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집게 AI가 ‘수포자’ 지도하자 평균 성적 28% 뛰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8.02.04 00:02

업데이트 2018.02.0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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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호 03면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의 애리조나주립대 리포트
애리조나주립대 피닉스 캠퍼스의 행정학과 수업에서 학생들이 주정부에 제시할 정책 대안을 찾기 위해 프로젝트 학습을 하고 있다. [사진 애리조나주립대]

애리조나주립대 피닉스 캠퍼스의 행정학과 수업에서 학생들이 주정부에 제시할 정책 대안을 찾기 위해 프로젝트 학습을 하고 있다. [사진 애리조나주립대]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난달 26일 오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콧데일에 있는 스카이송(SkySong)이란 교육·연구·창업단지 내 에듀플러스(EduPlus) 빌딩을 찾았다. 애리조나주립대(ASU)가 세운 비영리기업(ASU Enterprise Partner)의 릭 생그로(Rick Shangrow) 대표(전 연구부총장)의 안내를 받았다. 그는 스카이송에 입주한 130여 개 첨단 교육공학 벤처기업을 지원한다.

기초학력 끌어올리는 ‘적응학습’
생물·미시경제학서도 놀라운 성과

온라인 수업에 3만4000명 참여
세계 어디서든 1학년 강의 수강 땐
학부 2학년으로 자동 입학 가능
한국도 유학생 선발 때 참고할 만

생그로 대표는 이날 “인공지능(AI)이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에 맞춰 개별화된 학습 경로를 제공하는 ‘적응학습(adoptive learning)’을 기초학문에서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학은 대학 신입생 과정인 대수학(algebra) 과목에서 미국 출판 및 학습과학 기업인 맥그로힐에듀케이션(McGraw Hill Education)이 개발한 ALEKS 시스템을 도입한다. ALEKS의 AI는 학생들의 수학 학습 능력을 평가하고, 장점과 약점을 찾아내 각각에 맞는 학습 방법을 제공해 수학을 마스터하게 한다. 적응학습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16년 이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기초수학 역량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의 성적이 평균 28% 향상됐다. 수학뿐이 아니다. 생물학의 경우 교육기업인 코그북스(CogBooks)가 개발한 적응학습을 2015년 도입한 결과 봄학기 20%였던 탈락률이 1.5% 줄었고, C 학점 미만의 비율이 28%에서 6%로 감소했다. 미시경제학도 2017년 적응학습을 도입한 결과 첫 시험에서 C 학점 미만 학생 비율이 38%에서 11%로 낮아졌다.

이처럼 ASU의 적응학습은 특히 뒤처지는 학생들을 기초과목에서 끌어올려 주는 데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생그로 대표는 “ASU에서 적응학습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ASU는 학생 기숙사 방에도 인공지능 로봇을 설치해 학생들이 수시로 적응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데이터에 기반한 학생 종합상담 시스템인 ‘이어드바이저(eAdvisor)’도 개별적으로 적합한 전공을 찾아주고, 학위 취득이 용이한 길을 알려준다.

한국에선 수포자(수학포기자)는 중·고교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나온다. 학교가 학생 개개인의 역량에 맞춰 수학을 학습하도록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채 갈수록 어려운 과정으로 넘어간다. 한국에서도 ASU와 같이 인공지능을 이용한 적응학습으로 수포자 문제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ASU 마이클 크로 총장(왼쪽)과 이주호 전 장관.

ASU 마이클 크로 총장(왼쪽)과 이주호 전 장관.

이 대학의 마이클 크로 총장은 2002년 취임 때 “미국의 다른 엘리트 대학처럼 얼마나 많은 학생을 제외시키느냐로 평가받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학생을 포용해 성공시키느냐로 평가받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유수 대학은 여전히 우수 학생을 선발해 명성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이에 비해 ASU는 입학시험에서 탈락시키는 학생 수준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입학시킨 학생들이 성공에 이르게 해 성과로 평가를 받겠다는 발상이다. 크로 총장은 이를 ‘새로운 미국 대학(The New American University)’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런 의미에서 ASU가 내세운 포용적 대학 모델이 한국에서도 가능할지 궁금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절반 이상의 직업들이 기계에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대학은 더 많은 젊은이에게 첨단기술을 활용해 일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이것이 모든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 대학의 포용적 대학 모델은 온라인 학습에서 나타난다. ASU에는 학위과정 학생만 10만 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3만4000여 명의 학생이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으며, 온라인 학습만으로 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도 1만5000여 명이다. 온라인 학습의 확산을 위해 스카이송 단지에는 200명 이상의 전문가가 ASU 핵심 교수진의 일반 강의를 온라인 버전으로 개발하고 있다.

ASU는 본교 교수의 강의를 온라인 학습으로 전환하는 것만큼이나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s, 대규모 온라인 공개 수업) 플랫폼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시작된 에드엑스(edX)는 MIT 교수는 물론 저명한 교수들의 온라인 강의를 무료로 제공해 지난해 등록 인원만 15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 유독 ASU만이 edX의 대학교 1학년 과정을 이수한 학생은 누구든지 자동적으로 ASU에 입학할 수 있는 길(Global Freshmen Academy)을 열었다. 전 세계의 어느 학생이든 edX에서 1학년 과목 전부를 성공적으로 이수하면 자동으로 ASU에서 2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다. 한국 대학들도 해외 유학생을 선발할 때 과감하게 MOOC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해외의 의욕 있는 학생들이 더 많이 한국 대학으로 올 수 있을 것이다.

이곳 교수들의 수업이 빠르게 강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ASU의 기술혁신대학(College of Technology and Innovation)에선 모든 수업이 지역사회나 지역 내 회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학습으로 진행된다. 프로젝트 학습(Project-based Learning)이란 학생이 스스로 제안한 과제(프로젝트)를 다른 학생들과 서로 협력해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교육 방법을 말한다. ASU 교수들은 기존의 강의식 수업을 완전히 버리고 모든 수업을 프로젝트 방식으로 전환했다.

지난달 26일 피닉스 캠퍼스의 행정대학(School of Public Affairs) 학부 4학년 수업을 참관했다. 학생 상당수가 인근 주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일하고 있어서 수업은 저녁 시간에 진행됐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6~7명의 소규모 그룹으로 나뉘어 애리조나주의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대학의 행정학과 학부장인 김유심 교수는 “행정대학의 많은 수업에서 인근 주정부나 관련 기관의 정책 담당자들이 실제 정책 이슈를 수업에 가져와 학생이 프로젝트를 하도록 한다”며 “학생에게는 좋은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정책담당자는 프로젝트 결과물을 실제 정책에 유용하게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ASU는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엘리트 대학은 아니다. 하지만 이 대학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 여건과 재정 여건 아래서도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포용적 대학으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도 이를 참고할 만하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jhl@kdischoo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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