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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5분 만에 리셉션 자리 뜬 펜스 부통령의 경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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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도 가장 빛나야 할 평창올림픽 개막식 직전에 말이다. 한·미 동맹의 틈새를 보여 주는 사건이 어제 저녁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 귀빈들을 대상으로 주최한 리셉션 행사에서 일어났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문 대통령의 영접 행사에 나타나지도 않은 데다 리셉션장에도 늦게 도착했다. 이어 문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별도의 공간에서 찍고, 마지못한 듯 들어간 리셉션장의 문을 불과 5분 만에 다시 열고 빠져나왔다. 헤드테이블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는 앉지도 않았고,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기대한 북·미의 ‘우연한 만남’은 이렇게 무산됐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직전부터 “북한이 올림픽 메시지를 납치하려 한다(hijack)”고 우려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은 보이지 않은 채 ‘매력 공세(a charm offensive)’를 펴는 위장평화 쇼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번 방한엔 북한의 고문으로 숨진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를 대동해 강경한 대북 기조를 유지했다. 어제 개막식 참석 직전의 일정도 천안함 전시관 방문 및 탈북자들과의 면담으로 꾸려 북한의 호전성과 잔악성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탈북자들을 만난 자리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을 “감옥 국가(prison state)”라고 말했다고 소개하며 “북한은 자국민을 가두고 고문하며 굶주리게 하는 잔인한 정권”이라고 날을 세웠다.

문제는 펜스 부통령이 5분 만에 자리를 뜰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인 점이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 표명과 함께 한국에도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읽힌다. 아직 북한으로부터 비핵화에 관한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백두혈통’ 김여정과 오찬을 마련하는 등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남북 대화에 매달리는 게 아니냐는 불만일 수 있다. 북·미의 조우(遭遇)를 의도적으로 연출하려 한 우리 정부에 대한 불쾌감일 수도 있다. 남북 화해와 대화, 나아가 북한 비핵화는 한·미가 굳건한 공조 속에 추진할 때만 힘을 받는다. 펜스 부통령의 경고를 무겁게 새길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