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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민영연금, 은퇴 후 소득 크레바스 넘길 징검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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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식의 연금 해부하기(29)

연금수급자 바우씨는 이렇게 생각한다. “개인이 알아서 노후를 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복지국가라면 정부도 책임을 져야지!” 그런데 바우씨 친구는 생각이 다르다. “왜 개인의 노후 준비에 국가가 개입해? 젊어 그랬던 것처럼 노후도 각자 형편에 맞게 알아서 준비하는 거지. 그러니 공적연금 같은 것은 폐지해야 해!”

개인의 노후를 그냥 시장기능에 맡겨둬도 괜찮을까? 노후 소득보장 문제에서 소위 ‘시장실패’라는 것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소득상실 위험은 분명히 있다.

국가는 국민이 나이 들어 소득이 없을 때도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공적연금이 필요하다. [중앙포토ㆍ연합뉴스]

국가는 국민이 나이 들어 소득이 없을 때도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공적연금이 필요하다. [중앙포토ㆍ연합뉴스]

민영연금은 기본적으로 저축이다. 계약에 따른 채권채무 관계만 이행하면 된다. 국민의 노후 소득보장 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것이 시장기능의 한계다. 반면 국가는 국민이 나이 들어 소득이 없을 때도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해줘야 한다. 그래서 공적연금이 필요하다. 결국 민영연금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노후빈곤 완화 및 소득 재분배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기능을 공적연금을 통해 달성하게 된다.

그런데 국가도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개개인의 노후를 국가가 어떻게 구석구석까지 알뜰하게 보살필 수 있겠는가? 개인의 노후 소득보장에는 ‘정부실패’라는 것도 있다. 그러니 민간에서 운영하는 민영연금도 있어야 한다.

상호보완적인 공적·민영연금

은퇴 후 소득이 중단됐을 때도 필요한 소비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연금제도다. 공적연금이든 민영연금이든 그 목적은 같다. 차이점은 공적연금은 법률에 따라 권리와 의무가 형성된다. 반면 민영연금은 개인이 금융사의 연금 상품을 구입하는 방식이다. 보험자와 피보험자의 관계는 계약으로 형성된다.

얼핏 보면 두 연금제도가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보완관계다. 민영연금은 공적연금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예를 들어 평생 받을 수 있고 물가에 연동되는 공적연금은 생계유지를 위한 월급과 같다. 민영연금은 퇴직 후 공적연금을 받기까지 소득 공백기에 징검다리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자녀 결혼자금, 간병비 등 필요한 자금의 성격에 따라 인출 방법을 선택해서 활용할 수 있다.

공적연금과 민영연금의 균형 잡힌 역할분담이야 말로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중앙포토]

공적연금과 민영연금의 균형 잡힌 역할분담이야 말로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중앙포토]

이처럼 공적연금과 민영연금의 균형 잡힌 역할분담이야말로 고령사회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사회보장선진국들은 노후 소득보장 수단으로 다층보장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공적연금과 기업연금(퇴직연금) 및 개인연금을 제도화한 것이다.

재화나 서비스는 경제활동 시기에 생산하고 은퇴 후에는 생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이 일평생을 살아가려면 경제활동 시기에 생산한 것의 일부를 노후를 위해 저장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소비재나 서비스를 저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효과적으로 은퇴 후에 소비할 재화와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을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경제활동 시기에 소득의 일부를 저축해 자산을 형성하고, 이를 은퇴 후 후세대가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와 교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경제활동 시기에 생산한 재화와 서비스의 일부를 선(先) 세대에게 제공하는 대신에 후세대가 생산한 재화와 용역을 소비할 수 있는 권리를 약속받는 것이다. 이것을 연금재원 조달방식 차원에서 해석하면 앞에 있는 것이 적립방식이고, 뒤에 있는 것이 세대 간 부양의 부과방식이다.

공적연금은 두 가지 방식이 모두 가능하지만 주로 부과방식이다. 민영연금은 연금 공급자와 구매자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적립방식만 가능하고 부과방식은 불가능하다.

연금 상품을 제공하는 민영 금융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따라서 보험대상이 될 수 없는 위험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민영연금이 보통 물가인상을 반영하지 않는 것이 좋은 사례다. 물가인상은 모든 피보험자에게 동시에 적용되기 때문에 위험이 분산될 수 없어 보험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

연금수급자에게 필요한 것은 연금 자체가 아니라 그 돈으로 소비할 수 있는 의류, 음식, 주거, 의료 서비스 등이다. [중앙포토]

연금수급자에게 필요한 것은 연금 자체가 아니라 그 돈으로 소비할 수 있는 의류, 음식, 주거, 의료 서비스 등이다. [중앙포토]

그런데 연금수급자에게 필요한 것은 연금 자체가 아니라 그 돈으로 소비할 수 있는 의류, 음식, 주거, 의료 서비스 등이다. 물가가 오르면 구매력은 떨어진다. 월 200만 원의 연금이 10년, 2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가치를 가질까? 몇십 년 뒤에 받을 연금의 명목가격을 현재가치로 생각하는 ‘보험착각’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소득보장 면은 공적연금 우세

높은 관리운영비와 투자수익률 저조도 민영연금을 꺼리는 원인이다. 또한 연금 상품의 복잡성과 불투명성, 정보 부족 등으로 소비자가 자신의 능력과 기호에 따라 합리적으로 연금 상품을 구입하기도 어렵다.

반면에 공적연금은 연금의 구매력을 확보할 수 있는 물가인상을 반영한다. 또한 관리운영비가 적게 들거나 아예 국가가 부담한다. 연금액도 대부분 확정급여(DB)이기 때문에 투자수익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소득보장 면에서는 공적연금이 우월하다.

그렇다면 공적연금은 믿을 수 있는가? 고령화 시대다. 지속해서 다듬어 나가야 한다. 제도가입자들은 불안해서 법률로 지급보장을 요구한다. 그런데 법률에 명시적으로 지급보장을 규정하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또 그래야 할 합리적인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고 대책도 없이 그냥 안심시키는 것은 연금제도의 장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최재식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silver2061@hanmail.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article/2233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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