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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안철수 ‘정치보복’ 발언에 … “호남 의원들, 박지원 홍위병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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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의 정치 속으로

안철수 전 비서실장 송기석과 무소속 선언 이용호의 쓴소리 

안철수 대표(왼쪽)와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송기석 의원(가운데), 이용호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대표(왼쪽)와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송기석 의원(가운데), 이용호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다들 눈 꼭 감으세요. 제가 ‘안철수 신당’ 가는 데 찬성하는 분 손드세요. 됐어요. 다음엔 제가 ‘호남 신당’ 가는 데 찬성하는 분 손드세요. 어, 제 앞 둘째 줄에 눈 뜬 분 있네. 감으세요!”

바른정당과 통합, 손학규가 첫 거론 #안, ‘통합시 지지율 급등’에 놀라 #언론 흘리고 10월 이후 통합 급가속 #소통 부족과 거짓말 논란 꼭 고쳐야 #대표·원내대표 따로 놀 던 콩가루당 #호남 중진 국밥집 모임이 당 좌우 #중재파 합류, 여론조사가 결정타 #천정배, 통합 주도 요청에 OK 사인 #박지원 전남지사 출마 뜻 접은듯

안철수·유승민이 주도하는 미래당과 박지원·천정배·정동영이 주도하는 민주평화당 사이에서 갈 곳을 고민하던 황주홍 의원(고흥·보성·장흥·강진,재선)은 지난 한 달 내내 지역구를 면 단위까지 33곳을 돌며 강행군했다. 의정보고회에 참석한 지역 주민들의 눈을 감게 하고 자신의 거취를 묻는 ‘비밀투표’ 를 실시한 것이다.

결과는 ‘호남 신당(민평당)’에 가라는 의견이 90 대 11(고흥 풍양면), 193대 7 (장흥 대덕읍) 같은 스코어에서 보듯 압도적이었다. 박주선·김동철·주승용·이용호 의원과 ‘중재파’에 섰던 황 의원은 이 수치들을 근거로 지난 1일 민평당 행(行)을 선택했다.

국민의당 출신 호남 의원들의 고뇌가 깊다. 지역구 여론을 의식하면 민평당 행, 장래를 생각하면 미래당 행이 맞다는 딜레마에 시달린다. 안철수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통합 실무를 지휘한 송기석(광주 서갑·초선) 의원을 만났다. 지난 3일 조용히 사표를 낸 그는 통합 과정의 비화와 고충을 털어놓았다.

안 대표가 지난해 8.27 전대에서 당선된 뒤 다섯 달 만에 통합이 이뤄졌다.
“그 다섯달 동안 당이 진짜 위기였다. 매주 화요일 아침에 김동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3선 이상 호남 중진들이 콩나물 국밥집에서 조찬 모임을 해왔다. 여기서 당의 의사 결정이 사실상 다 이뤄졌다. 그러나 안철수 대표와는 전혀 공유가 안 됐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따로 논 거다. 그래서 매일 최고위원 회의에 앞서 사전 회의를 신설해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안 대표도 9월 내내 모든 의원들 방으로 찾아가 만나며 화합을 꾀해 처음엔 당이 그럭저럭 굴러갔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제2창당 위원회를 추진했는데 흐지부지됐다.
“안 대표가 당선된 날 손학규 전 대표와 저녁을 하며 '제2창당 위원장'을 간청했다. 족발을 사서 구기동 손 전 대표 집을 찾아가 재차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9월에 미국 간다’면서 거부했다. 대신 ‘바른정당과 합쳐라. 그러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손 전 대표가 처음 거론한 것인가.
“그렇다. 손 전 대표는 그때 하태경 등 바른정당 의원들을 다 만나고 있었다. 그러나 안 대표는 당시까지는 합당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제2창당위를 꾸리는 데 집중했다. 인재영입위원장에 정동영 의원, 정치혁신위원장에 천정배 의원을 앉혀 화합을 도모하려 했다. 그런데 정동영이 돌연 지역 신문의 한 기사를 문제 삼아 참여를 거부했다. 전화도 안 받더라. 안 대표 밑에 들어오기 싫어 만든 핑계로 보였다. 정치 고수란 생각이 들었다.”
6일 민평당 창당대회장에 입장하는 박지원 의원 옆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축하 화환이 보인다. [뉴스1]

