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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보물 발견한 기쁨 준 꽃의 도시 '스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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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채일의 캠핑카로 떠나는 유럽여행(16) 

캠핑카 여행도 이제 종착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닷새 후 로마에서 차를 반납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스펠로’. 로마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꽃축제로 유명한 고대도시이다.

집 마다 예쁜 화분들로 장식 #골목엔 로마 유적이 그대로

마을 입구에 동판으로 만든 스펠로 마을 안내도. 안내 표지판도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제작하는 모습에서 이탈리아 문화산업의 깊이를 볼 수 있었다. [사진 장채일]

마을 입구에 동판으로 만든 스펠로 마을 안내도. 안내 표지판도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제작하는 모습에서 이탈리아 문화산업의 깊이를 볼 수 있었다. [사진 장채일]

스펠로 마을 입구에 세워진 게이트. [사진 장채일]

스펠로 마을 입구에 세워진 게이트. [사진 장채일]

스펠로의 첫인상은 마을 전체가 온통 흙갈색 망토를 뒤집어쓴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다. 기원전 1세기경 로마의 식민지로 건설된 2000년도 더 된 오랜 마을이다. 이곳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직접 생활하며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영화처럼 분위기가 확 바뀐다.

집마다 예쁜 화분들로 장식하고 창문에는 하얀 레이스 커튼이 걸려있어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알고 보니 이 화분들은 매년 6월에 열리는 꽃 축제인 ‘인피오라떼’ 때 꽃장식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매년 6월엔 꽃 마을로 변신

이 기간에는 마을 전체가 꽃으로 뒤덮이고, 마을의 주요 통로에는 환상적인 꽃 카펫이 깔린다고 하는데 세계 각국의 수많은 여행객이 이 축제를 보기 위해 모여든다고 한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이런 길들이 이어진다. [사진 장채일]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이런 길들이 이어진다. [사진 장채일]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장식된 화분들. [사진 장채일]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장식된 화분들. [사진 장채일]

세상에! 이 오래된 고대 마을에서 꽃 축제라니!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이 들고 주름진 노인의 얼굴처럼 낡고 빛바랜 마을에 젊음과 활력을 주는 데 꽃보다 더 좋은 게 무엇이겠는가? 그 기발하고 창의적인 생각과 실천이 놀랍다.

그것도 하루아침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 200년도 더 된 행사라는 게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축제 시기가 지나서 그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상점에서는 이 지역에서 나는 꿀과 허브차 등을 팔고 있었다. [사진 장채일]

상점에서는 이 지역에서 나는 꿀과 허브차 등을 팔고 있었다. [사진 장채일]

마을 안 길이 예쁘고 정겹다. [사진 장채일]

마을 안 길이 예쁘고 정겹다. [사진 장채일]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손 한 뼘 넓이의 공간도 낭비됨이 없이 알뜰하게 활용된 멋진 골목길이 나타난다. 어떻게 오랜 옛날에 이렇게 멋지고 세련된 도시 계획을 할 수 있었을까?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도시는 요즘의 신도시처럼 로마가 의도된 목적을 가지고 건설했던 계획도시가 아니던가? 비록 오래된 옛날이지만 도시건설에 필요한 당시 최고의 기술과 지식이 모두 동원되었을 것이다. 자투리 공간 하나에도 그 쓰임새를 놓고 고민했을 옛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작은 마당이 있는 집. [사진 장채일]

작은 마당이 있는 집. [사진 장채일]

아기자기한 골목길. 지금 시대와 비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진 장채일]

아기자기한 골목길. 지금 시대와 비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진 장채일]

많은 사람이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려면 공동 수도와 화장실, 목욕탕 등 공공 위생시설이 필요했을 텐데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되었을까? 로마나 나폴리와 폼페이 등에서 거대한 수로와 수세식 화장실, 공동 사우나의 오래된 유적들을 보고 지금 시대와 다를 바 없음에 감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2000년 된 상수원 수로

실제 스펠로에서도 멀리 떨어진 상수원에서 이곳까지 깨끗한 물을 공급했던 수로가 유적으로 남아 있다고 하니 이들 또한 그 시대의 높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았으리라.

도로 설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골목길에는 어김없이 길 가운데는 계단이, 양 가장자리에는 수레바퀴가 통행할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또한 골목길 군데군데에는 마을 사람들이 잠시 쉬면서 담소할 수 있도록 작은 광장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이 길을 걸으면서 200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고대 로마 시대 사람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경사로의 한 가운데는 계단이, 양 가장자리는 수레가 지날 수 있도록 경사로가 있다. [사진 장채일]

경사로의 한 가운데는 계단이, 양 가장자리는 수레가 지날 수 있도록 경사로가 있다. [사진 장채일]

골목길 안에는 이러한 작은 광장이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다. [사진 장채일]

골목길 안에는 이러한 작은 광장이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다. [사진 장채일]

골목 안에 공예품 공방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부조품들을 석고모형으로 정교하게 뜬 후 색을 입히고 있었다. 작업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작업과정을 촬영했다.

비록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져 작업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모형 틀로 플라스틱 성형물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값싼 중국산 모조품에서는 볼 수 없는 섬세한 아름다움과 품위가 있었다.

골목 안에서 만난 작은 공예품 공방. 석고로 부조품의 모형을 정교하게 뜨고 있었다. [사진 장채일]

골목 안에서 만난 작은 공예품 공방. 석고로 부조품의 모형을 정교하게 뜨고 있었다. [사진 장채일]

석고 모형 위에 채색한 성화. 진품 옷지 않은 기품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사진 장채일]

석고 모형 위에 채색한 성화. 진품 옷지 않은 기품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사진 장채일]

공예품 상점에 들렀다. 조금 전 공예품 공방에서 보았던 프레스코 부조 공예품들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세련된 금속공예, 유리공예, 도자공예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공예품 상점. 품위 있고 정교한 유리, 금속, 도자 공예품들이 즐비하다. [사진 장채일]

공예품 상점. 품위 있고 정교한 유리, 금속, 도자 공예품들이 즐비하다. [사진 장채일]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공예품들이 진열장에 가득 전시되어 있다. [사진 장채일]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공예품들이 진열장에 가득 전시되어 있다. [사진 장채일]

화사한 꽃이 멋진 이탈리아의 화병. [사진 장채일]

화사한 꽃이 멋진 이탈리아의 화병. [사진 장채일]

마을 전체를 구석구석 둘러본 후 지친 다리도 쉬게 할 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에스프레소의 쌉쌀한 맛과 진한 커피 향에 피로감이 싹 가신다.

꽃의 도시라는 이름에 마음에 끌려 왔지만 큰 기대를 품지 않고 찾아 왔던 ‘스펠로’'. 여행에서 보물을 발견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여행이 끝난 지금도 스펠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하다.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마신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의 쌉쌀한 맛과 진한 커피 향에 피로감이 싹 가셨다. [사진 장채일]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마신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의 쌉쌀한 맛과 진한 커피 향에 피로감이 싹 가셨다. [사진 장채일]

여행은 어차피 떠나는 것이 아니던가? 이제 우리는 아련함을 떨치고 성인의 고향 아시시로 향한다.

장채일 스토리텔링 블로거 blog.naver.com/jangchaiil’

우리 집 주변 요양병원, 어디가 더 좋은지 비교해보고 싶다면? (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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