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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예술단, 멀미나는 만경봉호서 굳이 숙식하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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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송월 험한 파도 뚫고 묵호 도착 

오는 8일과 11일 각각 강릉과 서울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축하공연을 할 북측 삼지연관현악단(예술단)이 6일 방남했다.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예술단원 114명과 지원인력 등 예술단 본대는 만경봉 92호를 타고 이날 오후 5시쯤 강원 묵호항에 도착했다. 밝은 빨간색 외투와 검은 털모자를 쓰고 온 예술단은 묵호항에 정박한 만경봉 92호에 머물며 공연 준비를 할 예정이다. 삼지연관현악단은 이번 공연을 위해 임시로 조직된 단체로, 북측에서 활동중인 6~7개의 예술 단체의 최정예 단원을 선발해 꾸린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현송월이 단장을 맡고 있는 모란봉 악단 소속 단원들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할 북한 예술단 본진을 태운 만경봉 92호가 6일 오후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에 입항했다. 이 배에 탑승한 한 예술단원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강릉과 서울에서 공연할 북한 예술단 본진을 태운 만경봉 92호가 6일 오후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에 입항했다. 이 배에 탑승한 한 예술단원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저녁 평양에서 출발해 원산을 거쳐 이날 묵호에 도착한 예술단원들은 다소 지친 모습이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만경봉 92호는 6일 새벽 원산을 떠난 것으로 안다”며 “동해의 파도가 높아 (파도가 덜한) 연안을 따라 시속 8~13노트(15~24㎞)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동해의 파고는 2~4m로 여객선이 운항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조건이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파도 높이에 따라 선박의 운항 환경을 0~10단계(높을수록 위험)로 구분하는데, 이날 파고는 6단계인 ‘거친 상황’(rough)에 해당한다. 만경봉 92호의 운항에 안전 문제는 없었지만 예술단원들에겐 고생길이었다는 뜻이다.

 북측 단원들은 앞으로도 흔들리는 배 위에서 숙식을 해야 한다. 때문에 멀미와 피로로 공연때 정상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도 북측 응원단은 만경봉 92호에서 계속 머물렀다. 당시 북측 응원단을 안내했던 전직 당국자는 “응원단 중 상당수가 멀미로 고생했다”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이 이번에도 되풀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만경봉호 숙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원들을 남측 문화와 최대한 멀리 떼어놓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의 음악정치 전도사인 예술단원들이 강릉 시내에 오래 머물 경우 자본주의에 ‘오염’될 수 있다는 점을 북한 당국이 우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탈북자는 “북한에선 남한이 미국에 몸을 팔아서 먹고 살고 있다고 교육한다”며 “그런데 강릉 지역의 도로 여건이나 생활 수준이 서울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모란봉 악단원들의 경우 지난해 말 북측 전역을 순회공연했는데 남북한의 지방 사정을 자연스레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기존 관례를 고려해 만경봉 92호에 음식과 연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만경봉 92호가 정박하는 묵호항 일대는 헬기나 드론을 날리지 못하도록 비행금지 구역으로 설정했다.

한편 김일국 체육상을 비롯한 북측 민족올림픽위원회(NOC) 대표단(4명)과 응원단(229명), 태권도시범단(26명), 기자단(21명) 등 280명이 7일 오전 경의선 육로로 방남한다. 이들은 남측 출입사무소(CIQ)까지 북측 차량으로 이동해, 남측이 제공한 버스로 갈아타고 숙소로 이동할 예정이다. NOC 관계자는 평창 홀리데이인 호텔, 응원단과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은 인제 스피디움에서 머물 예정이다.

북측 태권도시범단은 남측 태권도시범단과 함께 4차례 공연한다. 평창올림픽 개회식 사전공연(9일), 속초시 강원진로교육원 공연(10일), 서울시청 다목적홀 공연(12일), MBC 상암홀 공연(14일) 등이다. 정부는 북측의 방남일정이 본격화되자 지난달 16일 출범시킨 정부합동지원단을 이날 정부합동관리단으로 확대개편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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