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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정조 '책가도' 본뜬 도서·기록·박물관은?

중앙일보

입력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를 찾은 어린이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를 찾은 어린이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조용하기만 한 일반 도서관과 달리 '라키비움 책마루'는 음악도 틀어 주고 의자 배치도 다양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지난달 30일 전북 전주시 동서학동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누리마루 3층.
이정원(여·23·전북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씨가 의자에 운동화를 벗고 올라가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를 읽고 있었다. 탁 트인 창으로는 전주 한옥마을과 자만벽화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문 열어 #내부 자료실에 공공도서관 기능 더해 개방 #전주 한옥마을 맞은편 "가장 전망 좋은 곳" #도서 2만권 소장…인간문화재 기록도 전시 #브런치 강좌·씨네 토크 등 문화 프로그램도

이씨가 "한마디로 프리(free)하다"고 소개한 이곳은 무형유산원이 1일 정식으로 문을 연 '라키비움(Larchiveum) 책마루'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박물관(Museum)을 합친 신조어다. 무형유산원이 내부 직원들만 이용하던 '무형유산 정보자료실'을 유네스코 아태문화유산센터가 쓰던 사무 공간(375㎡)으로 확장·이전하면서 공공도서관 기능을 더해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이 누리마루 3층에 꾸민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창 밖으로 눈 덮인 전주 자만벽화마을이 보인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이 누리마루 3층에 꾸민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창 밖으로 눈 덮인 전주 자만벽화마을이 보인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이 누리마루 3층에 꾸민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창 밖으로 눈 덮인 전주 자만벽화마을이 보인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이 누리마루 3층에 꾸민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창 밖으로 눈 덮인 전주 자만벽화마을이 보인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삼면(三面)이 유리로 둘러싸인 라키비움 책마루는 무형유산원 안에서도 전망이 제일 좋은 곳으로 꼽힌다. 겨울에 눈이 오거나 가을에 단풍이 들 때 특히 운치가 있다고 한다. 지난해 2월 사업 계획을 세운 무형유산원은 모두 3억원을 들여 그해 12월 라키비움 책마루를 완성했다.

"무형유산원이 내부 자료실을 대출까지 가능한 공공도서관으로 바꾼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보통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자료실은 폐쇄적이어서다. 자료 대부분이 전문 서적인 데다 일반인에게 공개하더라도 열람만 할 수 있고 자료 훼손이나 분실 위험 때문에 대출은 꺼린다는 것이다. 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최연규 사무관은 "무형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무형유산원의 문턱을 낮췄다"고 말했다.

정조의 '책가도'를 본떠 설계한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정조의 '책가도'를 본떠 설계한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전북 전주시 동서학동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 전경.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전북 전주시 동서학동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 전경.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도대체 무형유산원이 무엇을 하는 기관이기에 '무형유산 알리기'에 안간힘을 쓰는 걸까. 무형유산원은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승하기 위해 2014년 10월 설립됐다. 세계 최초의 무형유산 복합행정기관이다. 무형유산원은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문화유산을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게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공연장·아카이브 자료실·국제회의실 등을 갖추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일컫는 인간문화재가 점점 줄고 있는 현실도 무형유산원이 내부 자료실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무형유산원에 따르면 196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도가 도입된 이후 600여 명이 인간문화재로 인정됐다. 현재 생존한 인간문화재는 280여 명이다. 최 연구관은 "숭례문 등 유형문화재는 남아 있지만, 무형문화재는 이를 보유한 인간문화재가 돌아가시면 사라지기 쉽다. 이 때문에 무형유산원이 나서서 개인이나 학교·기관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모아 영구 보존해 후대에 물려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인간문화재들의 예술혼과 삶의 자취가 담긴 공연 영상과 기록물 1만 여점을 수집해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내부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이런 맥락에서 올초 시범 운영에 들어간 라키비움 책마루는 공간 설계부터 독특하다. 연세대 실내건축학과 임호균 교수는 조선시대 문인화의 일종인 책가도(冊架圖)에서 영감을 얻어 공간을 설계했다. 책가도는 조선 후기 책장과 책을 중심으로 문방구와 골동품·꽃·기물 등을 그린 정물화를 말한다. 문(文)을 중시한 정조는 어좌(御座, 임금이 앉은 자리) 뒤에 책가도를 세울 정도로 민간에 장려했다고 한다. 라키비움 책마루는 정조의 책가도처럼 서가에 책뿐 아니라 국가무형문화재의 전승 공예품과 무형유산 관련 기록물을 함께 배치한 게 특징이다.

