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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캡틴, 보고 있나’ 사인 만들어낸 4년 전 ‘캡틴’의 한 마디

중앙일보

입력

“야, 이걸로는 안 돼. 적어도 그랜드 슬램 8강은 가야지.”

정현이 2018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후, 중계 카메라 렌즈에 자신의 사인 대신 '캡틴, 보고 있나?'라고 적고 있다. [사진 JTBC3 FOX Sports 캡처]

정현이 2018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후, 중계 카메라 렌즈에 자신의 사인 대신 '캡틴, 보고 있나?'라고 적고 있다. [사진 JTBC3 FOX Sports 캡처]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4강 진출로 테니스의 새 역사를 쓴 정현(29위·한국체대)의 ‘캡틴, 보고 있나?’ 메시지는 정현의 ‘캡틴’ 김일순(49) 전 삼성증권 감독의 이 한 마디에서 시작됐다.

정현은 호주오픈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13위·세르비아)를 꺾은 뒤 TV 중계 카메라에 ‘캡틴, 보고 있나’라는 메시지를 적어 관심을 모았다. 정현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삼성증권 시절 김일순 감독님과 약속했다”고 설명했었다.

정현이 2018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후, 중계 카메라 렌즈에 자신의 사인 대신 한국팬들을 위해 '보고 있나?'라고 적고 있다. [사진 JTBC3 FOX Sports 캡처]

정현이 2018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후, 중계 카메라 렌즈에 자신의 사인 대신 한국팬들을 위해 '보고 있나?'라고 적고 있다. [사진 JTBC3 FOX Sports 캡처]

메시지의 주인공인 김 전 감독은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게 사실 사연이 있다”며 뒷이야기를 소개했다.

김 전 감독은 2014년 팀 해체 이야기가 나올 당시 고3인 정현에게 “우리가 잘하면 (우리 팀이 해체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감독은 “현이가 그 이야기를 실제로 믿고 열심히 했다”고 회상했다.

마침 그해 챌린저 대회에서 우승한 정현이 김 전 감독에게 “이 정도 하면 되나요”라고 물어왔고, 김 전 감독은 “야, 이걸로는 안 돼. 적어도 그랜드 슬램 8강은 가야지”라고 맞받았다. 사실 대충 둘러댄 말이었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8강에 오른 정현이 카메라에 남긴 메시지는 김 전 감독에게 마치 ‘보셨죠. 이제 진짜 8강에 갔어요’라고 말한 듯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정현이 2018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후, 중계 카메라 렌즈에 자신의 사인 대신 한국팬들을 위해 '보고 있나?'라고 적고 있다. [사진 JTBC3 FOX Sports 캡처]

정현이 2018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후, 중계 카메라 렌즈에 자신의 사인 대신 한국팬들을 위해 '보고 있나?'라고 적고 있다. [사진 JTBC3 FOX Sports 캡처]

김 전 감독은 “그 이후에는 현이도 팀 해체를 받아들이고 사실을 다 알았지만, 처음에는 좋은 성적을 내면 다시 모일 수 있다고 믿었다”면서 “그래도 저희가 그걸 무슨 굉장히 ‘신파조’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물론 처음에는 다음 진로가 정해지지 않아서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지만 서로 신뢰가 있었고, 다들 흩어졌어도 각자 위치에서 잘하고 있기 때문에 팀 해체에 대해서 그렇게 오래 담아두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 감독은 정현의 캡틴 메시지에 “그냥 웃고 말았다”고 했다. 하지만 “조코비치와 3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5-3을 만들면서 환호를 내지를 때는 사실 감동이 밀려와서 울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정현을 처음 만난 것은 정현이 중3 때인 2011년이었다. 김 전 감독은 “가르치는 것을 워낙 빨리 받아들이고 변화 속도도 남달랐다”며 “어릴 때도 공을 치는 임팩트가 좋았고 영리한 경기 운영도 돋보이는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다만 “키가 170㎝ 정도라 작았는데 고1, 고2 그사이에 15㎝가 훌쩍 크면서 185㎝를 넘었다”며 “스텝이나 스윙 쪽이 그렇게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정신력이 좋은 선수라 뭔가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부분이 뛰어난 선수”라고 덧붙였다.

정현이 이번 대회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와 준결승에서 발바닥 물집 때문에 기권한 것에 대해 김 전 감독은 “그게 사실 이번 대회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현은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남자단식 결승전에도 발바닥 물집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김 전 감독은 “현이가 공을 보는 눈이 빠르고 센스가 좋기 때문에 느리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공을 보는 눈에 비해 스텝이 따라주지 못해서 다리를 끄는 경우가 잦아 무리가 간다”고 분석했다.

이어 “당장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라며 “우선 관리를 잘 해줘야 하고, 스텝도 더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전 감독은 1980~90년대 한국 여자테니스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주니어 세계 랭킹 3위까지 올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당시 세계 랭킹 6위 헬레나 수코바(체코)를 물리치고 16강에 진출했었다. 1986년과 1990년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5개를 획득했다.

현재 경기도 시흥 Han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팀장을 맡아 유소년을 지도하고 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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