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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평야…전세계 두루미 30% 찾는 '철새 낙원'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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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두루미는 이제 한 가족 같아요. 밤에 우는 소리만 들어도 ‘얘가 어디가 불편하구나!’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죠.”
지난 25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DMZ두루미평화타운. 자연환경해설사인 김일남(57·여) 씨는 두루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막힘 없이 설명을 풀어갔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두루미 탐조 프로그램의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올해로 33년째 철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이기도 하다.

김 씨의 안내를 받아 본격적인 두루미 탐조에 나섰다. 버스를 타고 들어간 곳은 민통선(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구역) 안에 있는 철원 평야. 주민들도 낮에만 허가를 받고 들어가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창밖으로 추수를 끝낸 논이 넓게 펼쳐진 가운데, 그 위에 우아하게 서 있는 두루미 3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두루미들은 논을 덮고 있는 눈 속을 콕콕 찔러가며 볍씨를 찾아 먹고 있었다. 옆에선 한 쌍의 두루미가 우아하게 날갯짓을 하며 날고 있었다.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두루미마다 매년 찾아와서 머무는 논이 있어요. 우리 논에도 겨울마다 오는 두루미가 있는데 논 이름을 따서 ‘소라니’라고 불러요.”

김 씨는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두루미는 사람과 참 많이 닮아 있는 새”라며 “보통 북쪽에서 두 개의 알을 낳는데 천적한테 잡아먹히거나 남쪽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낙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네 마리의 두루미 가족을 보면 ‘참 잘 키워서 데려왔구나’라는 뿌듯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두루미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일남씨. 김 씨는 항상 마이크와 작은 스피커 가방을 들고 있다. 철원=천권필 기자.

두루미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일남씨. 김 씨는 항상 마이크와 작은 스피커 가방을 들고 있다. 철원=천권필 기자.

지구상에 3000마리 남은 희귀 철새

군사분계선을 넘어 이동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군사분계선을 넘어 이동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두루미는 천연기념물 제202호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희귀 겨울 철새다. 한국에 서식하는 조류 중에 가장 키가 큰 새이기도 하다. 주로 러시아나 중국 북부 지역에서 살면서 번식하고,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겨울을 보낸다. 현재 전 세계에 2800~3300여 마리만이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철원 한탄강 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사진 환경부]

강원도 철원 한탄강 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두루미와 재두루미. [사진 환경부]

철원 평야는 세계 최대의 두루미 월동지역이다. 임진강과 한탄강 일대에 150㎢ 규모의 넓은 평야 지대를 갖추고 있는 데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여울 등이 어우러져서 철새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도 철원 동송읍 이길리에 있는 탐조대에서는 한탄강변에 앉아 다른 철새들과 어울려 쉬고 있는 두루미 떼를 볼 수 있었다. 한쪽에선 사진작가 등 십여 명이 나란히 앉아 두루미들을 관찰하면서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김 씨는 “두루미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외지인들이 가깝게 접근하지 못하게 통제하는 것도 우리 농민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했다.

올겨울 가장 많은 두루미 찾아와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두루미. [사진 환경부]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두루미. [사진 환경부]

환경부에 따르면, 올겨울에는 930마리의 두루미가 철원평야를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 세계 야생 두루미의 30%가량이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셈이다. 1999년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은 수다.
철원 평야를 찾는 전체 철새 수도 2015년 1만 864마리에서 올해 3만 9898마리로 늘었다. 국립생물자원관 박진영 연구관은 “두루미는 한국의 하천이나 습지, 논 생태계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환경들이 건강하게 지켜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결국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과 맞닿아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철원평야를 찾는 두루미의 수가 해마다 증가한 데는 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한 주민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주민들은 2002년부터 농사를 마친 뒤에 볏짚을 거둬가지 않고 논에 그대로 놔둬 두루미가 먹을 수 있도록 했다. 3년 전부터는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가둬 두루미에게 우렁이 등의 먹이를 제공하기도 했다. 정부는 대신 이렇게 두루미 보호 활동에 참여한 농가에 생물다양성관리계약사업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해주고 있다.

두루미와 상생하는 길을 찾다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지역 주민들은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두루미를 탐조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생태관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두루미의 가치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초 2016년 말부터 두루미 탐조 프로그램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당시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하면서 1년 동안 동송읍 DMZ두루미평화타운의 문을 닫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두루미 보호를 이유로 규제만 더 늘어나는 게 아니냐며 반대하는 주민도 있었다.
이 같은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두루미 탐조 이용료로 1만 5000원을 내면 그중 1만 원을 철원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으로 돌려주는 식으로 지역민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최종수 철원두루미협의체 사무국장은 “이제 주민들도 생태관광을 통해 두루미와 상생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강원도 철원 평야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천연기념물 두루미. [사진 환경부]

환경부도 철원 DMZ 철새도래지를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정종선 환경부 자연보전정책관은 “철원평야에 많은 철새가 찾는 것은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보호 활동 때문”이라며 “주민들의 철새 보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이런 활동이 지역주민의 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생태관광 활성화에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철원=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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