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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밀양 참사 피해 키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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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 사망자가 29일 현재 39명으로 늘었다. 화재 발생 이후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 작업이 진행 중인데 현장 조사를 통해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단히 안타까운 사실은 현행법만 제대로 지켰더라도 인명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법이 정한 기본 의무를 지키지 않아 피해를 키웠으니 이번 화재도 인재(人災) 측면이 강해 보인다.

밀양 화재 사망자 대부분 질식사가 원인 #법만 제대로 지켰어도 피해 줄였을 텐데

대표적인 사례가 방화문이다. 현재까지 세종병원 화재 사망자 39명 중 34명은 연기로 인한 질식사로 추정되고 있다. 화재 때 건축 내장재와 외장재가 내뿜는 유독가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건축법상 방화문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세종병원의 경우 1층 발화 지점에서 나온 유독가스를 차단할 방화문이 1층에는 없었고, 2층 방화문은 열려 있어 역할을 못했다. 이 때문에 유독가스가 중앙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 2층에서만 18명이 숨졌다.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시 화재 때도 1층 비상계단 쪽 방화문이 고임목으로 고정된 채 열려 있었고, 이를 통해 유독가스가 2층으로 몰려갔다. 2층 여탕에서만 20명이 숨졌다.

밀양 화재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7일 발생한 대구 신라병원 화재 때 환자 35명을 포함해 46명 전원이 무사했던 것도 방화문을 닫아둔 것이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세종병원은 의료법이 정한 의사·간호사의 최소 인력 기준도 지키지 않았다. 현행법에는 연평균 하루 환자(입원·외래 포함) 20명당 의사 1명, 입원환자 2.5명당 간호사 1명을 둬야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세종병원에는 의사 6명, 간호사 35명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의사 2명(비상근 1명 제외)과 간호사 6명에 불과했다. 화재 당시에는 의사 1명, 간호사 1명과 간호조무사 8명이 근무했다. 법적 기준보다 숫자가 적다 보니 화재 상황에서 환자를 대피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여기에다 세종병원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한 70세 이상 고령자와 중증 질환자가 대부분이었고, 일부 치매 환자 등은 한 손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관 정전 대비 표준 매뉴얼’에 따르면 병원급 의료기관은 정전이 발생하면 비상발전기를 가동해 8초~2분 이내에 전기공급을 해야 한다. 경찰은 세종병원 화재 직후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던 환자 일부가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심지어 8명이 숨진 세종병원 3층의 경우 비상구가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중앙수술실 안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밀양시청은 세종병원과 요양원·장례식장 등 3개 건물에서 12건의 불법 증축 행위를 적발해 2011년부터 23차례 원상복구 명령과 시정명령을 했지만 병원 측은 이행강제금만 냈다. 밀양 참사는 재난 예방과 피해 최소화를 위해 기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이제라도 법이 정한 기본적인 안전수칙도 지키지 않아 참사를 키운 경우 철저하게 책임을 규명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