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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닫은 암호화폐 관뚜껑 美 금융당국이 다시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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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 "중국이 덮은 암호화폐 관뚜껑, 미국이 열었다"

7일 0시를 넘은 시각. 국내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커뮤니티에는 미국 의회 청문회 생중계를 어디 가면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넘쳐났다. 미국 의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한국인들이 관심을 보인 건 청문회의 주제 때문이다. 미 상원 은행ㆍ주택ㆍ도시문제위원회는 워싱턴에서 ‘가상화폐(virtual currency):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감독 역할’이라는 주제로 청문회를 열었다.

제이 클레이튼 SEC 의장에 이어,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CFTC 의장이 모두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아버지의 입장에서 발언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미국 상원 은행ㆍ주택ㆍ도시문제위원회

출처: 미국 상원 은행ㆍ주택ㆍ도시문제위원회

“나는 세 명의 대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다. 아이들이 금융에 일찍 눈 뜨길 바래 고등학교 때 용돈을 주고 주식 투자를 해 보라고 권유했다. 다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먼저 CFTC 의장인 나에게 찾아와 비트코인에 대해서 물었다.…아이들의 신기술과 금융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기성세대는)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젊은 세대의 이러한 열정에 반응해야 한다. 그리고, 사기나 조작을 통해 아이들의 이러한 열정을 악용하려는 세력에 대항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신기술을 공부하고 좋은 정책을 세워야 한다.”

지안카를로 의장의 모두 발언은 이날 청문회 분위기와 미국 정부의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의 기본 방향을 상징한다.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규제

지안카를로 의장이 이날 밝힌 암호화폐 관련 규제의 원칙은 ‘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규제다. 그는 “인터넷 산업 초기 우리(미국 정부)가 취한 규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해를 끼치지 않는다’였다”며 “분산 원장(블록체인) 기술도 이런 방향에서 규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원칙은 의사들의 선언문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등장하는 말이다. 어떤 치료를 하건 ‘무엇보다,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말라’는 게 기본 전제다. 신기술이 등장했을 때 이에 대한 규제안을 내놓더라도 신기술 발전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지안카를로 의장은 “규제ㆍ감독과 민간 영역의 혁신ㆍ신기술이 건전한 균형을 이룬다면 우리(미국) 시장은 더욱 발전하고 경제 성장과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비트코인이 없었다면 블록체인도 없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암호화폐 시장을 무법천지 ‘서부개척 시대(wild west)’로 방치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암호화폐를 가장한 사기 등에 대해서는 엄정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클레이튼 SEC 의장은 특히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 모집 행위인 ICO(Initial Coin Offering)를 강력 비판했다. 그는 “(ICO에서) 암호화폐는 미국 달러와 같고, 기업들이 발행하는 코인(토큰)은 주식과 같다”라고 전제한 뒤 “ICO를 통해서 코인을 구매하는 것은 블록체인 기술과 아무 관련이 없을 수 있는 데다 수많은 ICO가 불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건전한 ICO 시장을 만들고 발전시키기 위해 기업공개(IPO)에 준하는 규제를 하겠다는 게 SEC의 입장이다.

테더 리스크는 터지지 않은 폭탄

국내에는 이날 청문회에서 ‘테더 스캔들’의 전모가 밝혀질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거래소는 현금(원화ㆍ법정화폐)을 가지고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자유롭게 살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의 경우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일부는 자금 추적 등을 우려해 현금으로 암호화폐 구입을 꺼리기도 한다. 이런 틈새를 노린 게 테더(USDT)다. 홍콩에 소재한 테더홀딩스라는 회사에서 발행하는 상품권 형식의 암호화폐다. 1달러 가치에 고정됐다. 때문에 발행한 테더 만큼의 현금이 은행 잔고에 쌓여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테더홀딩스가 테더 발행량만큼의 현금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게다가 테더홀딩스와 홍콩 거래소 비트파이넥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동일 인물임이 확인됐다. 비트파이넥스는 테더 거래가 가장 활발한 곳이다. 지난해 말 19억 달러어치의 테더가 발행된 후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투자자은 비트파이넥스가 있지도 않은 돈을 가지고 테더를 발행해 비트코인 가격을 뛰게 했다고 의심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CFTC는 비트파이넥스 관계자를 소환조사했다. 이날 청문회에 CFTC 의장이 나와 테더 스캔들을 터트리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할 것으로 투자자들은 우려했다. 이런 우려를 반영, 6일 비트코인 가격 700만원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에서 테더와 관련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다만, 클레이튼 SEC 의장이 “거래소가 동시에 (암호화폐) 발행자가 되는 것은 규정 위반”라고 말했다.

결국 청문회를 통해 미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입장을 확인했다는 해석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8일 한때 900만원을 웃돌았다. 인터넷 상에선 “중국이 덮은 암호화폐 관뚜껑을 미국이 열었다”는 말도 나왔다. 전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가 해외를 포함해 암호화폐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전면 차단한 조치를 가리켜 “중국이 암호화폐 시장의 관뚜껑을 덮었다”고 비유했다.

하지만 테더 의혹이 해소됐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문제 없다”는 업체 관계자들의 언급만 있을 뿐, 미국 금융당국의 공식 입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터지지 않은 폭탄과 같다. 게다가 향후 시장을 낙관하기도 어렵다. 익명을 원한 암호화폐 전문가는 “지난해 비트코인이 급등한 것은 테더를 활용한 시세 조종을 충분히 의심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며 “미 금융당국이 지켜보는 한 이런 식의 시세 조종은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급락은 없을 지 모르지만 지난해 같은 급등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주가 및 주요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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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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