腹心)으로 평가받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대표단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큰 것 ‘한 방’을 제안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지난달 1일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 한다’고 했다”며 “이후 북측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면서 정상회담을 제안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2000년이나 2007년 두차례의 정상회담때처럼 충격파는 덜한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은 남북관계에서 마지막 카드로 평가하고 있다. 김정은이 직접 나섰는데 진전이 없을 경우 리더십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올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이처럼 모험에 나선 이유는 뭘까.
우선 9일 올림픽 개막식 직전 보여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행동에 힌트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천안함 견학에 이어 탈북자들을 만났다. 이어 개막식 직전 리셉션 행사 늦은데 이어, 5분만에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청와대는 “사전에 다른 약속이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북미간에 자연스런 만남을 추진했던 한국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의 표출이라는 평가다. 대화나 협상보다 제재와 압박을 명확히 한 일종의 선긋기인 셈이다.
이처럼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상황이 급박하다고 판단한 김정은이 정상회담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현준 우석대 겸임교수는 “김정은이 지난달 두문불출하다시피 하며 올림픽 이후 전략을 고민했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무력을 완성했다고는 하지만 미국이 실제 군사행동에 대해선 상당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대북 제재의 강도가 커지면서 겪고 있는 경제적 압박을 탈출하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전직 정부 당국자는 “북한 대표단이 방한하는 것조차 대북제재의 눈치를 봐야할 정도로 꽁꽁 묶여 있다”며 “김정은이 집권 이후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줬는데 어려움이 가중되자 승부수를 띄운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사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제재의 칼날을 피해 남측과 손을 잡으려는 의도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핵무력 개발을 완성했다고 주장한 김정은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인 통일 문제로 방향을 틀었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정상회담 제안 배경을 딱 잘라서 한마디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목적인 카드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