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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하면 “싸라있네” 듬직한 아들 성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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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사상 첫 썰매 종목 금메달을 꿈꾸는 윤성빈(사진 왼쪽)에게, 어머니 조영희 씨의 응원은 큰 힘이 된다. [사진 P&G]

사상 첫 썰매 종목 금메달을 꿈꾸는 윤성빈(사진 왼쪽)에게, 어머니 조영희 씨의 응원은 큰 힘이 된다. [사진 P&G]

2012년 11월,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의 올림픽 파크의 얼음 슬라이딩 트랙. 스켈레톤 썰매에 엎드린 채 1335m를 처음 미끄러져 내려온 고교 3학년 남학생은 눈물을 흘렸다. 난생 처음 온몸으로 경험한 ‘공포의 질주’에 어쩔 줄 몰랐다. 남학생은 라커룸 화장실로 들어가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새벽(한국시각)에 울린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깬 어머니는 힘든 내색 한번 안 하던 아들의 목소리에 놀랐다. 하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어머니는 “한 번만 더 생각해보고,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라. 네 결정을 엄마는 존중한다”며 아들을 다독였다. 엄마 말에 마음을 다잡은 아들은 다시 썰매에 올라탔다. 한국 스켈레톤의 전설은 그렇게 태어났다.

어머니 조영희씨가 본 ‘아이언맨’ #경남 남해 바닷가 마을서 태어나 #초등생 땐 축구·육상 선수로 뛰어 #고3 때 첫 스켈레톤 공포의 질주 #라커룸 화장실서 전화로 “엄마 …” #세계 1위 올랐지만 만족 안 할 아들 #다치지 않고 평창 꿈 이루길 기도

아이언맨 문양의 헬멧을 쓴 윤성빈. [중앙포토]

아이언맨 문양의 헬멧을 쓴 윤성빈. [중앙포토]

개막을 열흘 앞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의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선수는 스켈레톤 남자 세계 1위 윤성빈(24·강원도청)이다. 평범한 고교생에서 6년 만에 스켈레톤 세계 최정상에 오른 그는 평창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묵묵히 지켜보고 그를 뒷바라지해온 어머니 조영희(45) 씨도 두손 모아 그 순간을 기다린다. 26일 만난 조 씨는 “세계 1위에 처음 올랐던 가슴 벅찼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하나로 만족할 성빈이가 아니란 걸 잘 안다. 다치지 않고 후회 없이 올림픽을 잘 마칠 거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 바닷가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스켈레톤 세계 1위가 됐다. 조 씨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가는 아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년 시절의 윤성빈. [사진 올댓스포츠]

경남 남해 바닷가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스켈레톤 세계 1위가 됐다. 조 씨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가는 아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년 시절의 윤성빈. [사진 올댓스포츠]

윤성빈은 여느 어린아이들처럼 어릴 때 뛰노는 것을 좋아했다. 경남 남해군 이동면 고향 집 근처 바닷가에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모래밭 위에서 마음껏 뛰놀던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운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조영희 씨는 “아이가 축구를 좋아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즈음엔 박지성을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학교에 축구부는 없었지만, 축구에 소질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남해군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땐 육상 단거리·높이뛰기 종목 남해군 대표로 도민체전에 나가 1등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선 배드민턴부원으로 뛰었다. 조 씨는 “아빠는 배구, 엄마는 탁구를 했던 경험이 있어선지, 성빈이가 운동에 꽤 소질을 보였다. 무슨 대회든 나가면 1등을 도맡아 했다. 다른 학교 축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운동을 시키기엔 주변 환경이 어려웠고, 장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남 남해 바닷가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스켈레톤 세계 1위가 됐다. 조 씨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가는 아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년 시절의 윤성빈. [사진 올댓스포츠]