6일 민평당 창당대회장에 입장하는 박지원 의원 옆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축하 화환이 보인다. [뉴스1]

박지원 의원은 안 넣었나
“일부러 뺐다. 박지원이 당 전면에 더는 나서서는 안 된다는 게 중론이었다. 대선때 박지원 ‘상왕’론으로 안철수 후보의 타격이 컸다. 게다가 박 의원은 대선 기간 내내 전남 지역만 집중적으로 돌아 (전남 지사 후보군이던) 주승용 의원 같은 이를 질리게 했다. 그래서 박 의원이 ‘백의종군’ 수준을 넘어 의원직 사퇴를 선언해야 안철수 지지율이 반등할 것이라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런데 안철수는 박지원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정대철 고문을 보내 뜻을 전했다. 그러자 박지원이 노발대발하며 거부했다. 결국 ‘안철수가 집권하면 선출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선에서 그쳤다. 상왕론을 덮기엔 역부족이었다.”
안 대표와 호남 중진들의 전쟁은 어떻게 해서 터진 것인가.
“조배숙 의원이 11월 초 화요 중진 모임을 대표해 안 대표를 만나 ‘왜 자꾸 통합 얘기를 하느냐? 할 거냐 말 거냐’고 캐물었다. 안 대표는 ‘안 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 의원이 중진들에게 그런 얘기를 전했는데 마침 그날 내가 방송 인터뷰에서 ‘통합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했다. 그러자 조 의원과 중진들이 격분했다.”
왜 안 대표와 조율이 안됐나.
“내가 안 대표에게 따지니까 ‘바른정당에서 통합 물꼬를 터주면 그때 통합 방침을 밝히려는 생각에서 조 의원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 그걸로 중진들에게 설명이 되긴 부족했을 것이다. 거짓말 논란이 나온 배경이다. 게다가 그에 앞서 안 대표가 독일에서 적폐청산을 ‘정치 보복’이라 언급했다. 원래는 그렇게까지 가선 안 된다는 의미였는데 ‘보복’이란 말이 나와버리니까 ‘안철수가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으로 본다’는 프레임이 형성됐다. 패착이었다. 박지원 의원이 이를 파고들어 안 대표와 호남 중진 전원 간에 대결 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호남 중진들이 자연스럽게 박지원의 홍위병이 된 거다. 원래 목표는 박지원하고만 각을 세우는 것이었다. 워낙 (당 안팎에)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다. 정동영과 천정배는 전략적으로 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박지원과 각을 세울 시점만 찾고 있었는데 돌연 호남 중진 전원과 각이 서버린 거다.”
안 대표의 대응은 어땠나.
“안 대표에게 조배숙 의원부터 설득하라고 진언했다. 안 대표가 조 의원을 만나긴 했는데 실패했다. 안 대표 화법이 내심은 있는데 교감이 잘 안 되고 간절함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걸 고쳐야 한다. 그때 하도 당이 어수선하니 차라리 천정배 의원이 통합 논의의 전면에 나서면 ‘보수 야합’이란 욕이 안 나올 것 같아 그쪽 참모한테 살짝 얘기했더니 바로 오케이 사인이 오더라. 놀랐다.”
미래당 합류를 결단한 김동철(오른쪽), 박주선(가운데), 주승용 의원. [뉴시스]

미래당 합류를 결단한 김동철(오른쪽), 박주선(가운데), 주승용 의원. [뉴시스]

