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 당한 야생오리…AI 아닌 ‘치사량 45배’ 농약 때문

중앙일보

입력 2018.01.30 12:00

업데이트 2018.01.30 17:32

지난 21일 충남 아산시 삽교천 방조제에서 집단폐사한 야생오리가 바위 위에 있다.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지난 21일 충남 아산시 삽교천 방조제에서 집단폐사한 야생오리가 바위 위에 있다.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지난 21일 충남 아산시 삽교천 방조제. 수문 주변에 수십 마리의 야생오리들이 죽은 채로 물 위에 둥둥 떠 있었고, 왜가리 한 마리도 긴 목을 늘어뜨린 채 죽어 있었다. 주변 바위 위에는 누군가가 뿌려놓은 듯한 볍씨들이 널려 있었다. 야생생물관리협회 아산지회 김영복 단장은 “처음에는 AI(조류인플루엔자)가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바위 위에 독극물을 섞은 것으로 보이는 볍씨들이 뿌려져 있는 걸로 봐서 누군가 야생오리를 죽이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립환경과학원이 현장에서 수거한 22마리의 사체를 분석해보니, 농약 성분인 벤퓨라캅과 카보퓨란이 검출됐다. 치사량의 45배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양이었다.

지난 21일 충남 아산시 삽교천 방조제에서 집단폐사한 야생오리 인근에 농약이 섞인 볍씨가 뿌려져 있다.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지난 21일 충남 아산시 삽교천 방조제에서 집단폐사한 야생오리 인근에 농약이 섞인 볍씨가 뿌려져 있다.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최근 1년간 발생한 야생조류 집단폐사 사건의 원인이 대부분 AI가 아닌 농약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야생조류 집단폐사 사건 중 32건(633마리)을 분석한 결과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32건 중 87.5%인 28건(566마리)에서 살충제 등에 사용되는 농약 성분 14종이 검출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이 1년에 걸친 야생조류 폐사 사건의 원인을 분석해 정보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머지 4건(67마리)에서는 농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아 명확한 폐사 원인은 드러나지 않았는데, 질병이나 사고사 등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1일 충남 아산시 삽교천 방조제에서 집단폐사한 야생오리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지난 21일 충남 아산시 삽교천 방조제에서 집단폐사한 야생오리를 수거하고 있다.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1~3월에 야생조류 폐사 집중
지난해 3월 경북 안동시에서 발생한 직박구리 집단폐사.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지난해 3월 경북 안동시에서 발생한 직박구리 집단폐사. [사진 국립환경과학원]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해 전국에서 총 1215건(1971마리)의 야생조류 폐사 신고를 받았으며, 이 중 같은 지점에서 2마리 이상이 죽은 집단폐사 건수는 149건(910마리)으로 나타났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모든 폐사 사건에 대해 AI 바이러스 유무를 검사하고 있으며, 이 중 32건의 집단폐사 사건에 대해 농약 성분 유무를 추가로 분석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죽은 야생조류 1971마리 중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건 27마리로 1.37%를 차지했다.

특히, 겨울 철새가 한국에 주로 서식하는 1월부터 3월 사이에 전체 폐사 건수의 절반 이상인 1037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3월 경남 창원시에서는 직박구리 119마리가 죽었고, 위의 내용물 및 간에서 포스파미돈 등의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지난 17일 경주시에서 발생한 떼까마귀 집단폐사의 사체(86마리)에서도 살충제에 주로 쓰이는 펜치온이 검출됐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안병덕 재활관리사는 “지난해 2월 충남 청양군에서도 가창오리가 농약으로 인해 집단 폐사했는데, 가창오리 사체를 먹은 독수리까지 농약 중독으로 죽는 2차 피해까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월별 야생조류 폐사현황 [단위: 마리, 국립환경과학원]

월별 야생조류 폐사현황 [단위: 마리, 국립환경과학원]

정원화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장은 “야생조류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AI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야생조류를 쫓거나 죽이려고 누군가가 볍씨에 농약을 묻혀 뿌린 것으로 추정된다”며 “고의로 야생조류를 죽이기 위해 농약이 묻은 볍씨 등을 살포하는 것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불법 행위”라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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