경남 남해 바닷가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스켈레톤 세계 1위가 됐다. 조 씨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가는 아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년 시절의 윤성빈. [사진 올댓스포츠]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온 윤성빈은 갑자기 바뀐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잠시 방황했다. 그때 윤성빈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은 건 운동이었다. 조영희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성빈이가 체육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체대 진학을 위해 전 단계로 체육고에 원서를 넣었지만, 실기에서 떨어졌다. 성빈이는 절망하는 대신 그때부터 운동으로 뭔가 하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말했다. 또 “서울에 올라와 가장 자신 있는 게 운동이라고 했다. 운동 덕분에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고, 밝게 자랐다”고 덧붙였다. 일반고인 서울 신림고에 진학해 농구 서클에서 활동했던 윤성빈은 대학 진학을 앞둔 고교 3학년 때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이 학교 체육 교사였던 김영태 서울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이사의 눈에 들었다. 당시 선수가 필요했던 스켈레톤에서 윤성빈에게 입문을 제안했다. 키는 1m80㎝도 안됐지만(1m78㎝), 농구 림에 손이 닿는 탄력과 좋은 스피드가 김 교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경남 남해 바닷가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스켈레톤 세계 1위가 됐다. 조 씨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가는 아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년 시절의 윤성빈. [사진 올댓스포츠]

경남 남해 바닷가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스켈레톤 세계 1위가 됐다. 조 씨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가는 아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년 시절의 윤성빈. [사진 올댓스포츠]

조영희 씨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스켈레톤’이란 걸 아들이 한다는 말에 반대부터 했다. 조 씨는 “처음에 아들이 ‘엄마, 스켈레톤 알아? 헬멧 쓰고 트랙 내려오는 거래’라고 했다. 체대가 목표고, 선생님이 추천했다지만, 처음엔 ‘왜 저런 걸 시켜야 할까’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위험해 보였다. 그래도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걸 한다면 의미가 더 클 거’라는 선생님 말씀에 아들을 믿어봤다”고 말했다. 처음 접한 스포츠였지만 윤성빈은 꿋꿋하게 도전했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조 씨는 “성빈이가 스켈레톤 시작 1년 반 만에 소치 겨울올림픽에 나갔다. 16등도 잘한 건데, 성빈이는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이라면 늘 1등을 해와서 더 그랬다”며 “그게 오늘날 윤성빈을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경남 남해 바닷가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스켈레톤 세계 1위가 됐다. 조 씨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가는 아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년 시절의 윤성빈. [사진 올댓스포츠]

경남 남해 바닷가의 아이는 어느새 자라 스켈레톤 세계 1위가 됐다. 조 씨도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가는 아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년 시절의 윤성빈. [사진 올댓스포츠]

조영희씨는 “성빈이는 스스로 노력해 여기까지 왔다. 내 자식이기 이전에 국가를 대표한다. 힘든 거 참고 여기까지 온 성빈이를 보면 엄마인 나도 많이 배운다. 어른스러운 성빈이를 통해 내가 어른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훈련과 대회 출전 때문에 해외에 많이 머무는 윤성빈은 “사랑한다”는 어머니 말에, “싸라있네(살아있네)”라고 대답하는 ‘경상도 사나이’다.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는 아들과 도전을 묵묵히 응원한 어머니 조씨의 사연은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이자 올림픽 월드와이드 파트너 P&G의 ‘땡큐맘(Thank you Mom)’ 캠페인에 선정됐다.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이 올 시즌 7차 월드컵에서 따낸 금메달을 들어보이는 어머니 조영희 씨. 생소한 종목에 도전하는 아들과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응원하는 어머니의 사연은 P&G의 떙큐맘(Thank you Mom) 캠페인에 선정됐다. 김지한 기자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이 올 시즌 7차 월드컵에서 따낸 금메달을 들어보이는 어머니 조영희 씨. 생소한 종목에 도전하는 아들과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응원하는 어머니의 사연은 P&G의 떙큐맘(Thank you Mom) 캠페인에 선정됐다. 김지한 기자

조영희 씨는 올림픽 기간 윤성빈의 네 살 아래 동생인 딸(윤지희)과 함께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를 찾을 예정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조씨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응원한다. “다치지 않고 네 꿈 이뤘으면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남들에게 모범이 되는 바른 자세를 갖춘 선수의 모습 보여주면 좋겠어.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응원할게.”

어머니 조영희 씨(왼쪽)와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사진 P&G]

어머니 조영희 씨(왼쪽)와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사진 P&G]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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