승무·살풀이춤 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이 생전에 쓰던 오픈 릴 테이프 덱(open reel tape deck)도 전시물 중 하나다. 오픈 릴 테이프는 릴(틀)에 감아서 사용하는 녹음 테이프를 말한다. 최 연구관은 "이 선생은 생전에 공연에 필요한 반주를 직접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승무·살풀이춤 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이 생전에 쓰던 오픈 릴 테이프 덱(open reel tape deck)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승무·살풀이춤 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이 생전에 쓰던 오픈 릴 테이프 덱(open reel tape deck) 모습.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의 글씨체를 본떠 목판 형태로 제작된 책마루 현판.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의 글씨체를 본떠 목판 형태로 제작된 책마루 현판.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곳곳에는 장인(匠人)들의 솜씨가 묻어난다. 책마루 현판은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의 글씨체를 본떠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인 김각한 보유자가 목판 형태로 제작했다. 가구들은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小木)장 이수자인 유진경·홍승효·장희방 작가가 만들었다.

라키비움 책마루는 무형유산 관련 전문 도서와 기증 도서, 인문학 서적과 소설 등 2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무형유산 관련 연속간행물과 학술지·논문도 볼 수 있다. 민속학자 고 이두현 서울대 명예교수와 태평무 보유자 강선영 선생도 도서를 기증했다. 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노희진 주무관은 "이두현 선생이 기증한 도서 8000권 가운데 대출이 어려운 외국 책과 고서(古書) 등은 문서고에 있고, 그의 연구를 대표할 만한 300권만 추려 책마루에 진열해 놨다"고 했다. 노 주무관은 "강선영 선생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모은 월간지 '춤'을 기증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태평무 보유자는 없다"고 덧붙였다.

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노희진 주무관이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기증 도서를 살펴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국립무형유산원의 한 직원이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라키비움 책마루에선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소장한 자료 원문도 검색·열람·인쇄할 수 있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도서 대출도 가능하다. '책이음 서비스' 회원이면 따로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만든 '책이음 서비스'는 회원증 한 장으로 전국의 공공도서관 800여 곳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제도다.

무형유산원이 2014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출품작 및 상영작 등 시청각 자료도 볼 수 있다. 무형유산원 측은 회원들로부터 '보고 싶은 책이 있다'는 요청이 들어오면 예산 범위 내에서 계속해서 구매할 계획이다.

이정원(여·23·전북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씨가 지난달 30일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를 읽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이정원(여·23·전북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씨가 지난달 30일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를 읽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최연규 사무관이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의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최연규 사무관이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의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다. 전주=김준희 기자

책마루에선 매달 '이달의 인간문화재'라는 특별 서가도 꾸민다. 인간문화재들의 삶과 예술혼을 집중 조명하는 코너다. 1월에는 '조선의 마지막 무동(舞童)'이라 불린 김천흥 선생의 영상과 기록이 전시됐다. 고인은 종묘제례악·처용무 보유자였다. 특별 서가에서 다룰 인간문화재는 2월 김명환(판소리 고법), 3월 송주안(나전장 끊음질), 4월 신쾌동(거문고 산조), 5월 김성진(대금정악), 6월 정연수(매듭장), 7월 김윤덕(가야금산조 및 병창), 8월 이주환(가곡·가사), 9월 한희순(조선왕조궁중음식), 10월 김광주(악기장), 11월 강백천(대금산조), 12월 이치호(단청장) 등이다.

무형유산원은 3월부터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조지오웰의 혜안' '유월의 서점' '잘 익은 언어들' 등 전주 지역 작은 책방과 공동으로 기획한 '브런치타임 교양 강좌'가 대표적이다. 국내·외 영화제 수상작 상영과 더불어 전문가의 해설이 있는 '씨네-토크 프로그램', 문화·역사·예술·철학 등 명사 초청 특강도 열린다.

1일 열린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개관식에서 조현중 국립무형유산원장(가운데 왼쪽)과 김승수 전주시장(가운데 오른쪽)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1일 열린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개관식에서 조현중 국립무형유산원장(가운데 왼쪽)과 김승수 전주시장(가운데 오른쪽) 등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덕수 교수가 지난달 31일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세계 속의 사물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덕수 교수가 지난달 31일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에서 '세계 속의 사물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책마루에 딸린 커뮤니티룸은 독서 등 소규모 동호인 모임에 맞춤한 공간이다. 최대 15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전화(063-280-1578)로 예약하면 된다. 무료다.

조현중 국립무형유산원 원장은 "국립무형유산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기관으로서 누구나 무형유산의 가치를 친근하게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내부 시설을 개방하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1일 열린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개관식에서 최연규 사무관이 사업 개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1일 열린 국립무형유산원 '라키비움 책마루' 개관식에서 최연규 사무관이 사업 개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국립무형유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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