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뉴 VS 첸, 강릉을 뜨겁게 달굴 4회전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7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한 하뉴 유즈루. [모스크바 EPA=연합뉴스]

2017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한 하뉴 유즈루. [모스크바 EPA=연합뉴스]

아름다운 '4회전 전쟁'이 강릉에서 펼쳐진다. 디펜딩 챔피언 하뉴 유즈루(23·일본)와 '점프 머신' 네이선 첸(19·미국)이 남자 피겨 최정상의 자리를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인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종목은 피겨 남자 싱글이다. 2014 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하뉴가 66년 만의 남자 싱글 2연패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남자 싱글에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건 1948년과 1952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딕 버튼(미국)이 마지막이다.

겨울올림픽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남자 싱글 우승을 차지한 하뉴는 지난해까지 명실상부한 최고였다. 2013~14시즌부터 2016~2017시즌까지 4년 연속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2014년과 2017년 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과 2016년에는 2위에 올랐다. 쇼트프로그램(112.72점)과 프리스케이팅(223.20점), 총점(330.43점) 최고점 기록도 모두 가지고 있다. 하뉴는 기술의 정확성과 예술성,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춘 스케이터다. 평창올림픽에서 여자싱글 테크니컬 스페셜리스트로 배정된 정재은 심판위원은 "하뉴는 주니어 시절부터 여자 선수 못잖은 유연성과 근력을 가졌다. 스핀의 예술성도 뛰어나 높은 레벨을 수행하면서 가산점을 많이 받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2014 소치올림픽 당시 키스앤크라이존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하뉴 유즈루. 그의 코치는 김연아를 지도했던 브라이언 오서다. [소치 AP=연합뉴스]

2014 소치올림픽 당시 키스앤크라이존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하뉴 유즈루. 그의 코치는 김연아를 지도했던 브라이언 오서다. [소치 AP=연합뉴스]

빼어난 실력 못잖게 귀공자 같은 외모까지 갖춘 하뉴는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강릉에서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4대륙 선수권에선 하뉴를 보기 위해 4000여 명의 일본인 팬들이 몰려왔다. 이번 올림픽을 1년 앞두고도 이미 숙소를 문의할 정도다. 입장권이 가장 먼저 매진된 종목도 남자 피겨 프리스케이팅이었다.

하지만 하뉴의 금메달 전망이 밝지는 않다.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뉴는 지난해 11월 그랑프리 4차 대회를 앞두고 공식 훈련을 하다가 오른 발목을 다쳤다. 하뉴는 이후 모든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올림픽 선발전을 겸한 일본선수권에도 불참했다. 일본빙상연맹은 당연히 하뉴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부여했지만 기량을 얼마나 빨리 회복할 지는 미지수다. NBC 해설을 맡고 있는 조니 위어는 최근 하뉴의 훈련을 지켜본 뒤 "하뉴가 연습할 때 자유로워 보인다. 허공에서 훨훨 나는 것 같다"고 했다.

Nathan Chen, of the United States, reacts after skating his free program to win the Rostelekom Cup ISU Grand Prix figure skating event in Moscow, Russia, on Saturday, Oct. 21, 2017. (AP Photo/Ivan Sekretarev)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Nathan Chen, of the United States, reacts after skating his free program to win the Rostelekom Cup ISU Grand Prix figure skating event in Moscow, Russia, on Saturday, Oct. 21, 2017. (AP Photo/Ivan Sekretarev)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하뉴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가 바로 첸이다. 첸은 최근 남자 피겨 선수의 필소요소가 된 쿼드러플(4회전) 점프 최고수다. 무려 7개의 4회전 점프(쇼트 2회, 프리 5회)를 구사한다. 첸은 반 반퀴를 더 돌아야 하는 악셀을 제외한 4회전 점프 5종(러츠·플립·살코·루프·토루프)을 모두 실전에서 선보인 최초의 선수다. 지난해 ISU 챌린저 시리즈 US 인터내셔널 클래식에선 한 프로그램에서 4회전 점프 5종을 모두 넣기도 했다. 지난 7일 끝난 미국선수권에선 315.23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국제대회가 아니라 ISU 공인 점수는 아니지만 개인 최고점이다. 시니어 데뷔 2년 만에 올림픽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 정재은 심판은 "피겨에선 한 프로그램에서 같은 점프를 2번 뛸 수 없다. 4회전 점프를 다양하게 구사한다는 건 돌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계 이민자 자녀인 첸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점프를 하는 건 발레와 체조 덕이다. 첸은 발레를 6년이나 배웠고, 7년간 유타주 체조대회에도 출전했다. 덕분에 발레처럼 우아한 동작을 잘 소화하고, 힘있게 다리를 쭉 뻗는 스프레드 이글(독수리가 날개를 펴듯한 동작)도 깔끔하다. 첸은 주니어 시절만 해도 점프에 비해 표현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엔 예술성도 좋아져 연기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정재은 심판은 "첸이 표현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올시즌 쇼트프로그램의 경우 자신에게 잘 어울리게 구성한 프로그램이란 평을 심판들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Nathan Chen, of the United States, performs during the men&#39;s free skate at Skate America, Saturday, Nov. 25, 2017, in Lake Placid, N.Y. (AP Photo/Julie Jacobson)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Nathan Chen, of the United States, performs during the men&#39;s free skate at Skate America, Saturday, Nov. 25, 2017, in Lake Placid, N.Y. (AP Photo/Julie Jacobson)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첸은 모의고사에서도 이미 하뉴를 두 번이나 이겼다. 지난해 4대륙 선수권에선 하뉴와 정면 승부를 펼쳐 총점 307.46점으로 303.71점을 받은 하뉴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엔 쇼트 2회, 프리 4회로 4회전 점프를 한 차례 줄였지만 승리했다. 당시 하뉴의 다음 차례로 등장한 첸은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고 완벽한 연기를 펼쳐 기립박수를 받았다. 첸은 올시즌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도 하뉴를 누르고 금메달을 따냈다. 하뉴가 빠진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도 당연히 첸의 차지였다.

예상 외의 복병도 있다. 바로 일본의 신예 우노 쇼마(21)다. 우노는 4대륙 선수권에서 첸과 하뉴에 이어 동메달을 따냈다. 이어 열린 세계선수권에선 319.31점을 받아 하뉴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키 1m58㎝의 단신이지만 곡해석 능력과 표현력은 탁월하다. 교도통신의 나카지마 다쿠미 기자는 "일본에선 하뉴 못잖게 우노에 대한 기대도 매우 크다. 하뉴의 부상 여파 때문에 우노의 금메달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2월 강릉에서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4대륙 선수권에 출전한 하뉴 유즈루-네이선 첸-우노 쇼마.

지난해 2월 강릉에서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4대륙 선수권에 출전한 하뉴 유즈루-네이선 첸-우노 쇼마.

하뉴와 함께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는 유럽 최강자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7·스페인), 소치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패트릭 챈(28·캐나다), 4회전 점프 경쟁의 서막을 연 지난해 세계선수권 3위 진보양(21·중국)도 메달 후보다. 한국은 차준환(17·휘문고)이 톱10 진입에 도전한다. 차준환은 발목 부상 여파로 지난달 4대륙선수권에 불참하며 올림픽 준비를 해왔다.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은 설날인 16일 오전 10시, 메달의 주인이 가려지는 프리스케이팅은 17일 같은 시간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