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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합격도 아들과 함께한 만학도 엄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환갑을 눈앞에 둔 엄마로서 20대 아들과 같이 국가고시에 응시해 나란히 합격한 게 믿기지 않아요. 게다가 가업이나 마찬가지인 치과 의료 서비스 일에 온 가족이 동참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쁩니다.”

치위생사 최고령 패스 김향미씨 #장남 따라 원주 경동대 편입 #남편·딸·아들까지 모두 치과 가족

지난 25일 발표된 제45회 치과위생사 시험(국가고시)에 아들과 동시 합격한 김향미(59·경동대 치위생학과 4학년)씨의 합격 소감이다. 김씨는 이번 시험에서 치과위생사 시험 역대 최고령 합격이라는 영예까지 안았다.

34년 전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김씨는 지난 2016년 3월 경동대 치위생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다 군 복무를 마친 아들이 이 학교 같은 학과에 편입한 게 계기였다.

“서울 홍은동 집을 떠나 강원도 원주시에서 혼자 머물며 공부해야 하는 아들이 못내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아들과 같이 문막에 머물며 아들 공부 뒷바라지도 하면서 늘 하고 싶었던 치위생사 공부를 해보기로 작정했죠.”

아나파 치과에서 함께한 아들 오장원씨, 김향미씨, 남편 오갑용 원장(왼쪽부터). [전익진 기자]

아나파 치과에서 함께한 아들 오장원씨, 김향미씨, 남편 오갑용 원장(왼쪽부터). [전익진 기자]

1999년 간호조무사 시험에 합격한 뒤 17년 만에 다시 시험공부를 하는 건 결코 간단치 않았다. 하지만 잘 모르는 것은 아들에게 묻고, 수업시간엔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경기도 고양에서 치과 의원을 경영하는 남편(오갑용·59·아나파 치과 의원 원장)도 2년간 ‘기러기 부부’의 고충을 감내해줬다.

외국에서 10년 가까이 공부하다 온 아들의 국내 대학 생활 적응을 돕는 ‘카운셀러 역할’도 자신의 몫이 었다. 김씨는 “만학의 대학생 생활과 국가고시 도전에는 치과의사인 남편과 2012년 치과위생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현재 충남 천안의 치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딸(오미애·32)의 응원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0년부터 8년째 남편의 치과 의원 부원장으로 있으면서 현재 의원 살림을 맡아보고 있다. 그는 “이제는 보다 전문적으로 치과 환자들을 상담하고 간호 서비스를 해 줄 수 있게 돼 보람이 크다”고 했다. 21년째 고양시에서 치과 의원을 운영 중인 남편 오갑용씨는 “가족이 함께 치과 의원에서 진료하게 되면 보다 안정적으로 환자들을 보살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결혼 등으로 퇴사가 잦은 치위생사 자리를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는 아내가 지켜주게 됐으니 환자 진료 서비스가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들 오장원(27)씨는 “만학의 어머니가 같은 학과 동급생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누가 공부하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치과 관련 박사 학위까지 취득해 강단에서 치과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학문을 가르치고 싶은 게 포부”라고 말했다.

최은미 경동대 치위생학부장은 “김씨는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을 오늘에 실천한 어머니”라며 “게다가 늦은 나이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자식뻘인 20대 치위생학부생 640명에게도 신선한 자극제가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앞으로 손쉽게 모일 수 있는 가족이 뭉쳐 장애인 시설 등으로 치과 의료 봉사활동도 자주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양=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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