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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왜 일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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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정치부 기자

김경희 정치부 기자

제목부터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수준 근로시간, 청년 실업률은 9.9%로 역대 최고인 대한민국에서 “왜 일하는가”를 논하기는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상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일하는가’를 스스로 되묻는 건 매우 중요하다. 10년 전 저마다의 일을 갖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시험에 떨어져 울고불고하던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이면 어김없이 이 주제가 대화 테이블에 오른다. 지금 하는 일이 우리가 그토록 하고 싶어하던 일이 맞는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이 말이다.

무슨 결론이 나올 수 있는 대화는 아니다. 그저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일단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출근과 동시에 ‘왜’라는 질문을 망각하는 삶이 반복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의 저자 사이먼 사이넥은 “당신이 몸담은 회사에서 매일같이 ‘왜’를 부르짖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개 우리의 일은 그렇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 자체는 큰 영감을 주지 않는다”면서다. 결국 중요한 건 ‘대의명분’이라는 얘기였다. “그 누구도 벽을 쌓기 위해 출근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대성당을 짓기 위해 출근해 일하고 싶지.”

미스코리아도 아닌데 지구의 평화를 위한다는 식의 거창한 대의명분은 있으나 마나다. 요새 나를 붙든 대의명분은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게 있다는 점이다. 정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사로 쓰다 보니 정치와 언론의 공통점이 바로 이 지점이란 생각도 든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지난달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여러분들이 공공기관에 취업할 때 가산점을 줄 거냐 말 거냐, 군복무기간을 몇 개월로 할 거냐 이런 중요한 결정이 정치에서 이뤄집니다. 저도 정치를 하다 힘들 때 내가 왜 이 짓을 하는가 생각합니다. 답이 찾아져야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정치에 대한 평가를 떠나, ‘왜’라는 질문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 대목이라 생각한다. 뻔하지만 중요한 이 질문을 더 많은 사람이 품고 살았으면 한다.

김경희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