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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정상들에 유행처럼 번진 “가짜 뉴스” 발언, 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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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었던 지난 2016년 미 대선을 기점으로 ‘가짜 뉴스(Fake news)’란 용어가 크게 확산됐다. 당선 이후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 표현을 무려 153회 이상 쓴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의 등장 이전만 해도 낯설게 느껴졌던 이 표현은 더 이상 ‘트럼프만의 것’이 아니게 됐다.

WP, “'가짜 뉴스' 표현 쓰는 해외 정상 늘고 있다”고 보도 #시리아 대통령, ‘정부 수용소 집단 사형’ 보도에 “가짜 뉴스 시대 살고 있다” #폴란드 원수, 아내의 트럼프와 악수 거부설에 “가짜 뉴스와 싸우자” 천명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영향으로 ‘가짜 뉴스’란 표현을 쓰는 해외 정상이 크게 늘고 있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정치전문지인 폴리티코의 자체 조사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에는 단 한 명의 해외 정상도 공식 석상에서 ‘가짜 뉴스’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의 취임 첫 해인 지난해(2017년)엔 유독 자신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를 꺾으려는 목적으로 이런 표현을 쓰는 해외 정상이 많았다고 WP는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지난해 국제앰네스티는 ‘다마스쿠스(시리아 수도 ) 인근 정부 수용소에서 1만3000명이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인간 도살장, 사이드나야 수용소의 대규모 사형과 말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앰네스티는 이 보고서에서 “경비·구금자·판사 등 84명의 증언을 토대로 2011년 9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이 수용소에서 매주 20∼50명이 끌려나가 사형당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요즘엔 어떤 말이든 지어낼 수 있다. 우리는 가짜 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AP 연합뉴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AP 연합뉴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취임 이래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비판성 보도가 쏟아지자 두테르테는 이를 ‘가짜 뉴스’로 격하시키곤 했다. 지난해 10월엔 한 공식석상에서 자신이 국내외서 “악마처럼 됐다(demonized)”며 “이것은 가짜 뉴스 때문”이라고 주장했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대통령. [AP=연합뉴스]

마두로 대통령. [AP=연합뉴스]

한때 세계 1위 산유량과 후한 복지를 자랑했던 베네수엘라. 하지만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취임 이래로 최악의 경제난에 몸살을 앓았다. 올해 재선을 노리는 마두로 대통령은 비판 성향인 러시아 준공영방송 러시아투데이(RT)를 특정해 “전세계 언론은 (우리 국가에 대해) 거짓말을 전달한다”며 “이것을 두고 요즘엔 가짜 뉴스라고 부르지 않냐”라고 비판했다.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AP=연합뉴스]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해 7월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디어 컨퍼런스에 함께 선 적이 있다. 당시 트럼프는 취임 이후로 자신에게 비판성 보도를 한 CNN에 “가짜 뉴스”라고 칭한 뒤 두다 대통령에게 “비슷한 문제를 겪었었냐”고 물었다. 평소 언론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두다 대통령은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같은 날엔 두다 대통령의 아내인 코른하우세르 여사가 ‘실수로’ 트럼프를 지나친 뒤 멜라니아 여사와 먼저 악수를 나눈 일이 있었다. 이때문에 논란이 일자 두다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언론 보도와 알려진 것과 달리, 내 아내는 트럼프 부부 모두와 악수를 나눴다. 난 가짜 뉴스와 싸워나갈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알폰소 다스티스 스페인 외무장관

알폰소 다스티스 스페인 외무장관

국가 원수급은 아니지만, 스페인 현직 장관도 “가짜 뉴스”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지난해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 공개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알폰소 다스티스 외무부 장관은 “사실을 대체할 만한 거리와 가짜 뉴스가 판친다”고 표현했었다.

해외 정상·장관뿐 아니라 일반 관료들도 “가짜 뉴스”라는 표현을 곧잘 쓴다고 WP는 전했다.
예컨대 UN인권위원회는 미얀마를 떠난 로힝야족이 5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로힝야족은 ‘무국적자’라는 차별어린 시선 때문에 고국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소수민족이다. UN인권위원회 발표에 대해 미얀마 정부 관료는 “로힝야족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가짜 뉴스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또 리비아 관료들은 현지 이주민이 노예로 팔려나가는 실상을 고발한 CNN 보도를 두고 “가짜 뉴스”라며 깎아 내렸다고 WP는 전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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