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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서울 산책] 한국 설명절 ‘시월드’ 어떤지 궁금, 며칠만 며느리로 받아줄 분 없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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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 일본인 저널리스트

한국에서 설날이라고 하면 구정을 말하지만, 일본에서는 신정이다. 올해는 중국에서 새해(신정)를 맞이했다. 백두산에 올랐다. 햇살에 비쳐 반짝이는 천지를 보는 아주 귀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본이 아닌 곳에서 새해를 맞는 것이 생전 처음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와 지난달 4일에 일본에 갔다. 가자마자 신년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나온 요리가 ‘오세치’였다. 설날 때 먹는 요리다. 찬합에 담긴 예쁜 오세치를 본 순간 처음으로 해가 바뀌었다는 실감이 났다. 특별히 전통을 지키면서 사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매년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들을 안 하면 어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 새해 명절음식인 오세치 요리. 찬합에 형형색색의 조림음식들을 담아두고 설 연휴 반찬으로 먹는다. 연휴기간 주부들을 쉬게 하기 위한 지혜가 담겨 있다. 청어알은 자손번창, 검은 콩은 얼굴이 검게 될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부지런함, 새우는 허리가 휠때까지 장수를 바라는 마음 등 모든 음식엔 각각의 의미가 있다. [중앙포토]

일본 새해 명절음식인 오세치 요리. 찬합에 형형색색의 조림음식들을 담아두고 설 연휴 반찬으로 먹는다. 연휴기간 주부들을 쉬게 하기 위한 지혜가 담겨 있다. 청어알은 자손번창, 검은 콩은 얼굴이 검게 될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부지런함, 새우는 허리가 휠때까지 장수를 바라는 마음 등 모든 음식엔 각각의 의미가 있다. [중앙포토]

일본에서 한국의 섣달그믐에 해당하는 12월 31일을 ‘오미소카’라고 한다.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평소에 대충 청소하는 나도 오미소카 만큼은 가족과 함께 집안 구석구석까지 깨끗이 닦는다. 그리고 홍백가합전을 보면서 소바(메밀국수)를 먹는다. 홍백가합전은 매년 오미소카의 밤에 하는 NHK의 음악 프로그램이다. 여성 가수로 구성된 홍팀과 남성 가수로 구성된 백팀이 노래로 경쟁한다. 옛날만큼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하지만 그래도 40% 안팎에 이른다.

지난해 12월31일 은퇴 전 마지막 홍백가합전에 출전한 가수 아무로 나미에. 아무로가 등장하자 순간 시청률이 48.4%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31일 은퇴 전 마지막 홍백가합전에 출전한 가수 아무로 나미에. 아무로가 등장하자 순간 시청률이 48.4%를 기록했다.

지난해엔 은퇴 선언을 한 아무로 나미에가 마지막으로 나오는 홍백가합전으로 화제가 되었다. 1977년생인 아무로 나미에는 1982년생인 내가 중학교생이던 시절 톱스타였다. 한국 여성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도 출연했다. 이번 홍백가합전은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중국에 있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12월 31일에 홍백가합전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음에도 위안 삼아 봤다. 

새우튀김을 얹은 소바. 집집마다 지방마다 소바 위에 올리는 고명이나 국물이 다르다. [중앙포토]

새우튀김을 얹은 소바. 집집마다 지방마다 소바 위에 올리는 고명이나 국물이 다르다. [중앙포토]

소바는 평소에도 자주 먹는 음식이지만 오미소카에는 꼭 먹는다. 왜 먹는지는 여러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가늘고 길게 생긴 소바처럼 오래 살라는, 즉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들 한다. 또 소바가 잘 끊어지는 만큼 한 해의 고생을 잘라내자는 의미가 담겼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 아이들이 인스턴트 소바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 없이 아이들끼리 인스턴트 식품을 먹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픈데 그 음식이 소바여서 더 가슴이 아팠다. 소바를 먹는 건 그날이 오미소카란 뜻이다. 크리스마스에는 돌아오겠다고 했던 엄마가 오미소카에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영영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예감을 준다. 엄마가 아이들을 방치하고 집을 나가버린 실제 사건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에서 나는 이 소바를 먹는 장면이 제일 슬펐다.

신문사에 입사한 후에는 오미소카에 당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경우에도 당직 기자들끼리 홍백가합전을 보면서 소바를 먹었다.

해가 바뀌면 오세치를 먹고 신사에 간다. 새해 처음 신사에 가는 것을 ‘하츠모데’라고 한다. 유명한 큰 신사로 갈 때도 있고 집 근처의 작은 신사로 갈 때도 있다. 가면 신년의 소원을 비는데 올해는 신사에 못 간 대신 백두산 정상에서 소원을 빌었다.

도쿄의 유명사찰인 센소지에 '하츠모데'를 위해 모인 일본인들. 한해 건강과 행운을 빌며 아마자케(단술)를 마신다. [중앙포토]

도쿄의 유명사찰인 센소지에 '하츠모데'를 위해 모인 일본인들. 한해 건강과 행운을 빌며 아마자케(단술)를 마신다. [중앙포토]

한국의 설날이 다가온다. 이참에 일본에서 제대로 못지낸 설날을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지내볼까 생각 중이다. 그렇다고 한국에 가족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한국인들이 설날에 먹는 떡국을 만들어 먹는 정도일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명절 때 그 나라 특유의 문화가 나타날텐데 진짜 그 나라 사람이 아니라면 경험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 아쉽긴 하다. 한국사람과 결혼한 친구들은 명절 때 할 일도, 신경 쓸 일도 많아서 힘들다는데 나는 실제 어떤지가 너무 궁금하다. 누구, 딱 며칠만 저 며느리로 받아주실 분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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