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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정책적 물신숭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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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 소설가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이런 현상은 예견되었다. 임금이 오르면 일자리는 줄어든다는 것이 경제학의 정설이다.

최저임금제, 가난한 사람 희생 위에 #더 잘사는 사람이 더 이득 보는 문제 #무리한 상승 탓 영세기업의 퇴출을 #‘경제 체질 바꾸는 의미’ 주장은 억지 #최저임금 올리기에 가치 두는 것은 #정책적 물신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최저임금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근로자들의 소득을 올릴 뿐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단 최저임금의 상승은 완만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이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경제학의 기본 이론이 자의적 임금 근처에선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논거는 내놓지 못한 채 조사해 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자연히 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의문이 들고, 다시 조사해 보면 애초의 조사에 방법론적 오류가 있었음이 드러나곤 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것보다 낮은 임금을 받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반면에 일자리를 유지한 사람들의 소득은 오른다. 결국 최저임금제는 일자리를 잃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을 딛고 보다 부유한 사람들이 이득을 보도록 한다. 우리처럼 임금 체계가 경직된 사회에선 부유한 대기업 노조원들이 가장 큰 이익을 본다. 이것이 최저임금제가 품은 도덕적 문제다. 가난한 사람들을 여유 있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으로 돕는다는 것이 사회의 기본 철학인데,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해서 그들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이득을 보도록 하는 제도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지금 나오는 최저임금제의 문제들은 예견된 터라 놀랍지 않다. 그러나 최하층 시민들에 대해 현 정권이 공개적으로 보인 매정함은 좀 뜻밖이다. 현장을 살피러 나간 대통령 참모들과 장관들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대신 홍보 책자를 내밀었다. 미리 손을 써서 좋은 반응을 유도하기까지 했다 한다.

더욱 매정한 행태는 ‘최저임금의 인상이 한계기업들을 정리해서 궁극적으로 좋은 효과를 부른다’는 주장이다. 당황해서 내놓은 변명이긴 하지만 인정머리라곤 없는 현 정권의 속성을 드러냈다.

중앙시평 2/10

중앙시평 2/10

한계기업(marginal firm)은 ‘어떤 산업에서 수익성이 조금만 올라도 들어오고 조금만 줄어도 나가는 기업’을 뜻한다. 이 개념은 경제학 이론의 전개에 쓰이는 유난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현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계기업이란 개념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시장 조건이 조금만 좋아져도 나올 잠재적 기업들이 포함된다. 초창기엔 이익을 내기 어려우므로 거의 모든 기업들은 한계기업에 머문다. 경제가 갑자기 어려워지면 건전한 기업들도 한계기업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한계기업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경기를 좋게 해서 잠재적 한계기업들이 실제로 나오도록 하고, 이미 존재하는 한계기업들은 건강한 기업들로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

현 정권은 한계기업을 부실기업과 혼동한 듯하다. 부실기업은 ‘시장 조건만 따지면 퇴출되어야 하는데 정치적 특혜 덕분에 연명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축내는 기업’을 뜻한다. 종업원 몇 데리고 근근이 점포를 운영해온 자영업자들이 무슨 정치적 특혜를 누렸고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축냈는가. 더구나 이번에 위기로 몰린 영세 기업들은 시장 조건이 아니라 최저임금의 무리한 상승 때문에 한계기업이 되었다. 그들을 퇴출하는 것이 ‘우리 경제 체질을 바꾸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는 주장은 비논리적일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다.

설령에 설령을 더해 이번에 퇴출당하는 한계기업들이 모두 부실기업들이어서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이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치자. 그런 조치를 현 정권이 스스로 칭찬할 수 있을까. 정부가 강성 노조의 눈치를 보고, 선거를 고려해서 부실 조선소들에 몇 조원씩 거푸 지원함으로써 세금을 축내고 조선업 전체를 공멸로 몰아가는 터에 영세 상공인들의 생계를 희생시키는 것이 ‘경제 체질을 개선한다’고 선전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지 않은가.

최저임금제는 가장 가난한 계층을 돕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잘못 설계되어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큰 문제들을 안았다. 그것을 대신할 좋은 제도도 있으니,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는 이미 여러 형태로 시행된다. 그런데도 최저임금을 언제까지 얼마로 올리는 것에 큰 가치를 두는 것은 정책적 물신숭배(fetishism)에 지나지 않는다. 강성 노조의 정치 부서(political arm)의 성격을 짙게 띤 현 정권으로선 쉽지 않겠지만 물신숭배는 일찍 버릴수록 좋다. 가난한 근로자들만이 아니라 현 정권 자신에게도.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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