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에서]정부와 시장, 그 건널 수 없는 인식의 간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기업 친화적인 분입니다."

김동연 부총리, 29일 대한상의서 기업인 대상 조찬 강의 #강의 끝무렵 "문재인 대통령, 기업친화적인 분" 강조 #기업들은 "정부 '반기업정책'으로 힘들어" 푸념 #김 부총리, 현장 방문 통해 정부와 시장 간극 줄일 수 있길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인 초청 조찬 강연의 끝을 맺으며 이렇게 말했다. '혁신, 경제성장의 힘'이란 주제의 강의였다. 과거 세계를 제패한 강대국의 공통점은 혁신에 있었고, 정부는 과학기술과 산업·사람·사회제도라는 네 가지 분야에서 혁신을 이룰 것이라는 게 요지였다. 위의 언급은 그 과정에서 정부가 혁신 성장의 큰 축인 기업의 목소리를 열심히 듣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요즘 만나는 기업인 열에 아홉은 "현 정부의 '반기업정책' 탓에 힘들다"고 말한다. 대통령은 기업 친화적이라는 데 기업에선 푸념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인식의 간극은 어디서 출발하는 것일까.

지금껏 정부가 추진한 정책에 그 답이 있다. 정부 출범 초기 가계 통신비 인하에서부터 16%대 최저임금 인상률 적용, 비정규직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자고 일어나면 무섭게 등장하는 대부분의 정부 정책들은 하나같이 기업의 부담을 전제로 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장 관람석을 채우는 일까지 기업이 없으면 안 된다.

이에 반해 정부가 기업 활동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정책은 무엇이 있었을까. 지난 22일 문 대통령은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혁명적 접근"을 주문했다.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면 일단 허용한 뒤 문제가 생겼을 때만 규제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도 강조했다. 그러나 일선 기업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인은 "지난 정부에서도 추진했다가 성과 없이 끝난 얘기를 다시 듣고 있는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강의 도중 과학기술 혁신을 강조하며 "한국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먹거리가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그 사례로 세계시장 점유율 70%를 넘어선 중국의 드론 제작사 DJI를 들었다. 그는 최근 직접 현대자동차의 수소차와 전기차 시승 현장을 찾았던 경험도 소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한국의 드론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원인으로 밀집 지역에서 드론 비행을 금지한 정부의 항공법 규제를 지적한 것은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불과 지난해 말 예산 심사에서 수소차 복합충전소를 늘리는 데 필요한 예산을 '대기업 특혜'란 이유로 전액 삭감한 것도 정부가 아니었던가.

김 부총리가 '사람 혁신'을 강조하며 한국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세태를 비판한 것은 압권이었다. 그는 강의 슬라이드에 한국 신림동 고시촌과 중국 청년 창업자 카페촌을 비교한 사진을 띄웠다. 한국은 대학 졸업자 40%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만, 중국은 대졸자 절반이 창업을 준비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늘리겠다는 공공 일자리 수(81만개)는 4차 산업혁명 지원으로 늘리겠다는 일자리(26만개)보다 3배 이상 많다. 공무원 채용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한국에선 노량진 학원가만 대호황이다. 김 부총리가 비판한 이 사태는 누가 부추긴 것인가.

김 부총리는 지금껏 기업·소상공인 현장을 총 24번 찾았다. 현장 방문 횟수만큼 중요한 것은 현장을 정확히 인식하고 정책을 펴는 일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기업 친화적이라고 강조해도 현장은 화답하지 않는다. 정부와 시장 간 인식 차이를 좁히려면 결국 정책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김도년

김도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