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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피해국 이스라엘-폴란드 왜 ‘홀로코스트’ 싸고 갈등

중앙일보

입력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로부터 혹독한 피해를 입은 이스라엘과 폴란드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와 관련된 법 제정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갖고 있는 양국이 공방을 벌이는 것은 폴란드인들의 나치 협력 여부에 대한 법 규정 때문이다.

폴란드 홀로코스트법 제정, “학살 책임 없다” #이스라엘 “유대인 학살에 직간접 관여” 주장 #고위급 인사 방문 갑자기 취소…외교전 확대 #양국 총리 통화하면서 해결 모색했으나 실패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통신 등은 6일(현지시간)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6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강력히 반대하는 홀로코스트 법안에 서명했다”며 “이 법은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등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폴란드의 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홀로코스트법은 지난달 말 폴란드 하원에 이어 지난 1일 상원을 통과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급기야 상호 방문할 예정이었던 양국 고위급 인사들의 방문도 취소됐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교육장관의 7일 폴란드 방문 일정은 폴란드 정부에 의해 갑자기 취소됐다. 앞서 이스라엘 외무부는 폴란드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의 이스라엘 방문을 연기시켰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비.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비.

폴란드의 홀로코스트법에 따르면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6년간 폴란드를 점령했을 때 설치한 강제수용소를 언급할 때 ‘폴란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폴란드의 죽음의 강제수용소’라는 말을 써서는 안된다. 폴란드 정부는 “폴란드도 나치의 피해국인데 마치 가해자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징역 3년형을 받게 된다. 이 법은 폴란드 정부의 파트리크 야키 법무차관에 의해 발의됐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측은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서 폴란드의 역할을 부정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베네트 교육장관은 “폴란드 정부가 내가 폴란드 국민의 범죄사실(2차 대전 때 나치에 협력)을 언급했기 때문에 방문을 취소했다.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폴란드 강제수용소는 독일인들이 만들고 운영했기에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고 이에 협력한 폴란드인들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바르샤바에 있는 홀로코스트 폴란드 연구센터에 따르면 유대인 18만~20만 명이 폴란드인에 의해 살해되거나 밀고로 인해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AP=연합뉴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AP=연합뉴스]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폴란드의 새 법은 근거없는 허위”라며 “누구도 역사를 바꿀 수 없으며 폴란드가 홀로코스트관련 책임을 부인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언론과 학문 연구의 자유에 (이 법이)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폴란드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통해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지만 폴란드 정부는 “법 문구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내용을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결국 네타냐후 총리와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직접 전화통화를 하고 해결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폴란드가 한 발 물러섰다. 두다 대통령은 6일 “홀로코스트법은 반드시 처벌을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면서 “실제 집행하기도 어렵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법이 개정될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2차 대전 당시 나치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폴란드 거주 유대인 320만명을 살해했고, 이와는 별도로 폴란드인 190만명도 집단학살 했다. 나치 학살로 희생된 전체 유대인은 약 600만명에 달한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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