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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전세계 420만명 'ET와 대화'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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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화성이 6만년 만에 지구에 가장 근접했다는 지난달 27일 밤. 지구촌은 화성을 보려는 사람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비구름에 가려 화성을 관측하기 힘들었으나 폴리네시아 타히티 해변에서 호주와 일본에 이르기까지 수만명이 화성을 향해 망원경을 조준했다.

사람들이 이처럼 화성에 환호하는 이유는 뭘까.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6만년 전 이후 지구에 5천5백76만㎞로 가장 가깝게 다가왔다는 사실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아마도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란 기대감이 가장 크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우주항공국은 화성에 물과 생명체가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우주선을 쏘아올렸다. 그만큼 화성은 외계인의 환상을 심어주는 묘한 마력을 지닌 별이다.

이처럼 인간은 문명과 지성을 갖춘 외계인과 만나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해왔다. 1820년 독일의 수학자 칼 가우스는 외계에 인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시베리아 벌판에 보리를 기하학적 도형으로 심거나 사하라 사막에 거대한 구덩이를 파고 불을 지르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1972년과 73년 무인탐사선 파이어니어 10, 11호에 남녀 나체상 등을 새겨넣은 알루미늄판을 탑재했고, 여전히 운항 중인 보이저호에는 파도.개구리.아기울음 소리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등 지구의 음향을 담은 레코드판과 카트리지를 싣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이 직접 태양계를 넘어 우주 어딘가에 있을 외계인과 만날 가능성은 현재 지구의 우주선 제작기술이나 우주의 규모를 고려할 때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런 배경에서 외계인의 신호를 수신하려는 시도가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 Search for Extra 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젝트'다. 1960년 4월 8일 미국의 프랭크 드레이크가 웨스트버지니아에 직경 85피트의 무선 전파망원경을 설치하고 외계인이 보낸 신호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77년에는 외계에서 온 신호라고 생각되는 강한 신호를 잡아내 '와우 사인'으로 명명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의 진척은 이루지 못했다. 74년 11월 푸에르토리코 소재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이 외계에 우리의 신호를 보내는 등 세계 각지의 전파망원경이 동참하면서 SETI 프로젝트는 여러 은하를 목표로 추진됐다.

그러나 93년 미 항공우주국(NASA)의 예산이 삭감되면서 중단되고 말았다. 들어가는 예산이 막대할 뿐 아니라 무선신호가 몇백년, 몇천년 전의 신호여서 직접적인 결과를 바로 얻지 못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외계 신호를 알아내는 방법은 대용량의 자료처리 능력을 갖춘 수퍼컴퓨터만이 가능했던 일이었다. 올 초까지 아레시보 소망원경이 수집한 정보만 3천5백기가바이트(CD 7천장과 맞먹는 양)에 이른다.

특히 지구상의 인공적인 잡음과 천체.지구 자체에서 나오는 자연신호를 제거해야 하므로 대용량의 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해 정부의 지원은 필수로 여겨졌다.

어려운 가운데 99년 5월 SETI 프로젝트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를 주관해온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와 SETI 연구소가 인터넷 홈페이지(www.seti.org)를 통해 '세티앳홈(SETI@Home)'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통해 내려받은 화면보호기가 열쇠였다. 대용량의 자료를 0.25메가바이트(전송시간 1분이내)로 쪼개 전세계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 가운데 쉬고 있는 컴퓨터의 화면보호기 작동시간을 이용해 분석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화면보호기를 내려받은 세티앳홈 운동 가입자는 4백20만여명. 자료처리에 활용된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계산시간만 무려 2백40만년에 달한다.

우주정보서비스업체 ㈜에스이랩의 오승준 기획팀장은 최근 화면보호기를 내려받은 사람 중 한명이다. 오팀장은 "일반인이 참여하는 과학프로젝트라는 아이디어가 신선해 가입하게 됐다"며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교신이 내 컴퓨터를 통해 이뤄질 수도 있어 화면보호기가 켜질 때마다 짜릿한 감흥을 느낀다"고 말했다.

외계인 신호 수신에 사용되는 주파수는 1.4~1.6㎓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대가 아닐 뿐 아니라 잡음이 적다는 이점을 안고 있다.

또 물을 구성하는 수소원자와 산소원자 사이의 결합에서 이 주파수가 발생한다. 생명체를 물의 존재와 결부시키려는 시도다. 지금까지 SETI는 2천여만개의 외계 신호 가운데 1천여개의 신호를 외계인이 보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과연 외계인이 보낸 신호를 분리해낼수 있을까. 세티앳홈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버클리대 댄 워시머 교수는 "우리는 ET를 (세티앳홈을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숨을 거둔 다음에 이뤄질 공산이 크다"며 시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외계인을 만나기 힘들 것이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인류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을 가진 생명체가 우리를 동물원의 동물처럼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동물원 가설(Zoo Hypothesis)'이 흥미롭다. 인간이 관찰하는 미생물과 곤충이 인간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논리다.

또 발달된 문명을 지닌 외계인이 지구를 점령하기 위해 자기복제 능력을 지닌 첨단의 로봇을 이미 지구에 보냈지만 지구인은 볼 수 없다는 가설 등 여러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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