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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JERIReport

금융 패러다임 바꿀 자본시장통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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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자본시장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비반복적으로 거래를 하기 때문에 투자자 보호 또한 중요하다. 자본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규율 체계가 자본시장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기존 증권거래법상의 규율 체계, 즉 열거주의적 유가증권 개념, 위탁매매 위주의 증권사 업무, 획일적인 투자자보호제도로는 자본시장의 선진화를 기대할 수 없다. 단순한 법개정 차원을 넘어 자본시장 규율 패러다임의 혁신이 필요하다. 패러다임 변화의 3대 축은 창의력에 근거한 금융혁신 유도, 기업금융 중심의 한국형 투자은행 육성, 그리고 투자자 보호의 효율성 제고다. 자본시장통합법에는 패러다임 변화의 3대 축이 각각 금융투자상품의 포괄적 정의, 금융투자회사의 설립 허용, 투자자 보호의 강화로 반영돼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의 기대효과는 다양한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가장 큰 기대효과는 한국형 투자은행의 육성이다. 자본시장통합법상 금융투자회사가 바로 한국형 투자은행이다. 자본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본시장에서 중개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회사가 제대로 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자본시장에서 활동하는 대표적 금융회사는 증권사다. 한국 증권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증권사는 곧 위탁매매 전문사'라는 인식을 개혁해야 한다.

증권사는 기업.투자자.정부.지방자치단체 등 각 경제주체가 갖고 있는 금융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금융 해결사(financial solution provider)'다. 바로 한국형 투자은행인 금융투자회사가 지향해야 할 비즈니스 모델이다. 금융투자회사가 설립되면 비로소 자본시장 금융회사의 양대 축인 투자은행과 사모투자전문회사(private equity fund.PEF)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둘째, 자본시장 금융회사들이 금융투자회사로 통합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됨으로써 금융산업이 금융투자회사.은행.보험사의 3대 축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본시장 금융회사의 대형화 및 전문화가 촉진될 것이다. 자본시장 금융회사 간 인수합병(M&A)은 2단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1단계 M&A는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간에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 달성을 목표로 할 것이다. 자산운용사와 선물사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금융투자회사의 대형화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단계는 범위의 경제효과를 달성한 금융투자회사들 간에 본격적으로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를 달성하기 위한 대형화가 진행될 것이다. 국내 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궁극적으로 4~5개 정도의 금융투자회사 간 경합이 예상된다. 한국의 대형 증권사를 미국의 투자은행과 비교하면 자산 규모는 1% 미만, 자기자본 규모는 5% 미만이다.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인해 이전 증권사에 비해 규모가 확대된 대형 금융투자회사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형 금융투자회사의 등장으로 중소형 증권사, 중소형 자산운용사 및 선물사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규모의 경제 달성이 어려운 중소형 자산운용사는 주식.채권 외에 파생상품.부동산 등 새로운 운용자산에 특화할 필요가 있다. 선물사의 경우 다양한 실물파생상품에 특화의 여지가 있다.

셋째, 금융산업이 권역별로 시너지 효과를 보이며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현재 한국 금융시장에서는 위험을 전가하려는 주체에 비해 위험을 부담하고자 하는 주체가 지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금융시장에서 위험을 부담하고 헤지하는 데 전문화된 경제주체가 필요하다.

금융투자회사는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한국형 투자은행이다. 신바젤 협약으로 은행이 신용위험을 전가하려고 할 때 금융투자회사는 위험을 인수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금융지주회사 입장에서도 금융투자회사를 통해 균형적인 자회사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다양한 금융상품이 등장하면 위험을 헤지하거나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자산운용 대상이 확대된다. 따라서 금융투자회사의 경제적 효과는 증권.은행.보험 등 권역별 관점이 아닌 금융시장 전체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넷째, 파생상품 기초자산이 획기적으로 확대돼 파생상품시장이 급속히 성장할 것이다.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이 금융상품.실물자산의 차원을 넘어 경제변수 및 자연현상 등 인간이 상상 가능한 모든 대상으로 확대될 수 있다. 금융투자회사는 주식파생상품 외에 이자율 파생, 외환 파생, 신용 파생, 경제변수 및 자연현상 파생상품을 모두 다룰 수 있게 된다. 한국 시장의 특성을 고려할 때 변동성지수, 파산지수,

이산화탄소 배출권, 날씨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이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파생상품시장 중 특히 장외파생상품 분야는 매우 발전 가능성이 큰 분야다. 다른 나라에서 헤지할 수 없는 위험을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에서 헤지할 수 있으면 유동성이 집중될 것이고 금융허브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파생상품시장이 발전하면 다양한 파생상품이 내장된 구조설계증권이 개발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금융의 혁신도 촉진될 수 있다.

다섯째, 투자자 보호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상 투자자 보호 제도의 특성은 특히 일반 개인투자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된다는 점이다. 금융투자회사는 투자금융상품의 특성과 위험 요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의무가 부과된다. 적합성 원칙에 따라 투자자의 지식 정도, 위험부담 능력 등을 고려한 상품권유가 이뤄져야 한다. 금융투자회사가 다양한 업무를 취급하는 만큼 이해상충 관리 시스템 구축이 의무화되고 이해상충 내용도 공시해야 한다.

자본시장통합법은 단순한 법제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본시장을 규율하는 철학과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이다. 금융투자상품이 포괄적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실로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준비된 금융투자회사만이 자본시장통합법의 진정한 수혜자가 될 것이다.

김형태 한국증권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