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채일의 캠핑카로 떠나는 유럽여행(17)
“오늘 저녁 특식은 라면이에요.” 며칠 후 캠핑카를 반납하기 때문에 아내가 그동안 아껴두었던 비상식량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스펠로의 매력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예정보다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아시시에 도착하니 벌써 날이 어둑하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아시시의 캠핑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 외엔 아무도 없다. 깜깜한 숲속에서 홀로 캠핑을 한다 생각하니 은근히 겁이 난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내가 부러 농담한다. “대신 퀴즈를 하나 풀어야 라면을 먹을 수 있어요. 세계 5대 미항 중 하나, 이탈리아 주보성인, 아시시. 이 셋의 공통점은?”
답은 성(샌) 프란치스코다. 저녁을 먹기 위해 답을 억지로(?) 맞힌 덕에 아시시의 캠핑장에서 얼큰하고 따끈한 한국 라면을 먹는 호사를 누린 후 아시시의 밤거리 구경에 나섰다.
아시시는 중세 시대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밝고 화려한 불빛 정도가 아닐까? 전깃불을 제외한 거리풍경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 듯 싶다. 순간 이동이 가능한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유럽의 낯선 마을에 불시착한 느낌이다.
아시시의 중심지인 코무네 광장 주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들로 번화하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다. 그러나 관광객들 특유의 들뜨거나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우리 앞으로 진한 커피색의 거칠고 소박한 수도복 차림으로 걸어가는 수도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딱지가 덕지덕지 낀 진한 흑갈색의 건물들과 차분하고 조용한 관광객들, 그리고 느릿느릿 거리를 걷는 수도자들 모습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지금까지 다녀왔던 그 어떤 도시나 마을과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왜일까?
성 프란치스코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00여 년이 지났지만, 이 조용한 도시는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에서도 카페에서도 심지어는 기념품 가게에서도 사람들은 성 프란치스코를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그에 관한 추억을 되짚어 내고 있었다. 아시시에는 여전히 성 프란치스코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마을 길을 천천히 걸어 반대편 끝에 있는 그의 유해가 묻혀있는 성당을 찾아보았다. 건물은 비탈진 지형을 따라 상부, 하부, 지하 성당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의 유해는 지하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성당 내부는 프레스코화로 살아생전 그의 행적과 에피소드를 그려놓았다. 성인의 희생과 삶의 향기가 성당 안을 그윽이 감싸는 듯하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토록 시대를 뛰어넘어 뭇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이 식을 줄 모르는 것일까?
‘가난한 이들의 성인’이라고도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에서 커다란 포목상을 하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금수저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한 이후 자발적으로 흙수저의 삶을 선택하였다.
젊은 시절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그는 어느 날 예수의 목소리를 들은 후 길을 가는 거지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 지니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주는가 하면, 헌 성당을 재건하기 위해 아버지 가게의 값비싼 옷감들을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갖은 시도를 하였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아시시의 법정에서 프란치스코는 재산 상속권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과 입고 있던 옷을 모두 아버지에게 돌려주었다. 이후 그는 낡고 해진 옷에 맨발로 돌아다니며 평등한 인간, 무소유의 삶을 교리로 삼는 ‘작은 형제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기도생활을 했다.
마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맑고 깨끗했던 그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동냥으로 끼니를 때우는 탁발승이자 순례 설교자로 살면서 어느 날 새들에게 다가가 설교를 했더니 새들이 그의 주위에 구름같이 날아들어 그의 말을 경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마을 사람들을 헤치는 굶주린 늑대를 설득해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길을 마련해주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있다.
또 그를 찾아온 춥고 배고픈 나병 환자와 따뜻한 음식을 나눈 후 그를 끌어안고 자면서 얼은 몸을 녹여주었다는 감동적인 일화도 있다.
그는 당시 중세 교회가 참된 신앙 보다는 세속적인 특권과 재물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올바른 수도자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성인이었다.
말년에 그는 기도 중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받은 상처와 같은 모양의 다섯 개의 상처를 입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리스도의 현신으로 존경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가 잠들어 있는 지하 성당에서 그의 행적을 떠올리며 조용히 묵상하다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갈등과 다툼이 떠올랐다. 그가 올렸다는 ‘평화의 기도’를 조용히 되뇌어 보았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장채일 스토리텔링 블로거 blog.naver.com/jangchai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