박주선·주승용·김동철 의원이 미래당에 온 결정적 이유는 뭔가.
“여론조사 영향이 컸다. 원래 세 사람은 안 대표가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버티니까 저쪽(민평당)으로 가겠다는 얘기까지 하며 격분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래당이 민평당을 호남에서 두배 넘게 앞서고 전국 지지율도 자유한국당을 제치는 결과가 나왔다. 이걸 보고 원래 박지원·정동영·천정배와 함께 하는 걸 기피했던 세 사람이 미래당을 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손 전 대표가 거론한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안 대표가 착수한 건 언제인가?
"안 대표는 9월까지는 통합에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10월이 넘어가면서 당 지지율이 무슨 수를 써도 안 오르니까 ‘손 전 대표의 통합론이 맞는 건지 (여론조사로) 한번 돌려볼까’하는 생각이 든 것 같다. 그래서 실제 조사해보니까 당 지지율이 두 배 넘게 치솟는 거로 나왔다. 모두 ‘허걱’ 했다. 안 대표도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고 하더라. ‘통합이 길이구나’라고 느꼈을 거다. 그 무렵은 당이 국정감사를 열심히 했지만 여당의 적폐청산 덫에 걸려 죽을 쑤고 있을 때였다. 출입 기자들이 ‘쓸 거 없느냐’고 사정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내가 ‘언론에 이 조사결과를 공개하자’고 했고 안 대표도 오케이를 해 기사가 난 것이다. 그 뒤로 당 뉴스가 쏟아졌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를 낙마시킨 건 안 대표 전략이었나
"안 대표와는 무관하다. 내가 반대 토론을 한 결과다. 김 후보가 광주정신에 반하는 인물이란 판단에서였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첨언하자면 국민의당은 현 정부의 인사와 관련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이낙연 총리 후보를 호남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동의해준 바람에 원칙이 없어졌다. 호남이면 다 오케이가 된 거다. 지금이라도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통합 정국에서 ‘태풍의 눈’이 된 이가 이용호 의원(남원·임실·순창, 초선)이다. 중재파 5인의 한명인 그는 다른 4인이 거취를 결정한 뒤에도 국민의당 탈당 의사를 밝혔을 뿐 민평당에 합류할 뜻은 비치지 않고 있다. 한 석이 아쉬운 미래당과 민평당 모두 그를 붙잡으려 난리지만 본인은 당분간 무소속으로 지내겠다는 생각이다. 안 대표의 통합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해온 그는 민평당에 대해서도 "미래가 없다”며 쓴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이 의원을 바라보는 상황인데.
"나는 원래 통합을 찬성한다고 했다. 다만 안 대표 대신 박지원·정동영·천정배가 통합 주장을 해야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안 대표가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버티면서 그런 구상이 무산된 끝에 당이 죽게 된 것이다. 안 대표나 유승민 대표는 민평당 창당이 내심 좋을 것이다. 박지원 등 3인이 탈당하지 않고 뭉갰으면 합당은 절대 못 했다. 설사 됐어도 개판이 됐을 텐데 미리 나가주니 얼마나 나이스하게 정리가 된 거냐.”
민평당에 가겠다는 생각 있나.
"민평당 당적으로 다음 총선에서 승산이 확실하면 가야지.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일단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있으면서 상황을 볼 것이다.”
민평당의 미래는.
"어차피 민주당 2중대다. 국회에서 교섭단체 아닌 당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민평당은 민주당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안 들어주면 호남이 등을 돌리니 결국 민주당 손바닥 안에서 놀 수밖에 없다. 그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호남에서는 어떨까.
"목소리 높은 사람들은 미래당을 비판하지만, 조용한 주민들 중엔 미래당에 기대하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게다가 민평당은 6.13 지방 선거도 큰 문제다. 박지원 의원조차 전남 지사 출마 의사를 최근 접었다고 들었다. 전북과 광주엔 누가 나올 수 있겠나. 광역 후보 하나 못 내고 호남 의원들끼리만 있는 당에서 무슨 뉴스 거리가 나오겠나. 앞길이 험난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지역에선 민평당 가라는 얘기가 많지 않나.
"그렇지만도 않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은 ‘큰 정치 하려면 미래당에 가라. 다만 다음 총선 당선은 보장 못 한다’고 조언하더라. 다른 호남 의원들도 미래와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거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