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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아무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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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홍상지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홍상지 사회부 기자

홍상지 사회부 기자

‘왜 임신 중에도 힘들고 아플 수 있는 거 아무도 말 안 해줘ㅠㅠ.’ 임신 3개월차 ‘쇼쇼’는 억울했다. 요즘 쇼쇼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은 그동안 자신이 보고 들은 것과 너무 달랐다. ‘엄마가 열 달간 배 속에 아기를 품어 낳는 생명의 탄생은 숭고한 것’이라 배웠던 학창시절, 애인과 ‘결혼해서 애 넷은 낳자’며 막연히 미래를 약속했던 대학생 시절, 지인의 임신·출산 소식에 그저 ‘대단해’라고만 느꼈던 과거의 기억이 쇼쇼의 머리를 스쳤다.

최근 보기 시작한 웹툰 ‘아기낳는 만화’의 프롤로그 내용이다. 웹툰은 작가 자신이자 주인공인 쇼쇼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겪는 일상들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돼지가 돼서 교배 당하는 기분이었던 고된 인공수정 과정, 체감 스트레스 수치가 100까지 치솟았던 임신 이후의 감정 기복, 임신과 함께 찾아온 경력 단절 등 아무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은 현실을 전한 이 웹툰에 여성 독자들은 “미화가 아닌 진실을 듣고 싶었다”며 응원했다.

한 사람이 더 떠오른다. 검찰 내부통신망에 8년 전 본인이 겪은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다. 서 검사는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 내 알려지지 않은 성폭력 사건이 많지만 대부분 비밀리에 덮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성추행 사실을 문제 삼는 여검사에게는 ‘잘 나가는 검사의 발목을 잡는 꽃뱀’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성폭력 등 범죄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고 밝혔다. 자신은 그걸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면서.

쇼쇼 작가와 서 검사, 두 사람에게는 오랜 시간 감춰져 온 현실을 용기 내 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굳이 그 말을 꺼내 사회와 조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혐의(?)로 이들은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기 위해 서 검사는 15년간 몸담은 검찰 조직서 나갈 각오까지 했다. 들을 수 있었던 변명은 “몰랐다” 또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도가 고작이었다. 쇼쇼 작가도 연재 중간쯤 일부 비난 댓글을 의식한 듯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현재 태어난 제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같은 세상을 사는 한 사람이자 여성으로서 두 사람,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현실을 가린 벽에 돌을 던지고 있을 누군가에게 깊은 지지를 보낸다. 오늘도 난 그들로부터 ‘아무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알아간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꼭 알아야 하는 이야기 말이다.

홍상지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